리뷰[Review]/한국사

임오군란의 이해,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건 무엇인가?

시북(허지수) 2013. 10. 30. 01:00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의 문이 열렸습니다. 1880년 통리기무아문까지 설치해가며, 좀 더 잘 살자고 개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힘든가요. 곡물값이 오르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졌고, 군대 역시도 개편되면서 지금 5군영이 2영으로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남아 있는 직업군인 2영에게는 잘 대해주었는가? 영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식 별기군에게는 좋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같은 군인인데도 구식군대에게는 일년 넘게 급료가 밀리기 시작했고, 이래저래 쌀값도 비싸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 꼴이 대체 뭐냐? 도저히 살 수 없잖아! 구식군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 합니다. 일단 원인은 무엇일까요? 별기군과의 노골적 차별대우가 일차적 원인이겠지요. 곡물가격도 올라가고 있으니, 개화에 대한 불만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임오군란은 직업군인 만의 난이라기 보다는, 도시빈민들이 못살겠다고 함께 들고 일어난 측면이 있습니다. 개화정책에 대한 저항의 모습들이지요. 다시 말해, 임오군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주류와 기득권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차별받고, 살기힘든 기층민중들이 열받아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위정척사파는 자신의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성리학적 신념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강경하게 맞섰다면, 이번 문서에서 살펴보는 임오군란의 주역들은 이념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임오군란의 구체적 과정으로 들어가봅시다. "이보시오, 이래선 못 살겠다. 급료를 좀 줘!!!" 처음에는, 거센 항의를 통해 한 달치 급료를 간신히 얻어냈습니다. 구식군인들이 드디어 정부로부터 쌀가마를 얻어와서, 식구들과 먹기 위해서, 개봉박두를 한 순간. 이들은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쌀가마 안에 겨와 모래가 섞여서 들어가 있었어요. 헐...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야말로, 뚜껑 열리는 거에요.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남을 멸시하고, 변명대는 모습은, 최악이 아닐까요.)

 

 열받은 군인들이 당장 모여서 찾아갑니다. 식량배급의 총책임자? 그 개XX 잡아 죽이자!!! 뭐, 별기군? 그 일본 장교놈도 죽여버려!!! 개화 추진하고 있는 명성황후? 죽여버려!!! 절대 말로만 그친게 아니었습니다. 책임자 민겸호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별기군 훈련시키던 일본지휘관도 죽습니다. 명성황후도 죽을 뻔 했어요... 소식을 듣고 급히 충주로 피신해서 살았지, 안 그랬으면 임오군란으로 죽을뻔 했으니까요.

 

 민씨 정권이 잠시 피신하자, 흥미롭게도 잊혀졌던 대원군이 부활하며, 정권을 잡게 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대원군이 임오군란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던 것은 사실인 듯 보입니다. 어쨌거나, 임오군란의 결과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고종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인 대원군을 다시 불러들이게 된 형국이고, 아내인 명성황후는 저 멀리 피신 중!!! 그렇게, 대원군이 정권을 딱 잡고 보니,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이 완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대원군 하면 통상수교거부의 아이콘이잖아요. 그래서 아예 개화 정책 전담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을 바로 없애버립니다. 아이구야, 2년만에 사라지는 개화기구! 군대도 원래대로 돌아가서, 2영에서 재차 5군영으로 부활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부터 더욱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집니다. 설에 의하면, 이 때, 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말을 듣고, 명성황후가 구식군인들에 의해 이미 죽었다고 판단하는데요. 그래서, 사체 없이 국상을 선포합니다. 대원군 입장에서는 가급적 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민씨 정권을 이참에 싹 정리해버리고 싶었을테니까요.

 

 한편, 이후 드러나는 진실은 충분히 서늘했습니다. 민씨 정권의 주역인 명성황후가 지금 어쨌건 살아있단 말이에요. 무엇보다 청나라가 임오군란 진압(!)을 명분으로 하면서, 조선 정부에 대놓고 개입을 해옵니다. 그리고, 그 개입 이면에 명성황후도 함께 있었던 겁니다. 친청에 가까웠던 민씨 정권이 보여주는 신의 한 수이자, 악마의 한 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쭈~욱 와서 동대문 주위에 포를 깔아놓고, 임오군란을 가볍게 진압해 버립니다. 흥선대원군도 그대로 납치해 갑니다. 그럼 정권은요? 이리하여, 민씨 정권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입니다. 정말 다이나믹 하지요.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청을 끌어들이니까 뒷감당이 곤란해지기 시작 합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청이 개입하면서, 앞으로 조선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임오군란 이후, 청의 개입이야 말로, 조선 망국의 첫 단추가 아닐까 라고 파악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외세를 끌어들이는 나쁜 습관이 계속 이어지니까요.

 

 나중에 또 언급되겠지만, 이후 조선은 나라가 거덜나고 있음에도, 단지 집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꾸만 외세를 끌어들입니다. 이러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앞으로 외세는 계속해서 등장할텐데요. 예컨대, 갑신정변하면 또 청나라 개입되고요. 동학농민운동하면 또또 청나라 개입되고요. 아관파천하면 러시아가 개입해 들어오고요. 사사건건마다 외세가 자꾸 개입하니까, 조선이 점점 썩어갑니다. 그 첫 출발이 임오군란인 셈이지요. 개입해서 도움 받는게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특히 나라와 나라 관계에서는 공짜란 없으니까요. (*명심해야 합니다. 국가가 함부로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면, 잘못하다간 망국을 보게 됩니다.)

 

 조선은 도로 민씨 정권이 되었다지만, 이제 청나라 입장을 살펴볼까요. 그들에게 조선은 자기들의 종속국이고, 거의 조공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급한대로 역사에선 공짜 도움이란 없습니다. 이렇게 크게 도움을 받은 경우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민씨 정권이 청에 의해서 결정적 도움을 받았으니까 무엇을 줘야 했는지 알아봅시다. 정치적으로는 청나라가 조선에 고문을 파견해서, 중요한 분야를 죄다 간섭합니다. 위안스카이(군사), 마젠창(정치), 묄렌도르프(독일인-외교) 같은 사람들이 와서, 아예 내정간섭 을 합니다. 외국인 묄렌도르프가 외교를 좌지우지 하고,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에요. 노골적으로 청이 종주국, 조선이 종속국 지위가 되어갑니다.

 

 경제면에서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이라고 약속을 맺어, 청나라에게 이권을 줍니다. 덧붙여 장정이라는 것은 아래에 있는 속방국과 맺는 일종의 명령입니다. 동등한 조약이 아니라, 강제되는 무역규정이었던 것이지요. 여하튼 이 장정이 체결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고 하니,

 

 예전에 강화도 조약만 하더라도, 일본사람들의 경우, 거류지 무역이라고 해서, 10리(4km)안에서만 활동하도록 나름대로 충분히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상인을 보호해야 했고, 그 이상으로 들어오는 것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청 무역장정이 맺어지면서, 청나라 상인들이 아무데나 들어와서 장사를 마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청나라 상인들이 서울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장사를 하고 있으니, 일본인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점차 일본인들도 조선에서 더 많은 이권을 노리게 되었고, 활동범위도 서서히 늘어나면서 50리, 100리(40km)까지 거리가 확대되며 장사를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장정으로 인해, 거류지 무역이 붕괴 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과도 최혜국대우가 들어가 있던 조약을 맺었잖아요. 그래서 미국과의 조약도 자동 업글 되었습니다. 미국사람들도 청나라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역시 장사를 시작합니다. 외세를 한 번 끌어들이자, 조선은 심각하게 휘청거리게 되었습니다. 좀 비판적으로 본다면, 일단 정권만 유지하면 그만이지, 처럼 안일한 태도로 외세를 끌어들였기에, 조선의 무역규칙이 이렇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즉 임오군란으로 인해서, 청나라에게 아주 좋은 일이 되고 말았네요.

 

 일본과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일본은 임오군란에서 피해를 당하며 단단히 뿔이 났으니까요. 공사관이 불타고, 교관도 살해당했고요. 그래서 책임지라며 조약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물포 조약입니다.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고, 더 중요한 건, 일본이 군대를 끌고 조선에 들어옵니다. 명분은 "이제 조선은 믿을 수 없으니, 공사관은 우리가 지키겠다"는 건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국에 남의 나라 (일본) 군대를 배치시켜 주둔하고 있다는건 정말 아찔한 일입니다. 이래저래 큰일났어요. 한편 조선은 사과를 하기 위해서, 3차 수신사가 일본에 파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조일수호조규 속약을 체결합니다. 일본은 자기들도 혜택을 달라며, 거류지 무역의 범위를 10리에서 100리까지 확대해 나갑니다. 일본도 따지고보면, 자기들도 혜택을 엄청나게 가져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조선은 민씨 정권은 유지하게 되었지만, 남의 나라에게 혜택만 듬뿍 내주고 있었습니다. 비극이지요. 또한 당시에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므로, 잘못된 결정들을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이래저래 안타까운데, 하여간, 지배층 내에서도 대체 나라꼴이 이게 뭐냐? 싶었습니다. 청나라 시키는대로 조선이 다 해야하나? 도저히 이대로 조선을 놔둘수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갑신정변 (1884) 이야기가 이어서 계속됩니다.

 

 오늘의 영감 - 친구가 좋은게 뭔가요?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고, 대가 없이도 도와줄 수 있다는 겁니다. 밥 한끼 샀다고 대뜸 생색부터 내고 있다면, 이건 친구가 아니겠지요? 그런데, 국제 관계에서는 훨씬 차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가 없이 돕는 절대 우방국이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마다 이익을 탐하며, 조선에 개입하는 형태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한 우방은 없다 라는 말이 유독 외교에서는 통용되는게 아닐까 싶고요. 아, 덧붙여 오래 가는 우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친구에게 잘하는 것,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 인생을 즐겁게 사는 정말 멋진 방법입니다!

 

 참, 그리고 이걸 외워두면 나중에 연도 외울 때 약간의 도움이 됩니다. "갑을병 정무기 경신임계" 요즘 유행하는 갑을 관계할 때 나오는 그 갑을로 시작하는 10단위에요. 이 갑을병 정무기 경신임계는 각각 숫자로 456 789 0123 에 해당됩니다. 갑ㅇㅇㅇ이면, 무조건 뒷자리가 4라는 말이에요. 병ㅇㅇㅇ이면, 무조건 뒷자리는 6이겠고요. 따라서, 경은 0, 임은 2, 이런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따라서, 임오군란의 끝자리 숫자는 일단 2 라는 말이지요. 조금은 외우기 쉬워지는 거지요. 오래 전, 임진왜란도 1592년이고요. 일종의 수학적 법칙(!)인데, 함께 덧붙여 놓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