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행동가들을 쉽게 바라보는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실패까지 겹치면, 괜히 위로하는 말을 툭 던집니다. 거봐, 가만히 있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걸... 그러나, 인간심리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대부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 뿐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볼 것인가 생각해보고, 실제로 부딪혀 보는 것이 "멋진 삶"에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갑신정변을 굳이 띄워주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행동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금 장문이 되겠지만,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볼까 합니다. 갑신정변의 현장으로 얼른 달려가봅시다.

 

 조선은 임오군란(82)을 거치면서, 청나라가 조선의 내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청나라 속국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급진개화파는 불만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불만에만 그친 게 아니라,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결단한 젊은 이들. 1884년 12월, 거사를 실행하며 갑신정변이 발발합니다! 주도했던 인물들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굳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아도 될,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김옥균은 안동 김씨 가문의 명망가 였고, 촉망 받던 젊은이였고요. 박영효는 임금 철종의 사위입니다. 또한, 홍영식은 영의정의 아들! 그야말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정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테지만, 그들이 볼 때, 지금 조선의 모습은 사대당, 수구당이 날뛰는 저질로 보였고, 급기야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갑신정변의 배경부터 먼저 알아봐야 겠지요. 임오군란의 결과, 청나라 군대가 진압을 위해 조선에 들어와버렸고, 약 3천명이나 주둔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과의 제물포 조약으로 인해 일본 군대도 주둔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사적 배경으로는 현재 베트남을 두고 청나라와 프랑스가 싸우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급기야 청나라는 이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서, 조선에 있던 청군의 절반 정도를 빼내어서 베트남 쪽으로 보냅니다.

 

 정치적으로는, 현재 조선은 청에서 파견된 묄렌도르프 등이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하고 있었으니, 급진개화파에서 볼 때는 영 불쾌한 입장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개화에 드는 비용문제를 놓고서도, 묄렌도르프는 돈이야 찍어내면 되잖아 라고 주장했다면, 김옥균 쪽에서는 그런 식으로 가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발생) 곤란해지니 차관을 도입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김옥균은 차관을 빌리러 일본에 건너가는데, 끝내 빌려오지 못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급진개화파의 입지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급진개화파는 청군의 부분철수를 틈타, 정권을 뒤집어 버릴 거사를 계획합니다. 비용과 군인 등은 일본에서 지원 받기로 했고, 구체적으로 거사를 어떻게 일으킬지 세부계획까지 짜놓습니다.

 

 첫 무대는 신설되는 우정국 개국 축하연이었습니다. 이른바 이 축하연이 불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급진개화파는 의도적으로 불을 내고, 우정국 축하연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민씨 정권의 여러 사람 및 온건 개화파 요인들을 암살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출발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둘러 (왕과 명성황후가 있는) 창덕궁으로 이동해서 왕을 확보합니다. 그 후, 왕을 지키기 위해서 보다 수비가 쉬운 경우궁으로 거처를 이동했고요.

 

 그렇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지금 거사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곧이어 급진개화파는 신정부를 발표합니다. 당연히 주요 자리에는 급진개화파 사람들로 구성했으며, 한편으로는 김윤식 같은 일부 온건파 사람들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정치적 명분을 위해서, 어느정도는 상대편을 포섭하려고 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때, 정세판단이 빠른 명성황후가 "분위기가 묘하게 이상한데... 민씨 들이 제거되고 있는데?" 그래서, 곧바로 청나라 측에 연락을 취합니다. 또한 남편 고종을 집요하게 설득해서 (아마 잔소리로 신경을 긁었겠지요!) 좁아터진 경우궁에서, 넓다란 창덕궁으로 불과 하루 만에 다시 오게 됩니다. 급진개화파가 끝까지 고종을 말렸지만, 가끔 현실에서는... 마눌님이 제일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후덜덜.

 

 결국 급진개화파는 창덕궁에서 14개조 개혁안을 발표 합니다. 사실상, 갑신정변에서 참 중요한게 이 개혁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 무슨 내용들이 담겨 있었을까요? 급진 개화파가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정치면에서는, 자주적인 나라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에 사대를 하지 말자, 청의 종주권을 부인 합니다. 그러나, 급진개화파는 조금 모순적이게도 정작 일본 세력을 끌어들였단 말이에요.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순진하게 혹은 "안일하게 판단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급진개화파는, 일본에게 도움은 받겠지만, 개혁은 우리가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끌려간 대원군 환국을 주장했습니다. 물론, 수교거부노선을 걸었던 대원군을 좋아서 그랬다기보다는, 조선의 지도자를 다시 되돌려 달라는 자주적 모습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입헌군주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군제개편도 청의 내정간섭으로 변경되었던 4영을 합해서 1영으로 바꾸자고 합니다. 순사(경찰)을 두자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쿨럭, 참 많기도 많네요. 간단히 정리해, 흐름적으로, 근대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개혁을 통해, 보다 더 투명한 조선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입헌군주제란? 왕이 존재하는 시스템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전제군주제가 있는데, 왕권이 막강합니다. 그에 비해, 입헌군주제는 왕이라 할지라도 법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왕권이 약합니다. 한편, 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은 공화정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나 한국은 공화제, 영국이나 일본은 입헌군주제 입니다.)

 

 그러므로, 체제가 오픈되어 있지 않다면, 부패가 발생하기 쉽고, 근대적이지 않다는 것 입니다. 근대적 시스템을 만들려면,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과 견제를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14조 개혁안에서 특히 중요한 대목이라면, 왕의 영향력을 줄이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왕이나 특정 집안에 의한 나라가 아니라, 법에 의해서 통치되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법위에 존재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견제 받지 않아서 끝내 부패하기 쉽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네요.)

 

 경제면에서는, 재정 일원화를 주장합니다. 가령, 왕실에서 쓰는 돈 따로 있고, 국가행정을 위한 돈이 따로 있고, 이러지 말자는 겁니다. 명확하게 한 군데 "호조"에서 관리하자는 것입니다. 즉 세금이 들어왔으면, 쓰는 동향도, 정확히 좀 파악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토지가격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지조법 개혁을 주장합니다. 즉 토지세 개혁을 이야기 합니다. (단, 토지 분배를 하자는 건 아니에요. 이 차이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워낙 시험에 자주 나오는 대목인데, 갑신정변은 어디까지나 세금을 개혁하자는 거지, 땅을 나눠주자가 아닙니다! 사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부잣집, 명망가 아들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땅에 대한 기득권을 완전 포기하기란 어렵지 않았겠어요?)

 

 - 헉헉! 힘드시죠? 개혁안은 계속 이어지니,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 -

 

 혜상공국(보부상)을 혁파하자고 주장합니다. 조선에서는 개항 이후에, 보부상이라는 상인들이 특혜를 받아 누리며, 전국을 다니었고, 여러 소식들을 정부에 알려주거나, 정부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정부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요긴한 일들을 대신 하고 있다는 건데요. 이걸 거꾸로 말하면 보부상은, 정부의 혜택을 입고 있는 특권세력이라는 겁니다. 갑신정변은 그 개혁의 핵심이 부패로 변질되기 쉬운 특권을 뿌리뽑자는 건데요. 그래서 암암리에 활동하고 도와주는 보부상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끝으로, 환곡을 폐지하자고 했습니다. 이런 개혁안을 통해서 우리는 1880년대까지도 여전히 삼정이 문란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토지, 환곡 등을 개혁하자는 것! 그러므로, 기층민중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삼정의 문란 때문에 예전에 대원군이 그렇게나 개혁을 밀어붙였지만, 그럼에도 병폐는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던 거지요.

 

 사회면에서는 신분제의 폐지를 주장합니다. 엄청난 주장이지요!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사실상 피라미드 구조에서 충분히 위쪽에 위치했음에도, 과감한 개혁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규장각도 폐지하자고 말합니다. 정조 때만 해도, 등용문의 역할을 했던 규장각이었으나, (역사가 종종 그렇듯이 좋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라도, 시간이 흘러 변질되거나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사실상 제도 자체 보다는 어떻게 운영하느냐, 그리고 이끌어가는 사람이 누구냐가 더 중요한게 아닐까 합니다) 지금의 규장각은 세도가문의 관직진출을 위한 등용문으로 추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특권을 없애버리자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투명하지 않은 것들은 몽땅 없애자 라는 겁니다. 신분이나 가문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자는 주장, 과감한 신분제 폐지는 역시 파격적이랄까요.

 

 자, 그리하여,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오는가!!! 했으나, 끝내 이 개혁안은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곧바로 연락받은 청나라가 또 개입하며 정변 진압을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갑신정변은 3일 만에 실패로 끝나버렸고, 홍영식은 고종을 호위하다가 죽었고, 김옥균 역시 일본으로 망명을 갔다가, 훗날 피살됩니다. 그렇게 급진개화파가 역사에서 사라지면서, 이후 당분간 온건개화파와 민씨정권에 의한, 느슨한 개화만이 추진되어 갑니다. 이번에도 민씨 정권을 도와준(?) 청나라의 간섭은 더 심화되었고요.

 

 갑신정변의 결과로는, 일본과 한성조약을 체결 합니다. 내용은, 조선이 일본에게 배상금 지불 및 일본 공사관 부지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어라??? 일본이 갑신정변을 뒤에서 밀어줘놓고, 뜬금없이 이게 무슨 조약인가 싶은데요. 그러나, 제국주의가 판치는 어두운 시대에서는 힘이 곧 정의, 뻔뻔함이 통하는 모습이 관철되어 갑니다. 일본이 마구잡이로 주장하니까, 힘없는 조선은 또 들어줘야 했습니다. 솔직히 많이 당황해서, 위키백과에서 조사해보니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일본 측의 무력적 위협에 굴복하여"... 어쨌든, 참 뻔뻔하고 나쁜X 들입니다.

 

 여하튼, 갑신정변의 뒷면은 조금 더 씁쓸합니다. 급진개화파는 신분제 폐지, 지조법 개혁 등을 내세우며, 상당히 기층 민중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민중들과의 심각한 괴리감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민중들은 갑신정변을 밀어주지 않았고, 단지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끝나고 말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민중들은 개화 자체를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며, 게다가 일본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보니, 급진개화파들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 이후, 청과 일본도 서로 조약을 맺었습니다. 텐진 조약입니다. 양군 공동철수 및 혹시 조선에 무슨 일이 있으면 개입할 때는 상대국에 꼭 통보한다는 내용을 약속해버립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0년 뒤, 텐진 조약은 큰 사건에 영향을 미칩니다. 10년 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거든요. 당연히 정권은 불리할 때가 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또 청나라에 SOS를 부릅니다. 청나라는 조약을 맺었으니, 청군을 끌고 들어오면서, 약속대로 일본에 통보를 합니다. 그리하여 일본도 엄청나게 벼르고선, (청나라에게 조선의 이권을 뺏길 수 없기에) 군대를 끌고 들어오는 겁니다. 결국 텐진 조약이 체결되고, 10년 후 조선 땅에서 청일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텐진조약이 되겠습니다. 이 연결고리를 기억해 두는게 중요합니다. 청일 전쟁과 동학농민운동 등은 바로 다음 문서에서 계속됩니다! 위로부터의 개혁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났지만,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영감 - 왜 살아야 하는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실존적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관념적인 답을 피하고 싶어서, 이 질문에 그냥 고기를 사러 다녀왔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알찬 저녁 식사 한 끼를 나누는 것이 제 삶에서는 아주 중요한 생의 이유 입니다. 게다가 해보고 싶은 일들이 아직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음 앞에 선다면, 조금은 아쉬울 것 같습니다!

 

 (자주 글쓰는 리뷰어로서) 조금 양념을 쳐서 표현한다면, 내가 기쁘게 살았는가, 남을 기쁘게 했는가, 여기에 멋지게 YES라고 답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살려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노력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형편없이 시간을 낭비하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기쁘게 살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타인을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기에, 오늘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고자 마음을 다잡을 때가 있습니다. 불안해도 시도하는 것, 불편해도 앞으로 가는 것, 더 바라지도 않고, 다만, 그런 인생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하는대로 살고 싶어서 저는 삽니다. 대단히 민망하네요. 하하;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3.10.3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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