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서에 이어 계속되는 갑오 1차개혁 이야기 입니다. 지난 회를 잠깐 체크해 본다면, 정치 면에서는, 개국기년을 썼다는 것, 따라서, 청의 종주권을 부인하며, 자주적 모습이 있었다는 것 기억나는가요. 왕권이 약해지고 있고, 의정부 8아문 체제가 생각난다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재정 일원화를 추구하며, 재정을 탁지아문에서 관리하도록 정했습니다. (*참, 오래 전, 갑신정변이나 또는 동학농민운동에서 주장했던 것은 실패로 끝나서, 직접적으로 실현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해, 갑오개혁에서는 실제로 개혁안이 반포되고, 작동되었다는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지난 세월 그렇게 간절했던 바람들이 갑오개혁을 통해서 드디어 여럿 실행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경제면과 사회면에서의 개혁을 이번 문서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니, 부담없이 개혁의 내용을 즐겨보아요!

 

 조세의 금납화가 추진됩니다. 세금을 이제 쌀이나 옷감 같은 현물이 아니라, 돈으로 내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세금을 쌀이나 옷감으로 내는 것보다, 돈이라는 냉정한 숫자로 직접 내는게 정확도 면에서는 더 투명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훨씬 옛 시절의 조선 이야기가 되겠지만, 수백년전 공납으로 특산품 내던 시절만 하더라도, 특산품의 질이 어쩌니 하면서 시비 걸고, 대신 내주는 방납업자가 생기고, 심한 부패로 변하고, 그런 불공정한 폐단도 심각했으니까요. 따라서 이런 폐단은 보다 나은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확실한 기준이 있으면, 시비거는 틈새가 훨씬 적을테니까요.)

 

 "은"본위 화폐제 가 시행됩니다. 나중에 1904년에 화폐정리사업에서는 금본위화폐제 이고요. 은본위와 금본위 키워드는 나름 시험단골이니, 잘 체크해 두세요. 1894년 갑오개혁 때는 은본위에요. 1904년에는 금본위고요.

 

 그럼 은본위 화폐제가 무엇인지, 한 번 이해에 도전해 봅시다. 경제이야기니 쬐금 복잡하겠지만, 구체적 사례로 간단 요약해 본다면, 예컨대 한국은행에 만원짜리 들고가서, 이거 은으로 바꿔주세요, 요구하면 만원어치 은으로 바꿔줘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냐하면, 그만큼 화폐가 찍어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정부가 보증해주는 안정적인 교환수단으로 믿어지는 것이지요. 또한, 정부에서도 돈을 찍어내는 만큼, 은을 보유하고 있겠다는 거지요.

 

 더욱 구체적으로는, 천원짜리 페레로로쉐 과자를 먹고 싶을 때, 만약 은이 직접적 교환수단이 된다면, 현실적으로, 은에서 천원치 딱 떼어내서 과자주세요 이렇게 할 수 없잖아요. 따라서, "은"을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고, 이제는 믿음직한 종이 화폐를 가지고, 서로 편리하게 상품을 교환하게끔 하자는 것 이지요. 왜냐하면, 은본위 화폐제로 인해, 이 종이화폐는 원한다면 정부에서 은으로 얼마든지 바꿔줄테니까요. (*경제적 효과로는 - 은본위나 금본위가 잘 유지되면, 비교적 경제체제와 돈의 가치가 안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대신 정부는 돈을 찍어낼 때, 그만큼의 충분한 은이나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에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은본위 화폐제를 시행하더라! 라고 적당히 암기하고 퉁칩시다 ㅠ_ㅠ... 갑자기 국사가 아니라 경제 문서가 되는 기분 (!)

 

 그리고, 도량형의 통일을 합니다. 무게나 길이 단위를 표준화 시킵니다. 경제적 개혁안은 여기까지고요.

 

 여기서부터 사회적 개혁안인데, 그 중 특히 중요한 것은, 단연 신분제 법적폐지 입니다. 이것만큼은 외우기보다는 한 번 생각해본다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120년 정도 그 이전 시대, 즉 갑오개혁 이전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신분제의 속박에 사로잡히며, 하고 싶은 것을 꿈꾸기 어려웠겠지요. 신분제가 작동하면, 농민은 대대로 농민이 되거나, 양반은 대대로 양반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게다가 천민으로 태어났더라면, 과거시험에 접근할 기회조차 차단되었고요. 서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도 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겨우 7%, 따라서, 태어날 때 93% 뽑기에 걸리면, 고된 삶과 시달리는 삶이 기다릴 위험이 컸습니다. 피지배층인 상민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기 때문에, 과거시험을 법적으로는 칠 수 있다한들, 도전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요. (요즘으로 치면, 교실에 30명이 한 반이라면, 양반의 숫자가 2명 정도, 자그만한 한 마을이 있다면, 양반의 숫자가 1명 정도, 뭐 그런 시대였으니까요.) 어마어마한 싸움 끝에, 드디어 신분제가 사라지는 날이 실제로 왔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오랜 바람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인간 위에 인간이 군림하던 역사, 인간 밑에 인간이 복종하던 역사가, 법적 정당성을 잃어버렸으니까요. 누구나 같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분제와 연결되어 있었던 과거제 또한 폐지 되었고요. 나쁜 관습이었던, 조혼이 금지 되었고요, (*조혼 - 멋도 모르고 어린 나이에 시집간다는게 얼마나 비극이에요. 여성을 단지 아이를 낳는 도구로서 바라보는 시점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긍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연좌제도 폐지되었습니다. 연좌제를 재밌게 예를 들면, 연좌제는 옆에 있는 사람이 잘못을 했음에도, 줄줄이 벌을 모두 받곤 했지요. 저도 쌩쌩했던 꼬마시절에는, 단지 교실 분위기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책상에 올라가 무거운 의자를, 무식하게 들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아휴... 증말 싫어요 연좌제! (*저는 분명 떠들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종종 자기에게 유리하게 왜곡되곤 하지요, 따라서, 진실은 상상에...) 하여튼, 연좌제 - 친족과 삼족을 다 벌하는 그런 식의 처벌을 금지한다는 의미입니다.

 

 과부의 재가가 허용됩니다. 이 대목은 동학농민운동 때의 요구가 반영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아니, 남편을 잃었을 때, 또 다시 재혼할 수 있다는 게 당연하잖아요. 따라서, 조혼 및 연좌제 금지, 과부재가허용은 인권적 측면에서 사회발전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발전은,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지의 폭이 얼마만큼 늘어나느냐 입니다. 다시 말해, 자유가 제한되어 있던 사회에서, 조금씩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로 진입해 간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기에, 이 또한 역사가 주는 훌륭한 교훈이라 하겠지요. 역사는 단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몇 걸음씩,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끝으로, 경무청(순사)이 도입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포도청의 기능이었고요. 갑오개혁을 통해, 사회면에서는, 정말 엄청나게 세상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문서에서 계속해서, 갑오2차개혁, 을미개혁과 명성황후 이야기 까지 살펴볼께요. 신나는 근대사 계속됩니다!

 

 오늘의 영감 - 수능 날이라, 조금 길게 써볼까 합니다. 그냥 넘기셔도 좋아요. 하하. 앞서간 사람들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저절로 좋은 세상이 열리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주장하고, 맞서 싸워왔기에, 지금 우리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산다면! 그 삶은 실패가 아니라, 역사의 진보와 연결될 수 있음을 이번 문서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좋아하던 박경철 선생님의 유명한 강연 내용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실화인데, 1993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이상한 남자가 등장해서 WWW의 시대가 온다고 강연을 했습니다. 거기에 은행도 들어가고, 증권도 들어가고, 연구소도 들어가고, 모든 게 들어간다고 주장했고요. "저런 미친 인간이 있냐면서..." 거의 절대다수의 청중들이 다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 나간 이야기를 믿은 백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로부터 2~3년 동안 준비한 이후, 이 사람은 700만원 정도의 자본금을 마련해서 W와 관련된 회사를 만듭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겨우 90년대 중후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메일을 상용화한 이 회사의 자산가치는 수조원에 가깝다고 합니다. 불과 20년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0.1% 천재가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완전히 어두운 곳,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먼저 가서 깃발을 꼽고, 앞으로 이런 시대가 올 것임을 말합니다. 사실 이런 망상의 경우, 거의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저는 지금도 확신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망상이 아닌 WWW처럼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제 취미 연구소(?)인 블로그도 지금 그 WWW에 들어가 있으니까요. 여하튼, 나머지 0.9% 인간은 그 새로운 시대를 믿고서, 꿈을 품고 도전하며 살아갑니다. 잘 보면,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1%의 창의적 인간이 끌고 간다는 것. 이것이 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이었습니다.

 

 창의적 인간이 된다는 건, 생각하는 인간이고, 행동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저는 나머지 99%의 잉여인간일 뿐입니다. 밥벌이가 고되고, 생각을 해보긴 어렵고, 행동은 더더욱 기피하려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게 뭐하는 짓일까" 라며 반성합니다. 창의적이지 않았으므로, 그런 자기반성과 시행착오만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처음 출시하자, 언론에서 조롱이 쏟아집니다. 100명이나 탈 수 있는 기차보다 더 비싼 돈을 들여 개발했다는 "그 자동차에 겨우 4명"이 타는데, 이런 개그가 어디 있냐고 야유합니다. 투자자를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시대가 온다니, 무슨 헛소리냐고 비난만 했을 뿐... 그런데 이 황당한 걸 믿고, 정유사업을 펼쳤던 록펠러는 이후 수십년이 지나,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양산되고, 이동수단이 되었고, 기름은 자동차 운행의 핵심이었으니까요.

 

 한편, 경영구루 피터드러커는, 잘 하지도 못하는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일갈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요? 잘 하는 것을 정말 잘 하게 될 때까지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폭넓은 분야를 탐구하고 서로 다른 분야에서 통찰을 연결시키는, 통섭이 중요하다는 말도 합니다. 정부에서는 아예 창조경제 이야기를 구호로 내걸었고요.

 

 오늘은 2013년 수능날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수능시험의 성적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좋은 결과라면 겸허하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만에 하나 나쁜 결과라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어려운 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어려움에 도전하고,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내가 꿈꾸던 삶을 살아보기 위해, 매일을 아주 귀중하게 보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재능이라도 감사하게 여기며 노력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2년 전의 봄날, 새로운 주소를 얻은 이 블로그에는 매일 30명, 40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확신했습니다. 아 역시 나는 무명블로거,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그러다가, 작은 재능이라도 올해에는 좀 열심히 써보자고 시도한 게, 의외로 정말 많은 분들이 놀러와주셔서, 갑작스럽게 대략 1년 사이에 백만명 정도가 다녀갔습니다. 저는 지금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결코 조금의 자랑이 아닙니다. 여전히 무명블로거를 추구할 뿐입니다! 다만, 저는 큰 자극과 부담을 받아서, 더 열심히 책을 들춰보기 시작했습니다. 뻔히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정말 잘 알기에, 자기틀에 갇혀버린 꼰대가 아닌, 하나라도 더 괜찮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21세기 현실은, 이미 새로운 신분제가 자리 잡아서, 가난한 사람들은 출발부터 힘들게 살고, 자산가들은 편안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한국 사회의 붕괴나 극단적 양극화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감정적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어떠하든지, 우리 스스로는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꿈꾸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 봤으면 합니다. 우리가 19세기 말 이전에 태어났다면, 이런 자유 조차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 있으며, 선택할 수 있습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니면 뭐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창의적 영감을 들을 수 있는 귀만 있다해도, 우리는 보다 폭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는 똑똑하지 않았기에, 그 귀라도 갖출 수 있기를, 그 눈이라도 갖출 수 있기를 오래도록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저는 정혜윤 작가님의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 나는 모든 것을 알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는 반사를 잘하면 되는 거구나. 나는 잘 듣고, 잘 묻고, 잘 옮기면 되는 거구나. 그것이 제게 거대한 위안이었습니다. 잘하기 위해서 마음을 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힘든 현실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절망하지 않기를 응원합니다.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노예나 천민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능성의 존재이며, 잘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앞으로 매일 한 걸음이라도 더 노력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향해 다가간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사람들의 비난이나, 조롱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꿈꾸던 삶에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종종 발 밑에 이미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기를... 이만, 장문 마칩니다. 힘내세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3.11.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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