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퍼스트 어벤져 (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1. 14. 21:48

 현대 사회로 진입해가면서, 영웅이 사라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의견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우선되기 쉬우며, 공공을 위해서 자신의 힘을 쏟아붓는 태도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조롱이 일반화 된다는 날카로운 분석이었습니다. 막스 베버 같은 학자는 후기 자본주의에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일단 하일 히틀러 부터 외치고 보는 전문가 말이지요. 가끔 오늘날 대한민국도 비슷한 나머지, "YES! 반인반신 지도자가 있으니 만세!" 라고 하는 것 같아서, 재밌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초반부가 유독 즐거웠습니다. 몇 번 뉴스에도 소개된 사고방식 실험인데, 근육질의 남자들이 보수성향이 좀 더 많고, 마른 사람들이 진보성향이 좀 더 많다고 합니다. 어떤 패러디 만화에서는, 어서 마른 남자들에게 강력한 운동을 시켜서, 사상을 개조하자! 라는 우스개도 있습니다. 하하. 이건 사견에 불과 합니다만, 보수주의가 좀 더 현실적인 측면이 있고, 진보주의가 좀 더 이상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당연히 어떤 사회든 두 세력 모두가 필요하며, 또한 (서로 헐뜯지 않는다면) 양쪽 모두가 중요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스티브는 상당히 심각할 정도로 "이상"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현실이 어떠하든지, 나는 내 가슴 속의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 입니다. 한편으로는 엄청난 바보 같지만, 어찌보면 꽤 멋있습니다.

 

 

 스티브는 상대도 안 되는 "덩치"에게 시비걸다가,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하고요. 또한, 40kg대라는 아가씨들이 꿈꾸는 몸무게를 소유하고 있기에, 군대 지원에도 번번히 떨어지기만 합니다. 마음만큼은 "선한 사람의 아이콘"에 어울리는 스티브는 마침내 연구소 박사의 도움으로, 진정한 군인의 몸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다운 영웅의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니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희생정신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고 있다", 모의 수류탄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지는 장면은, 놀라웠고 감동이었습니다. 진짜로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런데, 몸짱의 영웅, 인기가 좔좔 흐르는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지만, 펼쳐지는 현실은 상당히 슬프고 이상합니다. 전선에 투입되기는 커녕, 군대 홍보 대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고 있는데, 스티브 스스로가 간파했듯이 마치 "곡예하는 원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꾸 하다보니까, 이 연극쇼도 점점 좋아지고, 창피한 복장도 마음에 들기 시작했지만... 역시 마음 한 구석이 내키지가 않습니다. 결정적 이유는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선택권이 박탈된 인생이란, 강요된 선택에 내몰린 인생이란, 역시 불행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연구용 몸짱으로 머물며 실험실의 쥐처럼 갇혀 살 것인가, 아니면 서커스의 연극이라도 하면서 바깥 세상과 만나며 살 것인가. 부득이하게 후자를 선택했다지만, 드디어 캡틴 아메리카는 친구의 실종 소식 및 카터양의 도움에 힘입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꿈꾸던 대로 한 번 살아보자!" 그리하여, 방패 하나 둘러 메고, 적진 한 가운데로 날아들어가는 패기란! 참 무모하면서도, 멋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좋은 것도 많아지지만, 슬픈 것도 생기는데, 대표적인 게 "사회적 역할 감당하기" 가 아닐까 싶어요.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일도 맡아서 해야 할 때가 있으며, 가끔은 열심히 했음에도 오히려 미안하다 라고 말을 꺼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굉장히 괴롭고,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당장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마지 못해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행복한 선택을 한 게 아닐까요.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일단 도전"이라도 했으니까요!

 

 물론, 대다수 영웅 영화들이 무적의 주인공이라서, 아군의 용맹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적들은 얼굴 조차 없는 괴물로 그려져서, 얼마든지 당해도 싸다는 공식을 잘 따른다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는 캡틴 아메리카가 친구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제대로 된 인생을 위해서, 전장으로 뛰어들어간다는 그 대목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조직의 어릿광대로 살 바에야, 벗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 아, 정말 좋네요.

 

 캡틴 아메리카는 오늘도 방패 하나를 둘러 메고, 나치의 연구 기반 시설을 초토화 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더욱 업그레이드 되어, 팀을 이루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팀 멤버들도 동양사람, 아프리카계 미국인, 프랑스계, 혹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 등, 훨씬 더 다양성의 폭이 넓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단지 아메리카 만세라기 보다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야 말로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게 아닐까요. 조직의 고위급 사람들이 나라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으신 그들은 돈과 명예에 관심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자원해서 전장의 한복판으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애국자임을 지혜롭게 묘사했다는 느낌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훨씬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정의란, 이기적인 인간에 맞서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정의란, 나부터 살자가 아니라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네가 더 따뜻해 지는 고결한 태도입니다. 또한 악덕이란 무엇입니까? 초반부에 경쾌하게 그려지듯이, 불의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적 약자를 협박하고 내던져버리는 태도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같은 사람이 된다면 아이구,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높은 기준으로 살 수 없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을 응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참동안 영웅주의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세상을 변혁한다는 발상이 때때로 상당히 오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혼자 1km만큼 대단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천 사람이 모여 한 걸음이라도 가는 게, 더 예쁘다고 저는 지금도 생각하는 편입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이 정해주는 기준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높은 기준을 두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너는 이 정도 역할만 하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라는 위로부터의 의견 혹은 외부적 의견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매일 아침에 눈을 떠, 단지 "오늘은 이런 일들을 해봐야지!" 라면서, 자신의 하루를 계획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매혹적인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뷰는 좀 재밌게 마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중반쯤에, 드디어 강력한 원형 방패를 쥐고 있는 (여심도 몰라주는!) 스티브에게, 이거나 먹으라면서 총알을 탕탕탕 쏴주시는 예쁘고 무서운 카터양! 스티브가 정의로운 마음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지만, 정작 여자의 마음을 별로 배려하지 못하는 무심한 모습이 유쾌하게 대비되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네요. 한편, 그래서 끝까지 여자의 마음을 챙겨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쩐지, 마지막 장면도 많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양보하고 손해보는 "희생"이라는 것이, 바보스러움이 되고, 놀림 받는 일이 되었다는 게, 저는 가끔씩 참으로 이상합니다. 개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TV광고만 봐도, 아내도, 누나도, 가족도 점점 내 편이 아니라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세상에 믿을 놈은 역시 하나도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OECD국가 중에 "뒤에서 3위"를 차지할 만큼 사회나 타인을 믿지 않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주변 지인분들도 그렇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오면 부담부터 덜컥 느낍니다. 보통은, 좋은 일로 걸려오는게 아님을 뻔히 아니까요. 미리 광고임을 예상하고 안 받는 분들도 많고요.

 

 우리가 딱 한 걸음만 더 정의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바꿔 말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해주려고 약간씩만 더 노력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와 애정의 표현을 아끼지 않기, 그 사람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려고 노력하기, 더 놀라운 건, 이러한 행위에 전혀 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점! 삶의 소소한 행복 대신에, 자꾸만 돈부터 걱정하고 생각하려는, 사고방식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매번 오락영화를 보고, 이렇게 무겁게만 리뷰가 나오니 민망하군요. 이쯤에서 마쳐야 겠습니다. 퍼스트 어벤져, 개인적으로, 마블 작품 중에서도 만족스럽고 인상적인 내용이었습니다. / 2013. 1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