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애국계몽단체 - 새로운 백성의 모임, 신민회!

시북(허지수) 2013. 12. 4. 02:11

 한참만에 업데이트를 하게 되었네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 일 관계로, 좀처럼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새벽 1시에 타자를 치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히 행복하다고 해야겠지요. 누군가 언제 행복한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항상 "오늘 이 순간" 이라고 답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답이 흐리게 보여도 계속 가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 소박한 꿈이 가끔은 한참 멀어보일 때가 있어요. 힘낸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어서 오늘의 문서로 들어가 봅시다.

 

 애국계몽단체를 잘 파악해두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시험 출제 빈도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지난 문서가 배경 설명이었다면, 이번 문서에서는 근대사 문제 하나가 걸려있다는 생각으로, 상세히 살펴본다면 훗날 도움이 될 꺼에요! 자 그러면, 애국계몽운동의 그 첫 번째 단체로 보안회(1904)를 들 수 있습니다. 보안회는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을 펼쳤습니다. 하하, 보충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당시 일본은 조선 땅에 일본인들을 이주시키고 정착시키기 위해서, 땅을 많이 확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일제는 전국 각지의 땅확보를 위해서, 일본에게 황무지를 죄다 넘기라고 조선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황무지개간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보안회에서 들고 일어난 겁니다! "반대한다! 땅을 일본인에게 넘겨주는게 웬 말이냐! 반대한다!" 또한 놀랍게도, 이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일본의 계획을 저지시켜 버렸다는 것! 그러므로, 감탄스러운 지점이지만, 집권층이 외세에 눌리며 제 목소리를 못내고, 이권 퍼주기 할 때에도, 기층 민중과 지식인들은 이렇게 애국계몽단체를 조직해서, 일본의 요구를 막아내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재밌고 흥미롭습니다.

 

 다음으로, 헌정연구회(1905)에서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했습니다. 이 무렵 지식인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한국의 정치체제는 "고종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입헌군주제가 되는 게 좋겠구나" 라고 널리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헌정연구회는 대표적인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맞서며, 저항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령 (조선인으로 구성된) 일진회가 앞장서서 외교권을 일본에게 넘겨줘라, 선진 일본에게 국권을 넘겨라, 이러면서 앞장서서 떠들고 있으니까, 헌정연구회에서는 "이 미친X들아, 나라를 팔아먹고 있느냐" 라며 맞서는 것입니다. 당연히 일제는 헌정연구회를 탄압해 버렸기에, 헌정연구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국권을 하나 둘 빼앗아가는 일제의 고압적 태도가 열받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한자강회(1906)는 핵심이 자강입니다. 스스로 강해지자는 것입니다. 간행물도 발간했으며, 특히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퇴위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저항합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1907년 보안법이 만들어졌고, 보안법 때문에 대한자강회는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보안법으로 해산된 단체" 라는 게 시험에 종종 나오므로, 대한자강회를 잘 기억해 둡시다.

 

 (*그 뒤를 이어서 대한 협회가 있긴 합니다만, 이 쪽은 거의 친일적 성향이 농후하기 때문에 애국계몽단체라고 하기엔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 대한 협회는 정리에서 빼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문서의 배경을 놓고 본다면, 애국계몽운동이 수 년간 펼쳐지는 과정 속에서, 점차 친일화 되는 단체도 있다는 점을 염두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진화론으로 인해, 열심히 해봐도 우리가 약자이니까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는 건 당연한 사회법칙이잖아 라며, 일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변절되어버리는 겁니다. 이런 경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던 단체가 대한 협회였습니다.)

 

 대표적 애국계몽단체로는 1907년 신민회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백성의 모임이라는 겁니다. "신"자에 주목해 봅시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껏 개화파 지식인들, 독립협회, 그리고 헌정연구회 등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면서 달려왔다면, 드디어 신민회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주장을 하기에 이릅니다. 즉 과거와는 다른 주장들을 하게 됩니다.

 

 물론 배경도 있었습니다. 1907년에는 고종이 강제퇴위 되었고, 일제의 영향아래 순종이 즉위하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순종을 중심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내세우기에는 어쩐지 현실적인 답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치 면에서는 새로운 질서인 "공화제 지향"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신민회부터는 공화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지식인들은 공화제를 이루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막판에 쭉가면~ 예컨대, 1940년대로 잠깐만 먼저 가보면, 당시에는 이미 대부분 공화제를 지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1907년 신민회의 주장은 커다란 분기점이었지요. 입헌군주제로는 이제 안 되는구나, 공화제를 해야한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왕이 없는 공화제 지향이라니, 신선하고 새롭지요? 네, 신민회입니다! 꼭꼭 기억해 봅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안창호, 양기탁, 이승훈, 이회영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공화제 지향이었고요, 또한 계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외 독립 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목표도 갖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군사력을 양성하고 할 수 있는데 까지 끝까지 싸움을 준비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제가 계속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무장 투쟁을 펼치자! 라고 아주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입니다. 어쩐지 참 뭉클하지요. 그토록 어두웠던 시대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 (*아 물론, 신민회가 당시 즉각적인 무장투쟁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 국외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자는 이야기를 일찍부터 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결국 이러한 흐름들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조선 국경 바깥, 만주 서쪽 지역인 삼원보에 국외 독립운동기지가 세워졌고, 신흥강습소가 세워집니다. 이것이 나중에 신흥무관학교로 이어져 나가고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참여하며, 활약하는 장면들도 나중에 보게 될꺼고요. 중요한 건, 이렇게 신민회가 꿈꾸었던 독립운동의 전투적 패기가 계속 이어져 나간다는 것을 이해해 두면 됩니다. 신민회의 결의는 이토록 의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신민회는 비밀 결사의 형태라는 점도 알아둬야 겠고요. (*나중에 일제강점기에는 이름이 비슷해 정말 자주 헷갈리는 신간회가 등장합니다. 신간회는 민족유일당 운동을 전개하고, 공개 단체였고요. 그러다보니 신민회와 신간회를 잘 구분하는게 필요합니다. 중간에 들어가는 한자어를 유심히 주목하면 덜 헷갈려요. 백성 민(民)자 인가, 줄기 간(幹)자 인가를 살펴보세요. 새로운 백성? 신민회? 구한말 1907년이 떠오를 때까지!!!)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지난 문서에서 잠깐 언급했던 내용입니다만, 신민회는 경제적으로는 식산흥업(경제발전)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자기회사, 태극서관(서점)을 통해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면에서는 학교를 세우는데, 대표적으로 오산학교와 대성학교가 있습니다. 언론은 대한매일신보가 있고요. 이런 다방면의 활동들을 통해서, 신민회는 구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들을 많이 했다는 점이 핵심포인트가 되겠습니다. (*한편 이렇게 경제발달(식산흥업)을 하자, 언론을 발행하자, 학교를 통해 교육시키자 라는 주된 흐름들은 일제강점기에서도 실력양성운동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단체들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번 문서에 나오는 네 단체를 잘 기억하고 몇 번이고 정리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봐둡시다. 왜냐하면 근대사 관련으로는 시험에 거의 절대적으로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번 문서에 시험 점수 하나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힘내셔야 합니다!

 

 우리는 구한말 풍경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습니다. 하나씩 국권이 빼앗기고 있네요. 그럼에도, 개화파 지식인들을 계승한 애국 계몽 단체들은, 교육과 언론을 통해서 우리가 아직 싸울 수 있음을 열심히 외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들외에도, 지금 즉각적으로 싸웠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항일의병투쟁의 장면들, 다음 문서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신나는 근대사 이야기~ 여전히 쭈욱 진행중!

 

 오늘의 영감 - 부끄러운 개인사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K본부에서 방송되는 도전 골든벨에서 40번대 문제로 신간회를 묻는 내용이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무려 13년 전이네요... 당시 절친에게 당당하게 신민회 아니면 신간회가 분명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헷갈렸던 흑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 친구는 그것도 정확하게 모르냐고 타박을 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백하자면, 암기국사의 한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 꽤 심각하게 반성했던 터라, 아직도 꽤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그 뒤로는 반대로 생각하기가 중요하지 않을까? 라고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신민회는 어떤 단체였나요? 라는 질문에 우리가 괜찮은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요. 따라서,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고요.

 

 일제의 탄압이 불보듯 뻔하고, 국권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싸워나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구한말의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던 멋진 선조들이 있기에, 우리가 근대사를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