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평등사회로의 이행 2부 - 의식주 생활의 변화

시북(허지수) 2014. 1. 28. 22:46

 신분제가 법적 폐지가 되었고, 이제 다른 이야기들을 봅시다. 편안하게,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요. 지난 문서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년이 더 흘러, 1896년에는 드디어 호적에 신분을 기재하지 않게 되었고요, 직업을 기재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법적으로는 폐지되었다고는 해도, 한 2년 정도까지는 호적을 떼보면 그 사람의 신분이 딱 적혀있었던 겁니다. 이제는 이런 관행도 바꿔야 하겠네요. 따라서, 1896년부터는 호적에 직업만 기재하도록 바꾼 것입니다.

 

 아니, 그런데 직업은 기재해야 한다면서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는 직업을 보면서 어느정도 신분적인 지위를 유추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김ㅇㅇ씨 호적을 보니까, 직업이 도살(!)하는 사람 이라면서요, 그렇다면 천민출신? 이런식이지요.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살짝의 한계가 있었던 과도기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죠. 뭐, 그래도 신분이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고정된 개념이라면, 그에 비해 직업은 의지에 따라서 바꿀 수도 있었으니까, 갑오개혁 이후 법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며, 인간 자유가 확대된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이 무렵 독립협회의 이야기도 해야겠네요. 1896년 독립협회의 초기에는 계몽활동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협회는 본격적인 정치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활약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파악해보면, 세상이 바뀌었구나를 실감하게 됩니다. 1898년 만민공동회 때, 회장을 맡은 사람은 시전상인 출신입니다! 그리고 관민공동회 때는, 백정출신이 연설을 하게 됩니다. 사회가 빠르게 변해가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시전상인이라면, 예전 신분제 시절의 "상민"인데, 이제는 모임의 장, 지도자를 맡을 정도로, 신분제의 영향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으며, 관민공동회 때는 백정임에도, 전직 양반들과 관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당당히 연설할 수 있는 파격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급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상상하기 힘들었던 풍경이, 현실이 되어가는 역사의 놀라운 장면. 인간의 의식이 정말로 달라질 수 있구나를 놀라울 정도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헌의6조에서는 피고의 인권을 존중하라! 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인권"이라는 단어는 예전부터 있었던 개념이 결코 아닙니다.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근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조선도 근대화가 되어가고 있음을 사회 및 언어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고요. 우리는 여기까지, 독립협회의 엄청난 발전적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주요사건은, 일제강점기 때인데, 1920년대에 형평운동이라는 게 있습니다. 백정들이 신분차별폐지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형평(衡平)이라는 것은, 백정들이 고기의 무게를 잴 때 사용하는 저울입니다. 그 저울처럼 평평한 사회를 만들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의아할 수 있습니다. 아니, 신분제는 분명 1894년에 법적폐지가 되었는데, 차별이 그럼 그렇게나 계속 존재해 왔던거에요? 엄격하게 파악한다면, 여전히 차별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실제 백정의 호적에는 이름 위에 붉은 점이 찍혀있는 등 표식이 되어있었고, 이것은 당연히 백정이 직업을 변경하는 데 큰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들여다본다면,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사람들이 오랜 기간 가지고 있는 머릿속 관념은,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리셋되면서 확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최샘의 표현을 빌려, 재밌게 비유하자면, 학창시절에 볼 수 있는 "우리 야자타임 5분만 하자! 편하게 한 번 말해봐!" 라고 멍석을 딱 깔아주더라도,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곧바로 반말을 하기는 꽤 어렵습니다. 보통은 한 30초... 1분... 정도 머뭇거리다가, 누군가 포문을 여는 순간! 그 때부터, 슬슬 발동걸리면서, "샘! 첫사랑 언제임? 인기없었지?", "수업 끝나고 롤이나 한 판 하러 가자!", "요즘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등등 각종 험한(?) 말이... (머리가 지끈지끈-_-;) 하여간, 웃자고 하는 이야기고요. 곧바로 의식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기 까지에는, 제법 시간이 걸릴 때가 있어요. (*학자에 따라선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친 이후쯤 되어야 신분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간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신분제의 관념은 여전히 남아서, 백정들을 차별해 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백정들이 형평운동을 일으키며, 차별을 폐지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다만, 시험을 대비해 유의해야 할 점은, 신분제는 이미 폐지되었다는 점. 따라서 형평운동의 경우 백정을 차별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이지, 신분제 폐지 주장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신분제 폐지 주장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엔 등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접근해 봤을 때, 역사의 방향은 인간 해방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분제가 폐지되며, 인간 해방은 거기서 완전히 끝난 걸까요? 그렇지 않았잖아요, 여전히 차별이 있었던 걸 보았습니다. 그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 자유로워진걸까요? 물론,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인간 해방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 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논란이 많았던 학생들의 인권 조례만 봐도, 이게 예전 시대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학생에게 자유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또 누군가는 "그래! 학생들도 헤어스타일 자유롭게 하고, 기본적인 선택의 자유들은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조용한 무명블로그인, 저는 특정한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도 이와 같이 자유를 향한 논란들은 계속 진행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혹은 어디서부터 제한할 것인가.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지 않나요. 하하.

 

 이어서 의식주 생활의 변화도 살펴봅시다. 부담없이 그저 즐겁게 봐주시면 충분해요. 중요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대목에 가까운 그야말로 편안한 내용들입니다. 자, 사회의 제도가 변하면, 삶의 모습도 변해가기 마련입니다. 개항 이후, 삶의 풍경이 달라지는 "의식주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째, 옷에 관한 이야기. 관복은 원래 한복이었다가, (을미개혁 때) 두루마기로 바뀝니다. 그 후, 1900년이 되면 이제는 양복으로 바뀌고요. 시험에 비중있게 나올만큼 중요한 건 아니고, 한 번 알아두면 재밌는 이야기랄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들, 주로 다 양복이잖아요. 양복을 다른 말로 풀어쓴다면, 서양 스타일의 옷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정장 외에도, 캐주얼한 옷, 입고 다니기 편안한 옷들은, 1900년 이후부터 다들 입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 먹는 것 이야기. 옛날에는 독상을 차려 밥을 먹는 모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아버지상 따로, 어머니상 따로, 이런식으로 밥을 먹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사회가 바뀌어 가면서, 겸상이 널리 퍼져나갑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 좋게 함께 밥먹는 모습들이 시작됩니다. 아니! 이건 뭐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네, 그렇지만 이렇게 함께 밥먹게 된 것은, 불과 백여년 전부터 겸상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어갔고, 그전까지는 독상이었어요. 이점도 재밌지요 :)

 

 *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밥을 따로 드신다고요? 큰일이네요. 이거, 어쩐지 문제가 있는데요... 아? 요즘 다들 그렇게 산다고요? 아이쿠, 곤란합니다! 뭐, 웃자고 하는 농담이고, 사이 좋게 함께 밥먹는 문화는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닙니다! 아직도 간혹 오래된 시골 마을에서는 남편 독상을 먼저 내오고, 그 다음에 아내 독상을 해서 밥을 먹는 어르신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이것이 다 독상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헐!?!?!? 네??? 요즘은 아내가 테이블에서 밥먹고, 남편은 바닥에서 아기들 밥 떠먹여주고, 애들 식사 챙겨주느라 바쁘다고요... 네, 요즘 다들 그렇게 삽니다... (!!!) 사실은, 아내들 무척 육아에 힘이 드니까요. 따라서, 살림은 원래 함께 도와가면서 하는 거에요. 그죠, 좋은 남편 여러분! 힘내셔야 합니다! 다정한 아빠, 좋잖아요!

 

 여하튼, 독상이 사라져가면서, 겸상과 함께 두레상이라고 해서, 온식구가 함께 밥먹는 모습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제는 분명히 달라졌기에, 오늘날 나 먼저 밥먹을테니까, 독상 내와! 라고 요구했다간, 아내에게 곧바로 헤드락 혹은 그대로 법정으로 갈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곁에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

 

 그리고 먹꺼리로는 개항 이전에 담배와 고추가 들어와 있었고요. 개항 이후에는 대표적으로 커피가 들어옵니다. 고종이 그렇게 커피를 좋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커피 마시는 전용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했고요. 덕수궁 정관헌에 가면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해요. 거기서 커피 한 잔 즐겨보시는 건 어때요? 덧붙여, 저도 커피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커피와 음악은 인생의 기쁨! 그렇지 않으세요? 하하. 커피 외에도 홍차와 호떡도 들어왔습니다. 홍차나 호떡은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로부터 들어오는데, 호떡도 크게 유행을 합니다.

 

 아이쿠, 이번에도 분량이 너무 길다보니, 잠깐만 끊고, 3부에서 계속 이어갈께요. 아직 남은 주거 이야기와 이주민 이야기들은 정리중이니, 가능한 빨리 올리도록 노력할께요 :)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The 5 Elements of Effective Thinking 中) "작은 발걸음이 나를 그 곳에 도달하게끔 할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은, 위대한 사람만이 위대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믿는 학생보다 훨씬 성적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작은 발걸음, 첫 걸음. 사소해 보이는 이것은 에세이를 쓰거나 실험실 연구를 하는 것에서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아울러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목표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만큼이나, 목표를 향해서 작은 발걸음을 시도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 마음을 비우고 공부에 올인하겠다는 목표는 처음에는 무척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무엇보다 앉아서 책부터 펴보겠다는 작은 발걸음은 달성하기가 아주 간단합니다. 그렇게 작은 지점부터 서둘러 시도하는 것이, 귀중한 시간을 많이 아껴줄 수 있습니다.

 

 음, 저는 작은 발걸음을 생각해볼수록, 굉장히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글을 써보려는 사람은 많은 경우, 끝마치지 못한다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공부를 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한 걸음을 걷기 보다는, 적당히 유혹에 파묻혀서 시간을 보내기가 훨씬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혹 유명한 작가 중에는 노트북의 랜카드를 제거해버리고 인터넷을 못 쓰게 만든 후에야, 컴퓨터로 작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흔들리기 쉬운 인간의 의지 대신에, 주변 환경을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맞춰나가는 현명함이랄까요. 작은 생각의 차이, 작은 발걸음의 힘, 오늘도 힘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동기를 불어넣어보세요. 할 수 있어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선 안 돼요!

 

 짓고 있는 집과, 짓다가 만 집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짓고 있는 집에서는 기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면, 짓다가 만 집은 폐허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노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력하는 모습 속에는 희망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하다 말고, 집어치워 버리고, 아무렇게나 살기 시작한다면, 그 삶은 서서히 폐허처럼 변해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살지는, 지금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여 봅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