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리뷰

시북(허지수) 2014. 3. 11. 17:38

 관계.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결국 인생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진이 거의 절반, 여행의 감성이 거의 절반, 그렇게 풍경과 추억이 빼곡하게 가득 들어차 있는 풍요로운 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야기를 남겨놓을까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나이든 한 사람이 나를 외롭지 않게 덮어주었던 경험 - 자기는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 이 존재한다는 이야기" 가 대단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정확하게 위와는 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타인은 없고 언제나 자기 입장부터 챙기는 계산적 사람" 그 역겨운 오만함을 저는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알게 된 것은, 나에게도 그렇게 역겨운 오만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보면, 마치 거울 속 추레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혐오감이 들어서, 싫어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일종의 심리학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속물이 속물을 알아본다는 느낌.

 

 예를 들면 이런 거겠지요. 어느 아이가 한 달치 용돈으로 5만원을 받았는데, 받자마자 그 돈으로 문화상품권을 즉시 다 구입하고, 기뻐하는, 그 이상하고 묘한 풍경. "나만 즐거우면 그게 최고지." 그 철없는 풍경은, 산다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일 뿐, 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끌어내립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우리가 "자기는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자 : 이병률 저 / 출판사 : 달

 출간 : 2012년 07월 04일 / 가격 : 13,800원 / 페이지 : 300쪽

 

 

 인생을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들은 가슴 한 편에 날아와 깊숙하게 박힙니다.

 

 "높은 것, 아름다운 것, 벅찬 것, 기쁜 것, 영원한 것, 그것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그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에게 바퀴는 굴려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놀래킬 수는 없다.

 

 아무도 나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삶. 세상이 나를 등졌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충분히 망친 삶.

 

 내가 하지 않았던 일들의 길고 긴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뭔가를 저지르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향해 돌아설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을 걸어올 것이다."

 

 저는 기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설레였던 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지 않았던 길고 긴 목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지워나갈 엄두 조차 나지 않아서, 쳐다 볼 때마다 괴로웠던 길고 긴 목록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일들이라면, 그냥 손 놓고 포기하는 것도 퍽 괜찮은 지혜라면서... 그렇게 합리화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았는데...

 

 예를 들어, 가우디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생전에 결코 완성할 수 없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아름다운 건축물의 꿈을 이뤄보기 위해서, 긴 세월 도전을 해나갔다고 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해도 뭐 어때, 그래도 가는 거지." 라는 영민하고 강인한 정신이 저는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두서 없는 리뷰가 되겠지만, 또한, 속이 시원히 뚫리는 표현들도 있습니다.

 "조금 안다고 뭐 그리 대수겠는가. 많이 아는 체하는 날들은 고개 숙이지 못하게 한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면 남보다 먼지를 더 들이마시게 되고 그 먼지는 씻겨나가지 못하고 몸 안에서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생각과 함께 돌이 된다. 조금은 바보 같기로 한다. 눈을 감고 잠시만이라도 모르기로 한다."

 

 저는 그래서 또한,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리뷰를 마치며, 저는 잊혀지지 않는 한 우화가 생각났습니다. 작은 배 위에 있는 물고기가 엄청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폭풍이 온 것 같습니다. 세차게 비는 쏟아지고, 파도는 이제 배를 삼켜버릴 만큼 어마어마해 졌습니다. 무섭고, 악몽 같습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바다 속으로 뛰어내리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렇게 바다를 누비면서, 열심히 헤엄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 폭풍이 아무리 와도,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바다 속 물고기는 개의치 않을 테니까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발견하는 지혜, 그것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삶은 근사해질까, 얼마나 삶은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오래도록 하던 요즘이었습니다.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도 않은 상태임을 자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나 놀랍고, 멋진 일들이 가득한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두려움으로 하루를 낭비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충분히 살아가는 상태로 하루를 채워나간다면, 그렇게 인생이 물들어 간다면, "아, 그런 삶이란 참 좋구나." 라고, 드디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2014.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