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근대 문물의 수용 - 전등, 전화, 전차, 병원 이야기

시북(허지수) 2014. 3. 13. 20:39

 박문국 이야기를 지난 문서에서 신나게 했습니다만, 이번 문서에서도 여러가지 새로운 시설들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기기에 딱 좋은 문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론은 이쯤 하고, 어서 다른 시설들을 살펴봅시다. 박문국에서 신문을 발행했다면, 전환국에서는 화폐 주조를 하였고요, 기기창에서는 무기제조를 맡아서 했습니다.

 

 이번 문서의 키워드 중 하나는 갑신정변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갑신정변 이후에는 개화의 흐름이 약간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체적 예를 들어 봅시다. 개화가 시작될 무렵에는 급진 개화파도 있었고, 새로운 문물들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갑신정변(1884) 이 일어났고, 거사를 일으키면서까지 급진 개화를 이루고 말겠다며, 과감한 미래를 꿈꾸었던 청년들도 있었음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잘 알다시피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났고, 이 사건 이후에는, 개화의 속도가 다소 늦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갑신정변 처럼 큰 사건을 겪게 되자, 정부는 서둘러서 전신(1885)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영화 같은데서 모스 부호 같은거 전송하는 장면 본 적 있나요. 뚜 뚜 뚜뚜뚜... 비상상황, 긴급상황, 이런 이야기를 아주 빠른 속도로 전달할 수 있게 되는거지요. 예컨대, 인천에서 커다란 사건이 터지면, 초고속 (당시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번개처럼!!!) 으로 순식간에 서울까지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이처럼 소식을 공유하는 시설은 국가적인 이유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인터넷도 처음에는 미국 국방성의 통신망 연구로 출발했고, 뒤에 나올 경부선 개통도 러일전쟁을 유리하게 진행하고자 지원하려는 측면이 있었고요. 등등...)

 

 시간이 약간 더 흘러서, 1887년에는 전등이 도입되며, 처음으로 경복궁에 불이 들어오면서 켜집니다. 와우! 얼마나 감탄스럽고, 놀라웠겠어요!!! 깜깜한 밤인데도, 이제는 환하게 밝혀지고 있는 왕궁의 모습이라니! 아마 당시의 사람들은,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오는구나!" 라면서 신세계를 본 것처럼 경이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를 재밌게 즐겨보시라고, 여담 몇 개를 덧붙이면, 실은 경복궁의 전등은 무슨 빛의 축제처럼, 밝고 환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뭐, 완전 초창기의 기술이니까, 성능이 요즘 말로 "그닥"이었나봐요. 불을 켜놓았던 것이, 꺼졌다가, 켜졌다가, 또 깜빡거리다가, 건들건들 위태위태 하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경복궁 내에서 고이 키우던 물고기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참사도 일어납니다.

 

 헉... 좀 무시무시하지 않나요? 이건 뭐 전등괴담인가요? 사실 초기의 전등은 증기 기술을 이용해서 불을 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등을 켜고자, 발전기를 돌리며, 주변의 온도를 후끈하게 올리다보니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물의 온도가 뜨뜻해 진거였어요.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왕궁 고기. 아이고, 하여간 에피소드가 여럿 있었습니다. 한국 근대사 재밌지 않나요. 하하.

 

 다시 진지모드로 돌아와서, 갑신정변 이후의 개화 흐름은, 약간은 느슨한, 동도서기에 입각한 개화시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동쪽의 도를 유지한 채로, 서양의 기술만을 받아들이자 라는 흐름이었지요. 쉽게 생각하면, 더 이상 빨리빨리 받아들이며 확확 개화하자라는 주장들은 정서상 통하지 않았던 거에요. 갑신정변 이후에는, 온건하게 개화가 추진되는구나 정도를 이해해 두시면 충분하겠네요.

 

 이제 시간을 쭉 뒤로 갑니다. 1898년, 한국에 전화가 놓여지게 됩니다. 1890년대의 후반부는 어떤 시대였을까요? 혹시 떠오르는 게 있나요? 독립협회나 대한제국이 생각난다면, 아, 정말 훌륭합니다! 그렇지요. 대한제국이 광무개혁을 추진하였고, 사회적으로는 근대문물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문물 중에서도, 전화는 참 대단(!)했습니다. 이를테면, 고종이 신하에게 전화해서, "나다!" 이러면, 전화기를 잠시 앞에 놓고, 의관을 다시 딱 차려 입고, "전하, 말씀하시옵소서" 이런 식으로요. 매우 정중한 예를 다해서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전화를 통해서 "내가 하는 말들"이 멀리까지 전해지면서 가니까, 너무 신기한 나머지, 이참에 아예 짐보따리까지 전화선에 딱 연결해서, "이 짐 역시도 내 목소리처럼 저 먼 곳까지 도착할 꺼야"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아, 잘 지내니, 지금 전화로 내 당부의 말 뿐만 아니라 선물할 짐도 같이 전달하마. 자, 받거라." 그러나, 당연히 선물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웃자고 하는 에피소드지만, 다 실화입니다 :)

 

 (*에이, 우리도 다 마찬가지에요. 사람 사는게 다 똑같잖아요. 수 년전, 애니팡이니, 무분별한 하트전송이니,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는, 어떤 선생님이 밤늦게 하트를 받고서 당황스러워 했다는 이야기. 처음 일어나는 일들은 적응하는데까지 누구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기차가 화면 먼 곳에서 다가오는 장면이 너무 생동감 있게 느껴져서 극장에서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고요. 훗날 기술이 많이 발전하면, 우리는 커다란 대형화면 대신에, 오히려 작은 안경TV 같은 것을 쓰고 영상을 볼지 누가 알겠어요!)

 

 아 전화 외에도, 한성전기회사가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드디어 1899년에는 전기의 힘으로 운행이 되는, 위엄 넘치는 전차가 개통되었습니다. 1899년 전차의 도입은 특히나 시험에 잘 나오니까 힘주어 체크해두세요. 사실 1899년을 키워드로 잡아볼 수 있는데요. 예컨대, 1899년은 대한제국 시기 중에서도, 광무 개혁을 통해 일종의 법인 "대한국 국제"를 반포한단 말이에요.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시키고, 원수부 설치해서 군권도 장악해 버리고요. (광무개혁은, 이미 지난 문서에서 배웠던 내용의 복습입니다 >.<)

 

 그 시기와 맞물려 들어가면서, 황제가 지금 이렇게 강하고 위엄 있어, 이 전차를 한 번 봐! 이렇게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권 측면에서도 "대한 제국이 잘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1899년은 전차 외에도, 기차 경인선이 처음으로 개통된다는 것까지, 중요하니까 잘 기억해 두세요~ 여담으로, 전차 관련 에피소드로는 1895년 을미사변 때, 고종의 아내 명성황후가 시해되잖아요. 이후, 고종은 아내의 묘를 갈 때 주로 전차 이용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기차 이야기를 좀 더 한다면, 1905년에는 경부선이 개통되었고요, 1906년에 경의선이 개통됩니다. 조금 꼼꼼히 살펴본다면, 1899년의 경인선에 비해서, 경부선과 경의선 개통 시기가 상당히 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략 6~7년 정도 시간차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철도 개통 시기와 관련된 문제나 지문들이 시험에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따라서 세밀하게 파악해 두신다면 좋겠습니다.

 

 재차 정리해 본다면, 경인선은 대한제국 광무개혁 시기 (대한국 국제 반포, 전차 개통 등) 와 겹쳐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시면 되겠고, 경부선과 경의선 개통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사건은 러일 전쟁이라는 점. 즉 러일 전쟁을 보다 수월하고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나아가 대륙 진출을 바라면서, 일본 세력이 경부선과 경의선을 놓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철도에 따라서 연결되는 사건 역시도 약간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 두면 좋습니다.

 

 참 그리고, 경부선과 경의선의 철도부설권은 훨씬 이전에 획득이 되었어요. 이 지점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경의선의 경우 1896년에 프랑스에서 부설권을 가져간단 말이지요. 그에 비해서 실제 철도 개통은 10년이 더 지난 1906년이었습니다. 경부선의 경우는 1898년 일본이 부설권을 확보했었고, 경인선은 1896년 미국이 부설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철도부설권의 획득은 1890년대에 있던 일이고, 실제 철도가 개통되는 시기는 그보다는 좀 뒷부분이구나도 꼼꼼히 이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부설권은 일본이 죄다 사들여서, 일본이 철도길을 깐다는 특징도 있겠고요.

 

 이제 다음 이야기로, 병원에 대하여! 갑신정변(1884) 때, 민씨 세력이 상당히 많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 때, 알렌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외과적 방법(칼을 통해)을 통해 다친 민씨 사람들을 살려내는 놀라운 일을 보여줍니다. 오? 이 사람 능력자? 그래서 명성황후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알렌에게 당신 원하는게 뭐요? 라고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알렌 왈, 병원을 하나 세우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광혜원이라는 최초의 근대적 병원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광혜원은 바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1885년부터 제중원으로 불리게 되었고요.

 

 그런데 광혜원, 제중원와 관련해서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아, 중요한 대목은 아니고, 에피소드니까 그냥 술술 읽고 넘기시면 됩니다. 과연? 광혜원은 어느 대학교의 전신인가!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니 만큼, 광혜원의 뒤를 잇고 있다는 게 어쩐지 대단히 멋있잖아요. 그래서,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각각 우리가 광혜원의 뒤를 물려받은 병원이다 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수님들이 논문까지 써가면서, 우리 학교의 병원이야말로, 근대적 병원의 원조다! 한국 최초의 병원에서 출발한 원조의 품격이 있다! 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광혜원의 출발은 국가에서 세웠는데 오래 못 갔습니다.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민간에서 운영을 하게 되었단 말이지요. 제중원은 훗날 1904년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세브란스요? 네, 드디어 이쯤에서 연세대학교 병원의 느낌이 납니다. 어? 근대 병원의 시작과 역사는 연세대 맞네!!!

 

 자, 그런데? 광혜원은 국가가 지원을 해서 세웠던 병원이었고, 도중에 민간에게 넘겨줬잖아요, 그런데, 그 뒤를 이어서 국가가 병원을 또 하나 더 세웁니다. 이름하여, 광제원이라는 병원이 1899년에 만들어졌어요. 광제원이 등장하는 시기 또한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광무개혁 시기다보니, 뭔가 국가에서 눈에 보이는 일들을 많이 합니다. 이렇게 접근해 본다면, 국립병원의 계보라면, 광혜원->광제원->대한의원(1908년)->자혜의원(1910년)→오늘날 서울대병원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거지요. 물론, 대한의원이나 자혜의원은 일제 통감부가 내세웠던 유화정책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양식 근대적 의료시설을 만들어서 지원하고 있다 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니까, 국가주도의 병원 흐름만을 집중해서 보면, 근대 병원의 효시가 서울대 병원이라고 해도 충분히 맞는 것 같긴 합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중간에 쉬지 않고 광혜원이 민간으로 넘어가서 제중원에 이어, 명맥을 유지해왔던 것은 연세대 세브란스라는 거지요.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이럴 때는 다니는 출신 학교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연세대를 다니면, 역시 세브란스가 흐름을 이어온 병원의 원조지!!! 서울대를 다니면, 서울대 병원이 국가주도 의료시설의 원조야!!! 라고 주장하게 되는 법입니다. 하하.

 

 이번 문서에서 유독 에피소드를 일일이 살펴본 까닭은 논쟁의 측면이 아니라, 사실은 근대에 있었던 일들이, 지금 현재와도 얼마든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한결 역사가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코 먼 옛날의 일들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렇게 재밌는(?) 에피소드가 연결되고 있다라는 점. 아, 물론 시험을 대비해서는 의료기관이라고 한다면, 광혜원, 제중원 정도만 알고 계셔도 충분합니다 :)

 

 개항기 문화 이야기들은 다음 문서에서 계속됩니다. 이래저래 너무 길었네요...

 

 오늘의 영감 - 주간지를 보다가, 스마트폰의 발전은 이제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라는 의견을 본 적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최고수준의 갤럭시S4나 듣보잡(?) 신흥 중국업체가 만든 MI3은 당황스럽게도 거의 비슷하게 "스냅드래곤 800과 풀HD 화면에 2GB 램" 성능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사용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인 배터리의 성능 향상도,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 동원되지 않는 이상, 적은 크기로 고용량 배터리는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근대화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 우리는 첨단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무한히 앞으로만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음, 생각해보면, 그렇다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여전히 휴대폰이 가지는 취약점이 바로 배터리 라고 한다면, 이 점은 정말이지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도 밥을 잘 먹고, 잠을 푹 자는 등 충분한 재충전이 되어야, 삶이 훨씬 만족스러워 질테니까요.

 

 오래 전, 무조건 행복할 것 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한 시간만이라도 더 일찍 자는 습관을 연습해서, 조금의 변화를 주었더니, 훨씬 삶이 생기있어 지더라고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고보면, 너무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그냥 이불 덮고 잠을 자고 나니 조금은 괜찮아지더라, 라고 말하던 분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우리의 정신 만큼이나, 우리의 몸과 신체 각 기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존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이제 봄이 오는 만큼, 장거리 산책을 해보거나, 가벼운 동네 산행을 시도해 보면, 의외로 맑은 공기만으로도 기분 좋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피곤에 지쳐서 심야에 쓰는 글과, 정신이 또렷한 시간에 쓰는 글은 분위기 자체가 다를 때가 있네요. 어쩌면 사람은 참 단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더 잘 자고, 조금만 더 건강한 것을 먹고, 조금만 더 몸을 움직이고, 그렇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