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국권의 피탈과정 1부 - 1904년 한일의정서와 1차 한일협약

시북(허지수) 2014. 4. 11. 00:05

 혹시 한일합방 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요. 한일합방에 담긴 속 뜻은, 한국과 일본이 합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쭉 살펴보았듯이, 조선과 일본 과연 이 두 나라가 대등한 관계에서 각자 의사에 따라 합해진 건 전혀 아니었잖아요. 따라서,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기에다 덧붙여 한일합방 00주년이라고 쓴다면, 정말 낯뜨거운 일입니다. 나라가 외세에 의해 망한 걸 기념하는 것도 아니고, 주년이라니요? 우리는 분명하게 말해줘야 합니다. 올바른 표현은, "한일 강제 병합" 또는 한일 병탄 으로 써야 한다고 주변에 꼭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문서에서는, 일제에 의해 하나씩 국권이 피탈되며, 대한제국이 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발점은 1904년 러일전쟁으로 잡아봅니다. 여기서 예상을 깨고, 대국 러시아와 전쟁을 펼쳐서 승리한 쪽은 일본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로는, 러시아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타이밍이 좋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로서는 일본과 전쟁을 계속 지속해 나가기가 어려웠던 입장이었으니까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러일전쟁의 승전국은 일본이 되었습니다.

 

 러일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고종의 입장은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청일전쟁(1894)이 일어났을 때, 두 나라가 서로 싸우던 무대가 어디였습니까. 바로 조선이었단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일본이 정면으로 맞붙게 되면 중간에 있는 조선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국외중립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중립국이다! 라고 의사표현을 한 것입니다. 러시아편도 안 들어! 일본편도 안 들어!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중립을 이야기 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어느정도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조금 냉정히 접근해 본다면, 힘이 없으면, 국력이 없으면, 중립을 선언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소망일 뿐입니다. 현실에서는 중립선언을 했다고 해서 강대국이 조선을 결코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1885년 무렵 영국이 거문도땅을 무단으로 불법 점령했을 때, 유길준이나 부들러 같은 사람이 조선은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논의를 펼쳐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의 조선은 청나라를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에, 중립국이 되자는 주장은 별달리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1880년대 당시 갑신정변(1884)을 거치며, 조선은 청나라의 심한 내정 간섭을 겪고 있었고, 따라서 중립국이 되자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이번 문서의 시점인,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날 무렵에는, 이제 고종도 나름대로 중립국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십여년전 청일전쟁 때, 조선이 전쟁터가 되는 참상을 겪으면서 심경이 착잡했겠지요. 그런 배경 속에서, 조선은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과감하게 국외 중립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힘없는 나라가 중립선언을 한다고 해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일본은 고종의 중립선언을 간단히 무시하고, 이참에 조선을 전쟁의 도구로서 활용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자신들의 야욕을 깔기 시작합니다. 이제 1904년에 일어났던 일들을 세부적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봅시다.

 

 첫 번째, 한일의정서를 체결합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군용지(군사적 땅들)를 일본이 마음껏 쓰겠다는 겁니다. 군용지라는 말이 보이면, 한일의정서와 러일전쟁이 바로 떠오를 때까지 노력해 봅시다. 하하. 여하튼, 참고사항으로서 한일의정서에는 외교적 표현들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과 일본은 상호승인을 거쳐서, 외교적 일들을 처리한다고 협약을 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외교권박탈(=1905을사조약) 단계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다시 말해, 한일의정서는 "러일전쟁 수행을 위해서, 일본이 조선의 군용지 좀 쓸께, 그리고 상호 승인 하에 일처리를 할께." 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제 일본에서는 어떻게 해서, 조선을 "자기네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 좌지우지 맘대로 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검토합니다. 이 때, 거론되는 대표적 문서로, "대한시설강령"이 있습니다. 대한제국에 있는 주요시설들을 일본이 어떻게 쓸 것인가를 자기네들끼리 논의한 셈입니다. 구체적 주요 내용으로는, ⓐ 일본인들을 조선에 많이 이주시켜보자 ⓑ 조선 땅에 철도를 어떻게 깔고 이용할 것인가 ⓒ 조선의 재정과 외교를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조금 섬뜩한가요. 말하자면, 인구, 재정, 외교 등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부터 하나하나 대한제국(조선)을 장악하고 사용하기 위해서, 지금 일제는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1904년 여전히 러일전쟁은 진행 중에 있었고요. 슬슬 일본이 승기를 잡기 시작하는데, 이 때부터 조선의 본격적인 비극은 시작됩니다.

 

 이리하여, 1904년 초 한일의정서 이후,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고, 이제 일본의 보다 야욕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1차 한일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협약의 내용은 대한시설강령에서 논의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현실화 되어갔습니다. ⓐ 일본인들을 대거 이주시키기 위해서, 먼저 조선의 땅을 빼앗으려 합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땅 다 내놔"라고 했다간 너무 속보이잖아요. 대한제국이 무슨 식민지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래서 조금 더 은밀하게 제안합니다. "황무지개간권"을 일본에게 달라! 황무지를 일본에게 넘겨주면, 그 땅 개간해서 일본사람들 좀 살도록 할께. 라는 겁니다.

 

 어? 황무지개간권 지난 번 들어본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황무지개간권은 애국계몽단체 하면서, 지난 문서에서 중요하게 언급한 바 있었습니다. 이 때, 보안회 및 농광회사가 강력하게 저항하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일본인들에게 땅을 넘겨준다니, 말도 안 된다!"라고 적극적인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황무지를 개간하고, 일본인을 대거 이주하고자 했었던 일본의 속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 한편, 철도부설의 경우는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경부선(05)과 경의선(06)이 차례로 개통되었고요.

 

 1차 한일 협약의 핵심 내용은 고문이 파견되었다는 겁니다! 고문이 뭘까요? 사극 같은데서 나오는 주리를 틀고, 괴롭히고 하는 그 고문? 아닙니다!!! 그런 고문이 아니고요. 여기서 말하는 고문 파견이란, 예컨대 어떤 단체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나, 또 중요한 분들을 고문이라는 자리로 모셔와서,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듣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조직에 고문이 있다는 것은 쓴소리도 듣고, 바른소리도 듣고, 결정을 더 잘하겠다는 긍정적 의미가 있겠지요. 그런데, ⓒ 1차 한일 협약에서 고문이 파견되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좀 심각합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일본 측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고문이 파견되었다? 따라서 조선은 일본 측 고문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결정한다? 이건 명백한 내정간섭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조선에서 정치적 결정을 할 때, 일본의 입맛이 그대로 반영될 위험성이 아주 높아진 것입니다. 고문 파견에는, 일본의 의도였던 재정과 외교를 장악하기 위한 사람들이 파견되었습니다. 재정고문으로는, 메가타가 파견 되었고요. 외교고문으로는 스티븐스가 파견되었습니다. 아, 스티븐스는 몇 년 뒤에 장인환, 전명운에 의해서 미국에서 피살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을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나쁜XX 니까, 항일무장투쟁 노선을 걷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그대로 공공의 적, 처단해야할 죽일 놈이었던 겁니다.

 

 또한 1차 한일 협약에서는, 외교에 대하여 조선과 일본은 "협의해서 결정한다" 정도로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외교에서 일본과 상의할 수 있는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곰곰이 생각해보면, 1904년 한일의정서나, 1차한일협약 자체가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왜 한 나라가 외교권을 행사하는데, 일본과 상호 승인을 해야하며, 일본과 상의하고 협의해야만 한단 말입니까. 그죠? 어쨌든, 1904년부터 그만큼 상황이 나쁘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조선의 외교권이 있었습니다만, 지금 상황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즉, 일본은 군용지에서부터 재정과 외교까지 전방위로 장악하기 위해서, 안팎으로 무서우리만큼 집착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그림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척 안타깝고, 슬프고, 아픈 순간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메가타라는 재정고문이 조선에 파견되었습니다. 이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다음 문서에서 계속 살펴볼께요. 국권의 피탈과정 2부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저는 당장에 떠올랐던 것이, 일본 아베 정권의 21세기 적극적 평화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계속해서 집단자위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도 그랬고요. 역사적 장면을 살펴본다면, 1904년 한일의정서에서 먼저 추구했던 일이 군용지 좀 같이 쓰자는 겁니다.

 

 우리는 아베정권을 극우라고 부르지만, 일본 내에서는 보수정권이라 부른다는 점도 떠올랐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일본은 적극적 평화를 추구한다는 명분을 앞으로 내세우면서, 뒤로는 천천히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백여년 전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내세웠던 구호 중에는, 조선과 일본은 공동의 운명이며, 동양의 평화를 영원히 확보하기 위해서 군사적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게 등장합니다.

 

 즉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녕를 위해서는 전쟁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따라서 조선의 군용지야 좀 쓰면 어떻겠는가, 라는 것... 이런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아주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교 쪽도 협의해서 진행하겠다고 처음에는 접근해 오다가, 어느새인가 노골적으로 외교권을 장악해 가고 말이지요. 땅부터 탐낸다, 군용지부터 같이 쓰려한다, 재정의 취약한 점을 노린다, 꼭 오늘날 일본의 모습과도 참 잘 들어맞는구나 싶어서, 저는 제법 놀라기도 했습니다. 뼈아픈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두 눈 똑똑히 뜨고 배워가는게 아니겠어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시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이고, 어려운 순간을 헤쳐나가야 할 때에도, 각각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것에 저항하는 정신"이야말로,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애국하는 마음"이야말로, 총검보다 더 힘이 센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은 내코가 석자요, 정글 같은 경쟁사회에서 나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렇게 비극적인 정글을 만들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국가의 몰락도 가깝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었네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