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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특급공격수 루이지 리바

시북(허지수) 2008. 4. 2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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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igi Riva : From Wikipedia


 루이지 리바! 그 이름이 생소하신 분도 많으시겠지만, 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최다골(35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레전드 선수입니다. 세리에 소속 칼리아리팀 불멸의 레전드이기도 한 루이지 리바의 이야기 입니다.

 프로필

 이름 : Luigi Riva (애칭인 Gigi Riva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생년월일 : 1944년 11월 7일
 신장/체중 : 180cm / 78kg
 포지션 : FW
 국적 : 이탈리아
 국가대표 : 42시합 35득점

 이탈리아 특급 루이지 리바, 칼리아리의 전설적 이름.

 루이지 리바는 세리에C 소속의 레냐노(Legnano)라는 팀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3부리그 팀에서 별 볼일 없는 스타트 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최다골을 넣다니... 그는 실력 하나로 이탈리아 정상에 우뚝 섰던 별이었습니다.

 레냐노 팀에서 한 해를 보내고, 1963년 10대 소년 루이지 리바는 세리에B (2부리그) 소속의 칼리아리 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13년동안, 오직 칼리아리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합니다. 루이지 리바가 실력에 비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이유가 유벤투스 등의 명문팀에서 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청난 금액의 오퍼도 있었으나, 그는 오직 칼리아리만을 위해서 활동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지요.

 칼리아리에 이적한 첫 해, 26시합에 출장해 14득점을 올린 젊은 신동 공격수의 활약에 힘입어 칼리아리는 세리에A 무대로 진출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보통 이렇게 2부리그에서 올라온 팀들은 1부리그의 높은 벽을 못 넘고 몰매를 맞고 다시 강등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걸출한 공격수 루이지 리바가 있던 칼리아리는 좀 달랐습니다. 승격하자마자 세리에A에서도 6위라는 좋은성적을 거두더니, 줄곧 중위권과 상위권을 왔다갔다 합니다. 루이지 리바의 맹활약은 정말 빛났습니다. 67년과 69년에는 득점왕에 당당히 선정됩니다. 1968-69시즌, 칼리아리는 무려 2위까지 치고 올라옵니다. 세리에A 승격한지 5년만에 이 정도의 무시무시한 팀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 중심에 루이지 리바가 있었습니다. 이듬해, 드디어 전설적인 사고를 칩니다. 1969-70시즌, 루이지 리바가 생애 세 번째 득점왕을 차지했고, 이 칼리아리팀은 쟁쟁한 강팀들을 제치고 세리에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 우승트로피는 오늘날까지도 칼리아리의 유일한 우승트로피로 빛나고 있습니다. 특급공격수 루이지 리바를 원하는 팀은 정말 많았습니다. 유벤투스는 1973년 거액을 들고 오퍼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고, 칼리아리만을 위해서 뜁니다. 그리고 그의 등번호 11번은 칼리아리의 영구결번이 되었지요.

 루이지 리바는 1976년 큰 부상을 당해서, 결국 1978년에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에 큰 부상만 안 당했더라면... 여하튼, 통산 289시합에 출장해서 156득점을 올렸습니다. 이는 칼리아리 최다득점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는 1965년부터 활약합니다. 유명한 것은 1968년 유로대회. 결승전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 출장한 루이지 리바는 선제골을 넣으면서, 이탈리아의 유로우승에 결정적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루이지 리바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특급 공격수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칼리아리에서는 더욱 더 사랑 받았겠지요. 하하.) 1970년 월드컵에도 참가한 루이지 리바는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었으며, 4강전 서독과의 대접전 경기에서도 한 골을 넣는 등 큰 활약을 펼칩니다. 비록 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이탈리아가 준우승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루이지 리바의 활약도 매우 컸습니다. 그는 국가대표로 통산 42시합 정도밖에 출장하지 않았지만, 무려 35골이라는 발군의 골결정력을 자랑했고, 이것은 현재까지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골 기록으로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루이지 리바는 종종 이탈리아 역대최고의 공격수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발군의 속도를 자랑하는 드리블과 폭발적인 강렬한 왼발 강슛을 겸비하고 있어서 상대팀 골망을 수 없이 갈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천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쾅 하고 내려치는 천둥 말이지요. 별명에서조차 루이지 리바의 강렬한 포스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루이지 리바, 그는 꿈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속팀... 당시 세리에B 팀이었던 칼리아리가 이탈리아 정상에 서는 꿈이었지요. 그리고 그는 돈 대신에 꿈을 선택했습니다. 강호 유벤투스의 오퍼도, 강호 인테르밀란의 오퍼도 그의 꿈을 막지 못했습니다. 강팀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것보다는, 자신과 소속팀의 작지만 너무나도 큰 소중한 꿈을 이루고자 했지요. 세리에A 우승,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에B팀이던 칼리아리는... 수 많은 루이지 리바의 맹활약에 힘입어서, 정말로 꿈을 현실화 시켰습니다. 강호가 득실대는 세리에A 무대에서 정말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팀에서 충실하게 선수생활 하는 것"을 중요시 했던 루이지 리바의 이 바보 같은 선택은 이후에도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편, 1969년에는 유럽최우수선수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1위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 지안니 리베라였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 리베라가 없었다면, 1위는 오늘의 주인공 루이지 리바의 몫이었겠지요. 당대 이탈리아는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리그가 인기를 끌고 탄탄하니까,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되는 듯 합니다. 또한 이것은 이탈리아가 꾸준한 강호인 이유를 잘 말해주는 듯 합니다. (물론 승부조작도 종종 있어왔지만요 ^^) 이는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외국선수 비율이 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소수 빅클럽들이 유럽클럽대항전에서 잘 나가고 있지만, 정작 잉글랜드 국가대표는 우울한 것과도 대조적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이탈리아의 경우 자국리그도 탄탄한데다가, 현재 루카 토니 같은 일부 국가대표 주포는 타국에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으니, 유로2008 에서도 우승후보임에 틀림없습니다.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유튜브에서 루이지 리바의 영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 정말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 (물론 가끔 옥션 해킹 사태 등의 비극도 발생합니다만... 저도 당했습니다 >.<) 시간이 된다면 2분30초짜리 영상을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상 중간에 멋진 골장면도 몇 개 있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