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해무 (海霧,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4. 8. 25. 18:20

 

 여기 여섯 명의 선원이 모였습니다. 만선의 꿈을 꾸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살기는 살아야 하는데, 배는 낡았고, 물고기는 잘 잡히지도 않습니다. 강력한 포스를 내내 보여주는, 철주 선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이러다 다 죽게 생겼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알아보자. 그렇게 해무는, 무거운 배경과 함께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밀입국 시키는 것이 철주 선장이 맡은 일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는 일. 오랜 동료를 데리고, 그리고 어쩌면 친자식 같은 동식이도 데리고, 철주 선장은 컴컴한 어둠 속으로 배를 몰아갑니다. 해무는 꿈을 싣고 살아가다가, 마침내 그 끝이 "파선"일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해본 적도 없는 조선족 밀입국을 시키다보니까, 한 두명도 아니고, 이거야 원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상대방 조선족들은 허기와 굶주림으로 적대감도 만연해 있습니다. 당장 컵라면 하나를 놓고서도, 호의와 적의라면서 싸우는 소소한 장면들은, 이 배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겠군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한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동수는 조선족 여인 홍매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럴 때 쓸만한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동정심에 그런 것도 아니고, 철주 선장의 정확한 눈매를 빌리자면, 어딘가 홍매에게 홀려 있는 듯한 동수의 모양새 입니다. 홍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가져다 주는 동수의 친절함. 여자라면, 그 자상함에 반할만 하고, 남자라면, 그 근사함에 손발이 오그라들만 합니다. 하하.

 

 영화 해무의 하이라이트는 갑작스러운 연기(해무)와 함께 찾아오는 인간의 떼죽음 입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생선이 들어가야 하는 창고에다가, 결국 인간을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풀을 먹어야 하는 소가, 소를 먹으면서 큰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요? 콩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유전자까지 변형해 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다 줄까요? 무엇보다 안전하게 지어놓았던 원전은 얼마나 빨리 폭발하고 말았나요? 쾌속선에, 당대 최고의 함선이라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있었지만, 인간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해무 역시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비상 상황이라는 핑계를 갖다 붙이고, 인간을 생선처럼 구겨넣어 버립니다.

 

 영화는 이들이 가스 때문에 죽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썩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썩기 시작한 사람은 이제 반(半)미치광이가 되어갑니다. 어차피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라는 이름 앞에서, 폐허 같은 안개 속에서, 생선과 다를 바 없는 시체들을 모두 담궈버리자. 그러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동수와 홍매 외에는 감히 철주 선장에게 대들지도 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영화가 암시하는 희망이 아닐까요.

 

 인간을 생선창고에 넣는 시스템에 대들어라! 너희들이야말로 대들어라! 그래서, 이 배가 없이도 살아가라! 그래서 저는 해무를 무척이나 재밌게 관람한 편입니다. 해무는 그다지 평점이 좋은 영화가 아니며, 널리 호평받는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해무를 통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기에, 저에게 있어서는 무척 괜찮은 작품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매우 즐겨 쓰는 표현을 가져오고 싶은 작품입니다. 조금 각색해서 표현하자면, "여기 지옥이 있다. 자, 지옥에 동참해서, 어쩔 수 없다면서 함께 살아가자. 아니면, 혼자만의 길을 저 멀리 달아나서 걸어가라. 온 힘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그렇게 해서 살아가 보아라. 너만의 세계를 만들라. 이 배를 떠나서 너만의 세계를."

 

 그래서 훈남 동수도 대단하지만, 어여쁜 홍매 역시도 생에 대한 의지가 무척이나 강인합니다. 그에 비한다면 철주 선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 이른바 배에 대한 집착이 대단합니다. 배가 곧 철주 선장이다 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벌써 영화 마무리네요. 동수는 배가 없어도 살아갑니다. 더 놀라운 것은 홍매 없이도 살아갑니다. 그의 과감한 결단은 옳았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싸워봤던 동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홍매 역시도 서울 어딘가에서 이를 악물고 생을 견뎌가면서 버텨가고 있을테지요. 오직 철주의 그릇된 선택만이 물 속 깊은 곳으로 잠기고 말았습니다.

 

 위급한 선택에서는 어떤 것을 고를지가 중요하며, 그 한 번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영화 해무를 통해서 배웠던 것은 "인간의 길"을 선택하라 입니다.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대로 살아가면 되잖아. 그 한 마디를 배웠습니다.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을 만큼, 저도 조금은 나이가 먹어버렸나 봅니다. / 2014. 09. 리뷰어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