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일제의 경제정책 3부 - 인적, 물적 수탈. 공출과 배급

시북(허지수) 2014. 10. 21. 22:28

 

 한편 1920년대에는 산미증식계획 외에도, 회사령을 폐지합니다. 그냥 신고제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어라? 분명 지난 문서에서는 1910년대 회사령이 있어서 민족 자본의 성장을 막았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이 대목에서 주의깊게 살펴봐야할 점은 일제가 왜 그러면 회사령을 폐지하고, 신고제로 변경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1910년대 이제 막 식민지가 된 조선을 일제가 무분별하게 가서 회사를 세운다는 것은, 일본 스스로에게도 좋지 못하다고 판단했던 것 입니다. 충분히 조선을 살펴보고 연구한 후에야, 법령을 정비하겠다는 측면이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제는 1910년대에 회사령을 설치해서, 조선에서 함부로 활동을 못하도록 어느정도 시스템을 깔아놓고, 1920년대에 와서는 회사령폐지 → 신고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서, 조선의 경제에 적극적으로 침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이 무렵 1920년대가 되면 핵심 키워드로, 산미증식계획, 회사령폐지, 관세폐지 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 하겠습니다.


 일본과의 관세 설정은 1883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거의 37년만에 지금 관세를 폐지시키면서, 일본 자본이 조선에서 마음껏 활동하도록 문을 열어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열악하던 민족 자본들은 쭉쭉 들어오는 일제 회사들과 경쟁하려면 여러가지로 힘들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요즘 말로 쉽게 말해, 이제 막 출발기에 들어선 제품과, 상대방은 우린 아이폰 벌써 6 이라고 한다면 경쟁이 되겠어요. 힘들단 말이지요. 아, 덧붙여 1920년대 철도로, 함경선이 개통되었고, 한반도는 X자 모양으로 연결되는 철도노선이 완성되었습니다. 함경선은 수능시험에는 별달리 나오지 않으니까 참고만 하시고요. 하하.


 여기까지 살펴본 조선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비참합니다. 특히 농촌은 산미증식계획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피폐해져갑니다. 그래도 일제가 식민지 조선경제가 완전히 파탄나는 것은 더 좋지 않다고 판단했던지, 1930년대에는 농촌진흥운동을 시행합니다. 시험에서 자주 묻는 항목이니 잘 살펴보아요.

 

 1932-35년까지는 농촌의 생활개선을 추진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노력만 하고. 시늉만 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지요. 1935년 이후에는 일제가 거의 전쟁의 코스를 밟기 때문에, 1935-40년까지의 농촌진흥운동은 그저 진흥한다는 이름 뿐인, 의식 운동에 그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이 농촌 진흥 운동은 1940년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이 점이 난이도 높은 시험에는 종종 등장하므로 체크해 두세요. 농촌 진흥 운동의 시기라고 한다면 1932-40년까지다 라는 점!


 남면북양정책도 있습니다. 1930년대는 공황을 겪어봤던 시기 아니겠어요. 전 세계가 보호무역을 치고, 원료를 구하기는 어려워지는 시기라는 배경을 이해해 둡시다. 공황으로 인해서, 원료가 구하기 어려워진 일본 방직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반도 남쪽에는 면을 재배하고(남면), 한반도 북쪽에는 양을 키우는 거에요(북양). 누구를 위해서? 일본 자본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원료는 어디서 구한다고요? 식민지 조선!!!

 

 1920년대에는 일본 지들 경쟁력 보호한다며 쌀 가지고 그렇게 수탈해 가더니, 이제는 지들의 산업 보호를 위해서 또다시 한반도를 활용하는 거지요. 이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40년대 이후 일제 패망까지 쭉 연결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윗선에 있는 농촌진흥운동과는 약간 마무리가 다르지요? 그런 점을 잘 파악하면 난이도 높은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근현대사를 이렇게 열심히 파고 있는데 자신감을 당연히 가져야죠!


 끝으로, 병참기지화 정책을 살펴봅시다. 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정책입니다. 군수물자들을 확보하고, 준비하기 위해서 한반도를 기지로 만듭니다. 1930년대부터는 중국이나 만주와 전쟁하기 위해서 조선을 기지로 만드는 거에요. 예를 들어, 한반도 북부에다가 군수 공장을 집중적으로 설치합니다. 역시 패망까지 쭉~ 연결되겠지요. 당연합니다. 어렵지는 않지만, 시험에는 잘 나오니까 꼭꼭 체크!


 전쟁에 동원한다면서, 인적, 물적 수탈도 엄청납니다. 인적 수탈이라고 함은, 전쟁에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겁니다. 1938년부터 대놓고 "전쟁"을 키워드로 삼은 일본은 국가 총동원령을 발동시켜서, 전쟁에 올인하려고 합니다. 중국과도 싸울뿐만 아니라, 곧이어 미국과도 싸운다면서 1941년 태평양전쟁까지 펼쳤으니 말 다했죠... 구체적인 인적 수탈로는, 지원병제도(1938), 학도지원병(1943), 징병제(1944) 등으로 군대에 학생이고 뭐고 다 끌고 갑니다. 군위안부, 정신대, 이런 모습들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 극우세력들이 자기네들이 여전히 잘했다면서 전범이 있는 곳에 신사참배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저놈들이 아직 정신 차리지 않았구나를 분명히 봐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의식이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적자원 수탈에서는 "공출" 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애국반이라는 단체에서 나와서 공출한다고 알리면서, 집에 있는 것을 다 가져갑니다. 전쟁에 쓸만한 도구는 싹쓸이 해간다고 보시면 되겠지요. 놋그릇이며, 수저며... 하나하나 전부 가져갑니다. 왜? 총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배급" 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로 1930년대 이후의 전쟁시기를 떠올리면 됩니다. 여기까지 일제의 경제정책과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서 어떤 이득을 얻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괴로운 역사지만, 잘 기억하고 싶은 역사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힘든 시기 속에서도 청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멋진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야기! 독립운동의 이야기들! 다음 문서에서 또 계속됩니다.

 

 오늘의 영감 - 무엇 때문에 전쟁을?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끝없는 전쟁의 목표는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지 않으면서 그들이 불평등을 용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주장을 들추어내고, 날 것 그대로의 전쟁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활 수준은 떨어져가고, 불평등하지만 전쟁중이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매정한 논리로, 사회가 지옥처럼 변해가는 것. 저는 그것이야말로 전쟁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매일이 전쟁중 이라는 젊은 사람들의 하루가 매우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끝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해보지만, 생활수준은 전혀 올라가지 않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일을 했지만, 왜인지 남은 것들은 거의 없을 때, 그런 허무감만이 인생의 본질일 리가 없습니다. 오늘이 부당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바꿀 힘은 젊은 이들에게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작가 빅토르 위고는 때를 만난 사상이 얼마나 강한지를 찬사한 바 있습니다. 경쟁 대신에 도전을, 넘어짐 대신에 다시 일어섬을 목표로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흔들려도 여전히 힘내서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게 될 날이 반드시 올지 누가 알겠어요. 하하.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