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인박힌 삼손의 여성편력(사사기16:1-5)/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4. 9. 28. 22:42

 

인박힌 삼손의 여성편력 (사사기16:1-5)

 

오늘 설교에서는 삼손의 여성편력에 관해서 알아 보고자합니다. 삼손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설교꺼리가 되겠습니까만 그의 행태를 통해서 후세에 경계를 삼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 人자를 보면 사람이 둘이 서로 걸쳐 서 기대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사람이 혼자서 산다면 그는 불완전한 사람이 될 것이고 결국에는 비참하게 될 것이며 문명의 진보니 사상이니 문화니 하는게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혼자 사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해서 사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람은 그냥 동성, 남자 남자끼리나 여자 여자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남자가 장성하면서 여자를 그리워하고 서로 사랑하여 가정을 이룰려고 하는 욕구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쪽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비극적인 짝사랑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보통의 정으로 대하는데 정신없이 상대방에 빠져서 모든 이성이 마비된듯한 행동을 하다가 상대방을 죽이거나 자기가 죽은 그런 결말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뭐 극단적으로 죽는 경우는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에 상사병이니 가슴앓이니 스토킹이니 하는 것을 겪다가 슬프게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의 삼손은 대표적인 짝사랑의 경우입니다. 이 사람은 일방적인 사랑만을 합니다. 자기 눈에 좋아 보이면 그 여인을 취하고 그 다음은 항상 목숨의 위협을 받습니다. 성경에서는 삼손이 모두 세명의 여인을 취한 기사가 나오지만 그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만 세 건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이 삼손의 모든 애정행각을 기록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꼭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 세 건일 수도 있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세 건의 애정기사에 삼손이 그 여인들을 마음에 들어하거나 사랑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 여인중의 그 누구도 삼손을 사랑했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삼손이 실제로 그 여인 중의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은 삼손을 사랑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삼손의 사랑의 형태는 잘못된 것입니다. 주로 삼손이가 하는 사랑은 애욕입니다. 욕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삼손의 여자를 취하는 기준은 아주 단순합니다. 바로 외모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남자들하고 똑같습니다. 외모가 안되면 다른 조건은 따지지도 않습니다.

 

1.딤나의 본부인
삼손은 처음 블레셋 사람이 사는 도시인 딤나로 놀러 갔다가 우연히 한 여인을 보고 그 여인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결국 아내를 친구에게 빼앗기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마침내 아내를 비롯한 처갓집 식구들이 모두 블레셋 사람들에게 화형당하는 것으로 비극적으로 끝이 납니다.

 

아내를 삼손의 친구에게 줘버린 장인은 삼손에게는 더 아름다운 처제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삼손이가 그만큼 무서웠을까요? 아니면 삼손이 우스웠을까요? 아니면 삼손이 여자의 외모만 밝히는 것을 알았을까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 정도 했으면 여자에 대해서 만정이 떨어 졌을 것입니다. ‘여자는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되어야 함에도 오늘 본문에서 여전히 삼손은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 자기의 눈에 드는 여인을 취하다가 목숨의 위협을 받습니다.

 

그는 여자로 말미암아 일을 하고 여자로 말미암아 죽는 비운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삼손만 비난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를 밝히는 본능뿐만 아닙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뿌리박힌 죄성이나 습관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강한 불로 뿌리 까지 싹 다 태워 버려야만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대강 회개했다고, 마음을 잡았다고 생각해도 결코 쉽게 마음을 잡을 수 없습니다.

 

자기 전에는 이번에는 기필코 새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가도 하룻밤 자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또 죄성이 올라옵니다.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치 마약쟁이가 마약을 끊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제가 미국에서 중독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요 마약이나 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도 일단 중독이 되면 똑같은 물질이 뇌에서 분비가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독서니 등산이니 운동이니 하는 것도 너무 지나치게 좋아 하게 되면 마약중독이나 똑같답니다. 그러니까 중독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에 생긴 육체의 이상입니다. 우리가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악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독되었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똑 같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하튼 삼손은 그렇게 비극적인 큰 사건을 겪고 난 다음 무려 20년의 사사 통치 기간동안 별로 기록할 일이 없나 본니다. 아마 삼손은 여자가 없어지고 난 다음 거의 모든 의욕을 잃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아름다운 여자를 취하는 것 외에는 어떤 흥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로서의 막중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의기소침해 지고 게을러지며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그 동안에도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는 주색잡기로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삼손은 여하튼 하나님이 주신 거대한 힘을 가지고도 그는 인생을 20년 가까이 허비한 것입니다.

 

삼손은 솔직히 사사라는 감투가 아까운 인물입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예쁜 여자지 사사라는 감투나 ‘나실인’이라는 명예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여자를 취하는 것 외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2.가사에 가서 한 기생을 보고
그러다가 삼손이 다시금 일을 하는 기록이 나오는데 안타깝게도 여자와 관련해서 입니다. 그것도 여염집 여인이 아니라 기생. 삼손은 가사에 가서 기생을 보고는 정신을 못차립니다. 첫 번 여자 때문에 아스글론에서 사람들을 죽인 삼손은 이제 두 번째 여인 때문에 가사에서 사고를 칩니다. 가사는 블레셋의 5대 도시입니다. 요즘 한참 시끄러운 가자지구 있지요? 바로 그 곳이 가사입니다. 옛날에는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그리스식의 폴리스였습니다. 그러니 촌놈 삼손의 눈에 그곳에서 기생을 하는 여자니까 얼마나 세련되고 예쁘게 보이겠습니까?

 

그러니까 한번 보고는 홀딱 빠져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생은 그냥 매춘부라고 보면 됩니다. 관계를 맺으러 그녀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삼손이 창녀에게 들어간 것을 알아채고는 그를 포위하고 성문에 매복합니다. ‘새벽이 되면 그를 죽이자’

 

삼손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잘 압니다. 그를 자기네의 최대 원수로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손은 블레셋의 대적인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인 사사입니다. 당연히 삼손은 스스로를 삼가서 조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 여인에 정신이 빠지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습니다.
어쩌면 삼손은 자기의 힘을 믿고 블레렛 사람들을 우습게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봐야 나한테는 안돼’

 

물론 블레셋 사람들도 삼손의 힘을 아니까 몰래 기습하려고 매복해서 숨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삼손은 밤중까지 그 여자와 함께 누웠다가 일어나서는 성문이 닫힌 것을 보고 오히려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채로 빼어 짊어 지고 이스라엘도시 헤브론으로 가버립니다.
도망을 가지 못하게 성문을 닫아 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생의 집을 포위해도 안 되고 성문 주위에 매복도 소용없습니다.

 

헤브론은 가사에서 무려 60km가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 무거운 성문을 짊어지고는 무려 150리나 걸어 간 것입니다. 힘 하나는 알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이 가사의 기생 때문에 이렇게나 곤욕을 치렀지만 그래도 삼손의 여자 밝힘증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삼손에게 주어진 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 기생집에 들렀다가 블레셋의 포위를 뚫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가지고 여자들과 사랑하는데 사용합니다.

 

3.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를 사랑하매
이렇게 두 번이나 여자 때문에 사고를 친 삼손이지만 이번에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것도 그냥 빼앗긴게 아닙니다. 사랑한답니다. 사랑이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사랑은 바로 그 무섭고 비극적이라고 하는 짝사랑이라는게 문젭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지만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요, 들릴라도 삼손을 사랑했다고 칩시다. 그러나 적어도 은5500개만큼은 사랑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들릴라는 은5500개를 받고 삼손을 넘겨 주려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런게 사랑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답니다. 제가 어릴 때 삼손과 들릴라라고 하는 영화에서는 삼손과 들릴라가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 삼손을 팔아 넘긴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들릴라가 다시 삼손에게 돌아와서 뭔가를 해주고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냥 재미있게 할려고 상상으로 만든 허구의 산물이지 성경에는 결코 들릴라가 삼손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찾아오고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자는 좀 웃긴게 삼손의 본부인은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생의 이름은 당연히 나오지 않겠지요. 그런데 이제 이 여자 들릴라의 이름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들릴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찜찜함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면 들릴라는 ‘매달린 자, 약하게 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 정말 정확하지요. 삼손의 비밀을 알기위해 삼손에게 매달리고 결국은 삼손을 약하게 한 자가 된 여인의 이름은 들릴라입니다.
들릴라의 또 다른 뜻은 ‘밤의 여인’입니다. 삼손의 이름 뜻인 ‘작은 태양’과는 정 반대의 뜻을 가진 여인입니다. 성경은 그 이름을 기록함으로 이미 삼손이 들릴라를 만났을 때부터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 하고 있습니다.

 

작은 태양이 깊은 밤의 어둠으로 빠져들면 그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빛이 그 힘을 잃으면,
어둠속에 잠겨 아무러한 역할도 못한다면 태양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또한 밤의 여인이라는 말에서 들릴라 역시 기생이거나 기생을 겸하는 무당일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기야 삼손에게 외모만 맘에 들면 되지 다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이라고 믿고 있는 들릴라와 있는 동안에 삼손은 들릴라의 거듭된 음모에 노출됩니다. 몇 번이고 삼손을 죽이려고 하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최후의 순간까지 결코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면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너무나 들릴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들릴라의 모든 행동과 의도를 선하게만 해석합니다. 들릴라가 결코 삼손을 멸망에 이르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마 들릴라의 입장에서도 은5500개가 걸려 있는 큰 건수기 때문에 매우 공을 들였을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입니다. 그것도 매우 큰. 그렇기 때문에 더 삼손을 극진히 섬기는 척을 했을 것입니다. 보통 사기꾼은 일반인보다 더 싹싹하고 친절하며 겸손합니다. 캬바레에서 만난 제비들에게 아줌마들이 잘 넘어가는 이유는 제비들이 남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싹싹하고 친절하며 자기를 떠받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사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니 제비에게 몸도 마음도 빼앗기고 재물도 날리고 패가망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은5500개를 벌기위해 얼마나 삼손에게 잘하는척을 했겠습니까?

 

사람들이 특히 연인들이 너무 돈 돈 돈 거리는게 좋지 않습니다. 돈은 사람의 삶을 편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지 결코 사람이 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만을 사랑한 삼손은 그 힘과 그 지위에도 불구하고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삼손은 제대로 된 사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모든 사랑은 삼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짝사랑이요 애욕입니다.
삼손은 정욕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법이니 사사로서의 사명이니 하는 것은 깡그리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죽은 삼손의 시체를 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마 피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하게 여자에게 미쳐서 목숨을 잃어버린 바보 사사로 기록된 아들이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아들의 비뚤어진 애정행각을 말렸다면 지금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 한탄이 피눈물이 되어 부모의 가슴을 때렸을 것입니다.
삼손이 죽고 난 후에 단지파는 결국 인구가 1/100로 줄어 들고 나중에는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명단에서 빠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삼손은 자기에게 주어진 단족 부흥의마지막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족인 단족까지도 멸망에 이르게 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답니다, 시험도 세 번인지...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삼손의 잘못을 두 번은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어려움을 넘기도록 해 주셨지요. 첫 번째 여자 때문에 사건이 생겼을 때 심지어 삼손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묶여서 블레셋 사람에게 넘기워져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민족 간의 큰 전쟁을 일으킬 뻔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밤중에 포위되고 기습을 받아서 ‘가사’에서 그의 운명이 다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거대한 힘 덕분에 그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승리했습니다. 그랬더니 삼손은 교훈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교만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결국은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4.잘못된 여자를 만나게 문제다
삼손의 여자 밝힘증은 유명합니다. 문제가 많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은 삼손이 좋아한 여인이 모두 적당하지 않은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사사기에 삼손의 여자이야기에 모두 세사람의 여인이 나오지만 단 한사람도 이스라엘 여자는 없습니다.

 

동족 여자는 너무 촌스러워서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도시의 세련된 아가씨들만 눈에 들어왔지 진실로 삼손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인을 만나지 못한게 삼손의 밝힘증을 최악의 상태로 만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리스의 도시 여자가 아니라도 이스라엘 여자 중에서도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여자가 못생기고 블레셋 여자는 잘생기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삼손이 블레셋 여자만 좋아 한 것은 그가 그러한 목적으로 블레셋의 촌과 도시만 다녀서 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블레셋 여인들이 본바탕 보다 야시시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어쨋건 결론은 삼손이 제대로 된 여인을 만나지 못한게 그의 여자 밝힘증을 최악의 비극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적대국인 블레셋의 여인만 좋아한 삼손은 정말 코메디입니다. 아주 웃기는 사람이지요. 더구나 나실인으로 서원한 인물이 여자 앞에서는 나실인의 서약이고 하나님의 명령이고 전혀 거리끼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다가 끝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5.사랑받지 못했다
적당한 여자를 좋아 하지 못한 것이 삼손을 최악으로 몰고 갔지만 더 나쁜 것은 삼손이 일방적인 애욕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만일 삼손에게 적당하고 좋은 여자가 아니었더라도 그 여인들이 삼손을 진실로 사랑했다면 그런 비극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본 부인과 결혼할 때 그녀의 외모가 눈에 좋게 보였지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집니다. 그냥 외모가 눈에 찬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최악의 여자에게 그만 사랑을 느껴버린 것이 삼손에게는 일생일대의 뼈아픈 실수입니다.

 

만일 보통의 상태에서 삼손의 비밀을 알기위한 시도가 있고 난 다음 블레셋인들의 포위공격이 가해졌다면 웬만하면 상대의 배신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지만 삼손은 자기가 들릴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들릴라 역시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삼손이야 들릴라를 사랑했겠지만 들릴라는 그냥 삼손을 이용해 먹은 것입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은5500개를 가져다 줄 복덩이지 결코 사랑으로 지켜야할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사랑에 눈이 먼 삼손은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다가 비극을 당한 것입니다.

 

삼손이 정말 말도 안되게 어리석지요?
그러나 삼손만 비난할 것도 못됩니다. 오늘날 교회 총각들이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평소에 여자 경험이 없어 놓으니까 여자에게 잘 속습니다. 그 외모에 혹해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람둥이처럼 놀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제 눈에 안경이라고 객관적으로 별것 아닌 여인에게 불이 붙어서 정신을 못차립니다. 그건 여자 경험이 없어서 너무 순진해서 그렇습니다. 어쩌면 마음이 너무 여려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여자의 나쁜 모습, 부족한 부분을 봐도 세상 사람처럼 ‘니 아니면 여자가 없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내가 이 여자를 품어서 위로해야지, 이 여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지, 나는 이 여자의 곁에서 이 여자가 기뻐하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해’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이러한 짝사랑을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습니다.

 

삼손은 잘못된 사랑에 눈이 멀어서 들릴라가 밤의 여인으로 자기를 둘러싸서 결국 자기를 약하게 하고 자기의 두 눈과 목숨을 앗아갈 비극의 씨앗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넋놓고 있다가 간 겁니다.
그는 한여자에게는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지만 그의 부모에게는 애통과 절망을 안겨주었고 그의 동족에게는 수치와 원망을 남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엄청난 힘을 주셨습니다. 성문을 부수고 포위를 뚫었으며 블레셋 군인들을 나귀의 턱뼈로 상대해서 이긴 것은 계속해서 여자를 밝히라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아닙니다. 그걸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해내라고 주신 것이지요.
그는 여자 때문에 나실인으로서, 사사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다하지 못한게 아니라 삼손은 여자와의 관계 외에는 전혀 일을 한게 없습니다.

 

삼손은 많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그들을 죽였지만 그 모두가 여자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따라서 삼손은 덩치만 큰 어린애였습니다. 어린애는 사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어른이 그를 잘 지도해야 합니다.
너무 여자 얘기만 했습니다. 여자뿐만 아니라 뭔가 자기가 지나치게 좋아해서 그것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그 일에 방해를 받게 한다면 그 모든 것이 다 중독입니다.

 

이번 시간에 자기를 한번 찬찬히 살펴 봅시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끊어 버리지 못한 육적인 습관이 있다면 과감하게 끊어버리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취미라고 할지라도 너무 지나치게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우려가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한갓 취미가 나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 전체를 뒤흔든다면 그것도 중독입니다.
혹시 아직도 내가 지나치게 인생을 의지합니까? 그것도 끊어 버리십시오.
지나치게 주위의 눈을 의식합니까? 그것도 포기하십시오.

 

저는 오늘 우리 성도들이 자신을 살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태도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가를 살피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명령과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할 것을 다시 한번 더 다짐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성령의 뜨거운 불길로써 우리의 죄된 인박힌 죄성을 뿌리까지 태워버리시기를.
저는 소망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두 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랑스런 성도로 서게 되기를.
저는 소망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각자가 스스로를 향하여 채찍을 들어 자기 속에 있는 죄성을 두드려서 억누르기를.
그래서 정금같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멋진 일을 감당하는 모범적인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제대로 통감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4년 9월 28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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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덧붙여 놓을까 합니다. 제 성경책 구석에 적혀있더라고요. C.H.스펄전. 예수님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만의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은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고, 모든 것을 버리게 하는 강권적인 힘이 있다. 저는 근래에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무엇인가 중독적인 것이 나를 괴롭히기 보다는, 평생에 거쳐서 유익이 되는 삶을 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을 앞으로 또 만날 수 있기를 계속 소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