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민족운동 6부 - 1920년대 대중운동과 의열투쟁

시북(허지수) 2014. 11. 13. 20:06

 

 뜨거웠던 학생운동에 이어서. 이번에는 청년운동을 배워볼께요. "조선청년 총동맹"이라는 조직이 청년운동을 이끌어 가고요, 좌우합작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1920년대의 트렌드 라고 한다면, 사회주의가 일단 유행하고요. 실력양성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진영이 있는데, [특히 두 진영이 항일으로 함께 손을 잡는 조직]들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문서에서 언급한 신간회가 있겠지요? 잘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그게 왜 시험에 잘 나오는가 하면, 현실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남북이 서로 분단되어 있잖아요. 북한은 자기식대로 사회주의 노선이기도 하고, 남한은 자본주의를 걷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빨리 통일이 되면 좋겠고... 하여간!


 다음으로, 어린이 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종교로 천도교가 있습니다. 천도교는 동학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고요. 동학의 기본이념은 인내천, 즉 사람은 곧 하늘이잖아요. 그래서 소파 방정환(천도교신자) 같은 인물이 봤을 때 어린이들이 참 불쌍한 거에요. 당시에는 애들 막 때리고, 술심부름 보내고 너무 안쓰러운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날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도 사람이고, 어린이 안에도 당연히 하늘님이 있다 라는 종교 교리의 측면에서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참, 이 때 간행하는 잡지의 이름은 어린이 입니다. 덧붙여, 구한말에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소년"이라는 잡지에 실렸어요. 그래서 1920년대에 방정환과 소년이라는 잡지가 나오면 잘못된 설명이에요! 시험문제 틀리지 말기!


 여성운동은 꼭 기억할 단체로 근우회 라는 조직입니다. 아주 시험에 잘 나와요. 신간회의 자매단체에요. 당연히 좌우합작을 추구했겠고요. 여성들의 인권, 남녀간의 불평등 해결 등을 추구했고요. 호주제의 법제화를 반대합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집주인→호주(주로 남자 1인)의 동의가 없이는 재산을 판다거나, 땅을 산다거나 경제적 행위를 할 수가 없는거에요. 이걸 일제가 왜 호주제로 만들었냐 하면, 호주라는 남자 1명만 컨트롤 하게 되면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통제할 수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일본이 가족이라는 조직을 통치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 호주제를 이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제도가 시행이 되면 여성들의 권리가 침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거에요. 근우회 호주제 반대, 중요하니까 기억해 두시고요~


 다음으로 형평운동이 있습니다. 역시 중요합니다. 백정들의 신분"차별" 폐지운동입니다. 물론 백정이라는 신분 자체는 수십년 전,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법적폐지가 되었습니다만, 백정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은 남아 있었던 거에요. 예를 들어 밖에 나가서 백정네 딸이라며 차별 받고 놀림 받고, 학교도 못 가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큰 문제 아니겠어요. 법적으로 분명히 폐지되었는데, 계속된 차별은 말이 안 된다며 백정들이 적극적으로 형평운동을 전개합니다. 형평이라는 것은 백정들이 고기달 때 쓰던 저울을 말하고요. 진주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 있었던 운동을 물을 때, 시험에 잘 나오는 편이니까 기억해 두세요.


 이제부터는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의열투쟁도 배워보아요. 의열단은 만주 길림성에서 만들어 집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의열단의 이념은 무정부주의(아나키즘)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설명을 조금 덧붙이면,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이 노동자(프롤레타리아)가 독재를 통해서 사회주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무정부주의는 그런 조직(정부) 조차도 거부합니다. 다시 말해, 어떠한 형태라도 조직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뿐이다 라고 판단합니다. 무정부주의는 말그대로, 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무정부주의가 자유를 쟁취하는 방법을 폭력으로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의열단장 김원봉을 들 수 있습니다. 자 여기서 김원봉이 글을 쓰던 신채호에게 "의열단의 정신을 문서화 해달라" 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을 씁니다. 이 글 역시 과격하게도, 폭력과 민중에 의해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안중근의 저격 사건을 평가할 때, 폭력은 있었고 민중들의 지지가 없었다 라고 냉철히 써있었고, 3.1운동의 경우 민중은 있었지만 폭력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 지도부가 없었다는 거에요. 역시 중요한 키워드는 폭력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 아니겠어요. 하하.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안중근이나, 신채호 처럼 대표적인 독립투사들이 폭력을 중심으로 싸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때, 역지사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는, 그 서늘하고 처절한 입장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의 지배라는 세계정세 속에서 식민지화 된 조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1운동이 무력화 된 모습, 문화통치라며 기만당하는 모습, 따라서 민족이 탄압받고 있을 때, 어떻게 운동했으며, 왜 폭력을 손에 쥐었을까를 생각해 보고 나서 이들 의열단에 대하여 판단내려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야 폭력을 해석할 수 있고, 민족 해방이라는 꿈을 위해, 목숨 걸고 폭탄을 던지는 선조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거에요. 이제 의열단원들이 등장합니다. 김상옥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날리고요, 나석주는 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요. 김익상, 김지섭 등등 폭탄을 던지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조선총독부나 일본 관리 및 친일파를 직접 타겟으로 했었고요.


 나석주의 경우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대담했습니다. 식산은행이 지금은 명동 롯데백화점 자리인데요.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딱 하고 폭탄을 던졌는데 터지지 않았어요. 동양척식회사(현 명동 외한은행 본점)에 던진것도 터지지 않아요. 아, 그토록 준비했건만, 그래서 일본 경찰들과 총격전을 펼치다가 결국 자결해서 죽는... 비극이 되었지요. 이들 의열단원 들에게 대한민국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그렇게 30대 중반의 나이로 다들 목숨 걸고,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에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민족운동 이야기들, 다움 문서에서 만나요~

 

 오늘의 영감 - 마로니에 공원에 가면 김상옥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의열단으로서, 가난했고, 야학을 다니면서 공부했던 청년이었지요. 그랬던 그가 종로 경찰서, 즉 독립 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은 곳에 폭탄을 던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여전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굴의 정신으로 힘내시길 바라며, EBS가 김상옥 의사를 기억하듯, 우리도 의열단의 역사를 소중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모바일영상은 ▶ http://youtu.be/phB9yKznlGQ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