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세계의 정세라고 할까요. 1940년이 되면 일제는 패망의 기운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 보여지고 있어요. 전선이 중국과 미국까지 확대되고 있고, 전쟁은 끝나가고 있고,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회의가 이집트 카이로 회의 (1943)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독립이 최초로 언급됩니다. 그 다음에 얄타회담 (1945) 이라고 해서, 광복 직전에 열리는 회의에요. 여기에서는 소련이 2차대전에 참여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데 말이지요. 하하.

 

 그런데 이게 왜 우리한테 영향을 미치는가 하니, 소련이 2차대전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곧, 38도선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단 말이지요. 왜냐하면 소련이 2차대전에 참여하면서 만주지역으로 밀고 내려오면서, 일본 관동군과 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한반도에 들어온다 라는 계획이 있어요. 따라서, 일본의 관동군이 소련에 맞서서 굉장히 강력하게 저항하는 모습이 있을 거라 예측되었으나, 예상과는 참 다르게 일본 관동군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거에요. 심지어 잘 보이지도 않아! 이런!

 

 그러니까, 소련이 뭐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옵니다. 저항도 별로 없다보니 더 빠르겠지요. 한반도에 막 들어오려고 해요. 어? 이러다보니까 한반도가 소련의 영향력 속으로 빨려들어가겠구나 싶어서 미국이 야 소련, 밀고 들어오는 것은 좋지만 38도선 까지만 내려오라고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 이남 지역은 미국이 해결하겠다 라고 이야기 하게 되는거죠. 그러면서 문제의 그 38도선이 만들어지는겁니다. 따라서 38도선은 소련의 2차대전 참여와 관련이 있구나를 기억해 두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 포츠담 회의 (1945) 광복 직전에 열려요. 카이로 회의의 약속을 재확인 하는 모습이 있었네요. 일본이 망하긴 망하나 봅니다. 준비작업이 착착 되어가네요. 일본이 패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모습을 얼른 보러 갑시다. 독립운동세력의 활동들을 살펴보아요.


 국내에서는 조선건국동맹 (여운형이 주도) 이 있었고요. 중국 옌안에서는 조선독립동맹 김두봉이 이끕니다. 그 산하부대가 조선의용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충칭으로 내려오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네요. 임시정부는 김구가 이끌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산하부대는 한국광복군, 중요도가 컸으니 아마 기억나시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이런 독립 운동 세력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정치체제가 있었습니다. 그 정치적 목표가 바로 공화정이었다는 겁니다.

 

 왕이 존재하는 시스템을 군주정라고 하고요. 국민들이 대표를 뽑아서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 공화정이고요. 한편 군주정은 왕에게 절대권력이 부여되는 전제군주제가 있고요. 왕 역시 법에 의해서 제한을 받고 있는 입헌군주제가 있겠네요. 오래전 개화기 시점에서는 개화세력들이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한 이후에는, 새롭게 공화정을 주장하는 단체가 등장하지요. 대표적으로 신민회가 있고요. 그 이후의 대세는 공화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만 해도 삼권분립에 기초한 공화정 정부로 가듯이 말이지요.


 자,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합니다. 갑작스럽게 항복을 한 거에요. 한국광복군이 국내진공작전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따라서 한국광복군은 계획만 하고 실질적으로 들어오질 못했어요. 일본이 항복해 버렸으니까요. 이러면서 어떤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남과 북이 실질적으로 나뉘어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에서는 소련이 들어오고, 남에서는 미국이 들어오는 겁니다.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말았지요.

 

 조선 독립 운동가들이 들어와서 태극기를 딱 하고 꽂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러기도 전에 일본이 갑자기 항복을 해버렸어요. 아휴 일제가 진짜 나쁘네요. 마지막까지 협의를 안 하고 제멋대로 한거에요. 그러다보니까 미국과 소련이 어떤 형식으로 들어오는가 하면, 해방군 형태로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점령군의 형태로 들어올 수 밖에 없다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는 것입니다.

 

 점령군으로 미국과 소련이 들어오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나 이런 세력들이 발언권을 제대로 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한 게 없었으니까요. 주권을 되찾는데 뭔가를 보여줄 기회를 놓쳐버린거에요. 이러면서 소련과 미국의 주도에 의해서 이제 1945년 그 질서가 움직이게 되는거에요. 그래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해방이냐 광복이냐 라는 질문도 등장하는 거고요. 해방이라는 관점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한 것이 없다 라고 보는 것이고요. 광복이라는 관점은 해방 처럼 수동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도 나름의 활동과 노력으로 빛이 새롭게 다시 옮겨져왔다 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광복이라는 말이 훨씬 더 맞다라고 보기도 합니다. 학계에서는 정확하게 짚기가 어렵다지만, 일단 교과서에서는 광복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북한쪽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세력들이 상당히 많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활발하고 지하조직들이 많았기에 그대로 연결고리가 살아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소련같은 경우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이고, 북한 쪽에는 김일성이라든가, 그 중심으로 사회주의 세력들이 있다보니까,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북한 사회는 빠르게 안정이 되요. 심지어 1948년 9월에 조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오늘날 북한)이 수립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정부수립단계의 모습들이 다 나와요. 워낙 안정화가 빨랐어요. 그런데 남한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사회주의 세력들이 온존하고 있지만, 미국은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니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어요. 결국 대립이 일어났고, 탄압을 받고 저항을 하는 형식이 있습니다. 미군정과 사회주의 세력과의 대립들이 계속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갑니다. 다시말해, 북한과 남한의 정치 지형이 당시 달랐던 겁니다.


 조선건국동맹이 1945년 광복이 되면, 조선건국 준비위원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줄여서 건준위 라고도 합니다. 좌우합작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운형, 안재홍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고요. 45년 8월 당시 갑작스럽게 광복이 되었다 보니까, 아직 미군정이 들어오진 않았어요. 치안이 부재중이란 말이지요. 그 치안을 건준위에서 담당한 겁니다. 행정과 치안을 과도기에 담당하더라 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행이 되고 있다가, 미군정이 1945년 9월에 들어옵니다. 들어오면서 건준위가 거의 정부같이 역할을 해오고 있었는데, 미군정이 들어왔잖아요.

 

 미군이 들어왔기에 우리도 주도권 협상을 하기 위해서, 정부를 선포해 버립니다. 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대목을 정확하게 분류해야 합니다. 몇 번 반복하면 쉽게 분류가 될꺼에요. 1948년 9월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지금의 북한이고요. 그리고, 이 시점은 1945년 9월은 북한이 아니라 협상하기 위한 "조선인민 공화국"이에요. 아셨죠. 그리고 지방에는 인민위원회를 지방 곳곳에 설치를 합니다. 이제 정부가 선포가 되었어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착착 일을 해놓았는데, 정작 미국이 들어와서 보니까 황당한거에요. 점령하려 들어왔는데, 이미 정부가 들어서 있다고 하니까 미국이 제대로 협상해 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미국은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 세력들이 들어가 있는 조선인민공화국에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조선 인민 공화국은 점차 좌익이 주도권을 장악해 가기도 했고요. 미군정 입장에서는 협상 이유도 없었던 겁니다. 따라서, 미군정은 이후에 조선 인민 공화국을 부정해 버립니다. 행정적 기능을 갖고 있는 조직은 성립할 수 없고 미군정만이 행정적 기능이 가능하다 라고 합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저, 개인자격으로 다들 들어오게 됩니다. 대한민국 주석 김구로 못 들어오고, 그냥 김구로 들어오는 거에요. 왜냐하면, 임시정부도 부정되었다는 거에요. (물론, 정당의 행위나 활동을 부정하지는 않았고요. 다만, 미군정이 아닌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거에요. 예컨대 한국민주당이라던지, 정당은 계속 있었어요.)


 미군정과 앞으로 사회주의 세력간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네요. 또 하나의 모습은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되어서 향후 정국을 끌어나가게 될테고, 그 출발이 1945년 12월에 전개가 되고 있는 모스크바 3상 회의다 라는 거에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이 나오게 될꺼에요. 흥미진진한 현대사의 현장, 다음 문서에서 또 계속...!

 

 오늘의 영감 - 전우용 선생님의 한 말씀을 반사해 놓습니다. "현대인들, 특히 대도시 주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멘트가 주성분인 콘크리트 벽체 안에서 보낸다. 건물 밖 대로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역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다. 그래서일까? 옛날에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진다고들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의식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의식이 단단해지고 나중에는 마음 한 편의 여유를 잃어서, 타인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이 참 무섭습니다. 추운 날이면 따뜻한 사람이 그리워지듯, 우리가 시간을 보낼 수록 현명해져 가기를 응원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4.12.1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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