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베트남 파병과 박정희의 3선개헌

시북(허지수) 2015. 1. 15. 23:55


 1964년부터 1973년도까지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집니다. 경제 개발을 위해서 단행했던 두 가지 큰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문서에서 보았던 한일 수교였고, 또 하나가 바로 베트남 파병이었지요. 베트남 파병하면 몇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미군을 지원하고 돕겠다는 브라운 각서가 있습니다. 미국이 대신에 경비를 부담해야 했지요. 이런 노래가 있어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베트남 파병을 전격적으로 진행하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기업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군수물자를 운송해야 했고, 특히 항공회사 같은 경우 이를 계기로 대기업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면서, 물자를 우리나라가 생산해서 보내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생산이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자를 지원하면서 돈도 받아오고 있고요. 베트남 파병하는 군인에 대한 지원금도 상당한 액수가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은 마련되었지만, 생각해보면 가슴 아픈 대목이기도 합니다. 경제 개발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지금 목숨 걸고, 그것도 타국에서 싸우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 그렇게 기꺼이 그 시대에 최전선에서 싸웠던 사람들에게, 혹독한 전쟁을 또 한 번 겪어나가야 했던 사람들에게 정말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한편 이렇게도 생각해 봐야합니다. 베트남 파병이라는 것은, 베트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에 우리가 개입하고 있는 형태란 말이지요. 그리고 전쟁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흘러가는 양상은 똑같습니다. 이렇게 전쟁에 동참하게 되니까 우리 역시도 베트남 군인 외에도, 실제 베트남 일반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전쟁이니까요. 그러면서 이런 비판도 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매번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 베트남에게는 사과하지 않느냐 라는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반론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이렇게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반공"이라는 공통된 요소를 갖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6.25 전쟁 때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도와줄 차례라는 요소가 있었고요. 반공을 위해서 참전한다는 명분은 있었습니다. 이처럼 명분은 분명하게 있었다지만, 전쟁에 동참했다, 희생자가 많았다 라는 부작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베트남 전쟁의 키워드는 라이따이한의 문제 입니다. 6.25 당시에도 있었는데요. 혼혈아라는 이야기 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들을 차별하고 했던 아픔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이들은 우리나라를 도와주려고 왔던 사람들의 2세 아이들이란 말이지요. 이번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베트남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이 지고, 베트남이 이기게 됩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혼혈아인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적국의 2세 아이들이 되고 맙니다. 이들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고엽제의 피해가 있습니다. 전쟁 당시 베트남이 밀림 지역이다 보니까, 미군이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어디다가 폭탄을 떨어뜨려야 할지 모르겠는거에요. 뿐만 아니라 노인과 아이들이, 베트남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잘 구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컨대 미군이 마을을 지나가면, 곧 쓰러질 것만 같은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있단 말이에요. 어라 전형적인 민간인 같군요. 그런데 미군이 방심하자 마자, 갑자기 폭탄을 휙 던지는 겁니다. 실은 군인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위에서부터 폭탄투하를 하고 싶어합니다. 밀림이 많다는 문제가 자꾸 걸리네요. 에라, 밀림 다 태워버리자 라면서 공중에서 약을 막 뿌리는 겁니다. 네, 이것이 바로 고엽제 입니다. 식물들이 쫘~악 말라가는 해로운 약물이었으니까, 과연 사람들에게도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고엽제를 온몸에 맞게 되면 긁어도 긁어도 간지러워서 정말이지 미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고엽제 피해에 대하여, 보상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건 돈을 벌어왔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도 다가옵니다. 1967년도 대선에서는, 박정희와 윤보선이 붙습니다. 경제 성장이 착착 진행되는 것에 힘입어서 이번 선거에서도 박정희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 연속 대선 승리를 했습니다. 이제 두 번 했으니까 끝! 더 이상 대통령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헌법에 정해져있는 약속이었으니까요. 이것이 원칙이었는데~ 1968년이 되면요. 이제 또 북한이 아주 집요하게 남한을 흔들어요.


 이른바 위기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분위기였고, 하마트면 마치 전쟁이 또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도 있고 그랬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들어오는 겁니다. 헉... 바로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사건이었지요.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아휴 놀래라. 이것 때문에, 영화도 있는데요. 남한도 역시 실미도 라는 특수부대가 만들어 집니다. "이 XX들, 우리도 똑같이 김일성의 목을 따러 간다" 라면서 만들어진 특수부대 였습니다. 아, 그런데 이 특수부대는 실행까지 제대로 가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끝나게 되요. 기껏 훈련하고 있는데, 남북이 다시 화해모드로 진행 (72년 7.4 남북공동성명) 하게 되니까, 실미도 특수부대는 할 일이 사라지는 겁니다. 훗날 남북이 손을 잡는 극적인 반전 앞에, 실미도 부대는 해산할 수 밖에 없었네요.


 이야기로 돌아와, 1968년 무장공비침투! 야, 이건 뭐 정말 부글부글한 사건입니다. 북한은 남한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그 해 미국까지 건드립니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있습니다. 아, 북한 정말 독특하지요. 아무것도 없는데,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어도 강대국 미국과 맞짱을 뜨려하는 나라입니다. 이 사건은 뭐냐하면, 미국 배 푸에블로호를 북한이 자기들 영해로 넘어왔다면서 잡아가 버리는 겁니다. 미국 입장은 말도 안 된다, 너희들이 납치한 것이다 라면서 주장하지요. 주장은 서로 팽팽하다고 쳐요. 그런데 한 번만 생각해 봅시다. 어떤 나라에서, 군비가 엄청난 그 미국 나라의 배를 끌고 가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네, 열받은 미국은 항공모함이라도 띄우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거기서부터 미사일 몇 개라도 발사되면 뭐 초토화 되는...


 역시 예상되로 되었습니다. 동해안에 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뜹니다.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북한은 끝까지 버티기 모드에 돌입합니다. 끝까지 푸에블로호 안 내놓고 버팁니다. 이 쪽도 참 징하다... 결국 배는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선원들만 미국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형식으로 사태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1968년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지, 당시만 해도 박정희 정부는 항공권을 다 열어놓고, 폭격기가 다닐 수 있는 길들을 다 열어놓았습니다. 1968년은 가서 북한 몇 대 쥐어박아 버리면서, 또 다시 전쟁이 날 수도 있었구나 이 점을 떠올리면 됩니다.

 

 게다가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김신조 무장공비가 특수부대들이 침투한 사건이라면, 울진 삼척의 무장공비사건은 성격이 약간 달랐습니다. 그냥 떼로 우르르 몰려온 것입니다. 생계형 간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그냥 와서 정착한 다음에 남한 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한 간첩들이 대거 내려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이 딱 하고 발각이 된 것이지요. 하여튼 1968년도는 1950년 6.25 전쟁 이후에, 가장 남북간의 긴장감이 높았던 시기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해가 발생하니까,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책임감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일까요. 다음 해인, 1969년도 박정희 정부는 한 번만 더 집권을 하게 해달라고 이야기 하게 됩니다. 북한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까, 지금 경제 개발도 마저 해야하고, 북한이라는 외부적인 위협에 잘 맞서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북한보다 더 우월적인 경제체제를 만들테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6차 개헌안, 다른 말로 박정희의 3선개헌을 통과시키게 됩니다. 대통령 3번까지 가능해 지는 겁니다.

 

 이 시점에서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하여, 3선까지 가지 않고, 원칙대로 두 번까지만 대통령을 하고, 경제 개발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잘 지켰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3선 개헌까지 가게 되니까,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정권을 가지려는 모습이, 서서히 어떤 욕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생각입니다. 6차 개헌 다음에, 장기집권을 위해 필요하게 되면 또 개헌 하고, 이렇게 자꾸 가니까 독재 체제가 되는 것이지요.

 

 참, 1971년도 대선에는 박정희와 윤보선 아니고요! 야당이 달랐습니다! 야당의 유력한 후보로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김영삼이 있었습니다. 신선했지요. 당시만 해도 야당 정치인들은 노쇠한 이미지가 있었는데요. 이제 부정 같은 것도 다 떨쳐버리고, 꺠끗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정치하겠다 라고 40대 김영삼이 맞선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온 김영삼이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 때, 또 한 편으로 나도 대통령 후보로 나오겠다 라고 야당에서 뜨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김대중입니다. 이 때부터 김영삼 김대중의 라이벌 구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1차 투표를 해보니 김영삼이 제일 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과반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다시 결선 투표를 합니다. 결선 투표를 해보니까 결과가 역전! 이번에는 김대중이 후보로 가장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이 때, 재밌는 것은 김영삼이 이것을 수용하고, 내가 김대중씨가 대통령 되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라이벌 관계가 드라마틱 하고 꽤 감동적이지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점만 해도 이들 젊은 김영삼과 김대중은 주목 받고, 요즘 말로 핫한 모습으로 정치계에서 인기를 끌게 되는 것입니다. 1971년은 따라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선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이 때, 김대중은 이런 연설을 합니다. 지금 박정희가 또 당선되면 분명 나라는 총통제 하에 들어가서, 심지어 앞으로 더 이상 선거도 치르지 못하고, 박정희의 장기 집권 독재 체제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반면, 박정희는 이제까지 이루어놓은 경제 개발 완벽하게 마무리하겠다고 연설하지요. 결과는 53대 45... 김대중은 충분히 선전했지만, 박정희가 좀 더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하하, 벌써 70년대까지 왔군요. 그 다음 이야기들은, 이어지는 문서에서 계속 다루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아픈 글을 하나 반사하고 갑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의 ‘전쟁 같은 삶’은 각종 통계로도 입증된다. 수많은 통계가 있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만으로도 그 전쟁의 참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갑을관계에서 나타나는 비열한 갑질은 많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건 다단계 먹이사슬 구조로 돼 있어 전 국민의 머리와 가슴속에 내면화돼 있는 삶의 기본 양식이다 (강준만)"

 

 젊은 층들이, 우리 결혼했어요 - 슈퍼맨이 돌아왔다 - 미생 등에 열광하는 이유는, 연애와 출산과 취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이 슬퍼서, 대리만족을 위해서 즐겨 본다는 이야기를 하지현 선생님의 강연을 통해서 들었을 때, 참담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적당하게" 잘 산다는 것이야 말로, 매우 힘들게 노력해야만 오늘날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강준만 교수님은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오늘을 긍정적으로 프레임하기를 하나의 방법으로 손꼽으려 합니다. 적어도 자살 혹은 자학 이라는 최악의 선택지는 막아야 할테니까요. 딱 한 가지만을 건져올려본다면, 오늘을 노력해보면서 살기.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밀어붙여본다면,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바라던 바를 이루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화이팅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