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드라마 미생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5. 1. 30. 01:55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아세요? 전쟁터 같은 일상 속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거에요. 아니 그러지 말고 차라리 드라마를 한 편 보세요! 미생이 있잖아요, 미생! 그렇게 사랑하는 지인의 권유에 힘입어 드라마 미생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둑 보는 것을 종종 해와서 미생이라는 뜻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두 개의 집이 없다보니까, 언제든지 잡아먹히거나 죽어버릴 수 있는 돌들의 나열입니다. 바둑같이 치열한 싸움터에서는 미생에서 완생을 이루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계속해서 상대방이 나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 세상은 사실 따뜻한 공간이기 보다는,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차가운 공간이라는 말. 이것이 현실임을 이제는 분명히 바라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이제는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갑질이 있으며, 설령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는 하나의 기준을 대어놓고 너는 왜 이정도를 못해내느냐, 실망이 크다 라는 말들이 오고 갑니다. 그래서 드라마 미생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 열심히 살지 않았기에 나는 여기에 버려져있는 것이라는 말이 울컥하면서도 매우 공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아직도 스스로 살지 못하는 미생이라면, 그래서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무의미하게 변하고 만다면,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장그래 처럼, 미생이라도 좋다, 그래도 살만한 인생을 찾아서 저는 이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시청해 올 수 있었습니다. 영감을 주는 대목들 위주로 몇 가지 포인트를 집어보았습니다.

 

 

 극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오상식 과장, 그 역시도 미생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장이라면 이미 회사에서도 오랜기간 활약했고 업무도 능숙할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만둘 지 모르고, 또 매일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 과장은 스스로를 바둑에 비유해 미생이라고 겸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자신이 맡은 영업3팀이 여기에 치이고, 저기에 치이고, 때로는 중요한 프로젝트까지 좌절되는 경험을 하면서 그야말로 술로 저녁을 위로할 수 밖에 없는 직장인의 비통한 심정을 매우 섬세히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드라마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드라마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장그래 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먼저 잠깐 언급해볼까 합니다. 장그래는 바둑 말고는 스펙이 깨끗한 보기 드문 청년으로, 낙하산 비난을 받아가면서까지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인턴사원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열심히 하는 것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당장에 오상식 과장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청년은 (예컨대 안영이, 장백기 등) 한 걸음씩 꾸준히 계단을 쌓아올리는 태도로 살아가면서 여기 원 인터 회사까지 왔는데, 장그래는 갑자기 등장해서 자신의 열정만을 사달라고 하니 특별함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회사는 장그래를 냉대하는 분위기로 시작하고 있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아... 20대 중반. 장그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프로바둑기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지만, 그 길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다시 0점에서 출발하는 듯 보였습니다.

 

 바둑에서의 경험이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를 두고 저는 몇 번 어르신들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라는 분들도 반이 있었고, 도움이 된다라는 분들도 반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바둑 그 자체 보다는, 우리가 하나의 문제를 풀어가려는 집중력, 인내력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실제로 바둑은 넓게 판을 봐야만 승리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작은 승리를 탐하다간 큰 것을 내어주기가 무척 쉬운 것이 바둑이지요. 그 점에서 장그래는 다져진 바둑실력으로 이미 승부사 기질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표현대로 아직 사회에서 재능을 제대로 써보지 않았던 반짝이는 재목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스펙은 내세울 것이 전혀 없어서, 영어 전화에 다급히 안영이 사원을 붙들어야 하겠지만요.

 

 영업3팀은 내부고발자 역할도 해가면서, 사내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지만, 회사에서 돌아오는 태도는 싸늘하기만 합니다. 사회에서는 착한 일을 하기보다는,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올바를 때가 많다는 것을 드라마 미생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실적을 내었습니까. 이것 하나로 같은 회사의 팀끼리도 경쟁해 나가는 것이, 하루 하루의 연속입니다. 장그래 사원은 과감한 역발상으로 인기사원이 되어가지만, 반대로 영업3팀은 사내에서 좋지 못한 소문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는 잘해도 질투에 시달리고, 못하면 퇴출되어 버리는 냉혹한 곳. 그러나 가장 소름 돋는 대사는 다음에 있습니다.

 

 너는 직장생활이 전쟁터라고 했지? 그래 맞아. 전쟁터지. 총알이 되기도 하고, 총알받이도 해야 하는. 그런데 말야. 거기서 그만두고 이 곳 사회로 나와봐라.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라 그냥 지옥이야.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목숨을 끊기도 하는 희망없이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지옥. 그래서 저는 장그래 만큼이나 안영이 사원을 응원하면서 극을 보았습니다. 괴로운 가정 환경을 극복해가면서, 지옥 같은 현실을 계속해서 헤쳐나가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인생. 그 강인함에 정말이지 반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란 참 무거운 것 같습니다. 어떤 힘을 얻어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장그래는 "우리" 라는 두 글자에서 자신이 일어서는 경험을 합니다. 안영이 사원을 구해내는 오 과장님의 과감한 다리걸기는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결국 그런 소박한 마음들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희망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어서, 더 이상 걸어갈 힘이 없어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그 때 우리는 루쉰의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루쉰 -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징징 감겨들어 보아라.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게 되면 그 때부터 길이 되는 것이다. 극의 후반 승진한 오상식 차장이 사표를 쓰고 직장을 나올 수 있는 힘도, 그리고 계약 만료 앞에서 장그래가 웃을 수 있었던 힘도, 그들이 인생 앞에서 독사처럼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일도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지도 않고, 미리 두려움에 겁을 먹은 채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 미생은 제게 이런 교훈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지금 닿지 않는 다고 오늘을 후회하면서 보내기에는, 인생이란 참으로 아까운 것이니까요. 끝이 뻔히 보이더라도 열심히 걸어가던 인생에서 분명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서라도, 오늘을 힘내라면서 꼭 격려하고 싶습니다. / 2015.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