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에 대한 반발부터 다양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김대중은 유신 반대 운동을 펼칩니다. 이 운동을 하다가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1973년도 였는데요. 김대중을 납치해서 바닷가에 던져버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무섭지요.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계속해서 탄압하는 모습, 겨울 공화국의 분위기란 참 서늘합니다. 한편, 김대중은 죽음의 문턱에서, 미국과 일본이 박정희 정권에 대하여 생명을 죽이지는 마라는 요구에 의해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유신 헌법 개정 운동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 장준하는 실족사를 당합니다. 이것도 사실은 의문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요 정치인들 외에도 학생들 역시 가만히 있질 않았습니다. 학생 시위는 대표적으로는 민청학련 사건이 있습니다. 배후 조직으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있었고요. 박정희 정권에서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제일 좋았던 방법은 반공이었습니다. 북한이 위협하고 있으니까, 남한 사회를 흔들면서 활동하고 있는 간첩단을 잡아내고 축출해야 한다고 정권은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간첩단 리스트를 쭉 뽑아보니까, 인혁당이니, 민청학련이니 다 간첩과 연결되었다며 함께 없애버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정권에 반대하면 너 빨갱이다 라고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굴레를 씌워서 탄압하는 모습은 유신 체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행태입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라면서 3.1 구국선언도 있었고요. 언론인들도 저항을 합니다. 언론 자유 수호 운동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동아일보가 있는데요. 동아일보 기자들은 유신체제는 말도 안 되는 법이라면서, 언론인들의 소명의식인 비판정신을 앞세우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정권은 언론을 곧바로 탄압에 나섭니다. 광고를 해당 언론에 주지 못하게 막는 것이지요. 당장에 광고가 실리지 않는 동아일보는 유지가 어렵게 됩니다. 이것을 백지 광고 사태라고 합니다.

 

 아침에 신문을 받아보니까, 기사만 있고 광고는 깨끗하게 백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백지 광고를 채워나가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기업들이 광고를 안 주니까 민주주의를 위해서 이거 아니올시다 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름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광고를 싣습니다. 민주주의 만세! 민주주의여 승리하라, 동아일보 승리하라, 소시민들, 학생회, 가족들이 모여서 광고란이 채워지는 감동. 유신이라고 하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 자유를 이야기 할 수 없는 시대에서도, 하얀 백지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멋진 장면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니까 삐딱한 언론인들, 다르게 말하자면 - 정론을 이야기 하는 꼿꼿한 언론인들은 죄다 해직되고 잘려나갑니다. 실제로 언론 자유 수호 운동에서 기자들을 다 몰아내다 보니까,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질 못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다음에 배우게 될 5.18 민주화 운동 때에도 보도를 못 하는 슬픈 효과도 있었습니다.


 이 때, 야당을 이끌었던 김영삼은 유명한 말을 하지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맞습니다. 이런 식으로 엄청난 압박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결코 독재는 오래갈 수가 없겠지요. 그 독재의 종언을 이야기 하는 1979년도가 찾아옵니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를 흔드는 기폭제가 되었던 그들은 정치인들? 아니요. 언론인들? 아니요. 힘센 남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이 어린 여공들, 여성 노동자들 그들에 의해서 1979년도의 정권 붕괴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YH 여공 사태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가발 만드는 회사였는데요. 당시 시골에서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올라와요. 저임금이었지만 하루에 12-14시간씩 일해가며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할 게 많았어요. 시골의 아버지 약값도 벌어야하고, 동생들 학비도 대야하고... 그런데 이 YH 가발 회사가 갑자기 문들 닫아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이 회사를 살려달라고,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애걸해보지만 폐업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여공들은 야당이었던 신민당 당사로 찾아가게 됩니다. (*여당 공화당, 야당 신민당이에요) 여기 들어와서 시위를 하는거에요.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공들을 정부에서 공권력을 투입해서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해산시켜 버립니다. 헐~ 이 과정에서 건물에서 사람들이 떨어져서 죽기도 하고, 사람들이 다치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영삼은 이 때 매우 분노를 하지요. 왜냐하면 공권력이 투입되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지켜져야 하는 룰 같은 것이지요.


 첫 번째가 대학교이고요. 원래 비판적인 공간이 대학교 잖아요. 두 번째는 야당 당사 입니다. 정치 파트너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야당을 짓밟아 버린다는 것은 이것은 민주주의 안 하겠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세 번째가 종교관련, 교회나 성당, 사찰 등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일종의 에티켓이랄까요.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룰도 무시되면서 여공들이 탄압되었던 것입니다. 자, 그러자 분노한 김영삼이 외신 기자들을 불러 모아서 격렬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는 이 나라를 보고도 왜 가만히 있느냐 도움을 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오히려 정권은 김영삼이야말로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를 한다며 국회에서 제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잠잠했던 학생들이, 도저히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참을 수 없고 이건 아니다 라면서 학생들이 다시 들고 일어납니다.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항쟁. 부마 항쟁입니다. 처음에 대학생들이 모여 이건 아니다 라면서 쪽지를 돌릴 때에는 큰 호응이 없었다고 해요. 그러자 도서관을 다니며 직접 호소를 한 것이지요. 우리의 젊은 여동생들이 이렇게 쓰러져가고 있는데, 야당이 이렇게 탄압되고 있는데, 지성인들이라는 대학생들이 직장 찾겠다고 이 시대에 도서관에만 앉아만 있는 것이, 과연 우리들이 지금 해야할 일인가? 라면서 질문을 던지고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견에 동참한다면 등 뒤를 따라달라고 하자, 몇 시간 뒤에 학생들 수천명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부산대 정문에서 부마 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지요. 와우. 정말이지 놀랍고도 감동적인 현대사의 한 장면입니다.


 1979년 10월, 부마 항쟁을 어떻게 진압하느냐를 두고 정권에서는 의견충돌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좌우 측근이 의견이 달랐는데, 이 과정 속에서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는 10.26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면서 결국 박정희 정부가 무너지게 되었고, 최규하가 대통령에 올라서게 됩니다. 최규하의 경우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의해서 대통령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 때를 과도정부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길었던 박정희 시대가 끝났습니다. 겨울이 끝났습니다. 겨울 다음에는 봄이 와야겠지요. 봄을 기대하는 시기. 그런데 이 때, 12.12 사태가 또 벌어지면서 다시 신군부가 등장합니다. 전두환, 노태우를 앞세우는 군부의 모습들. 신군부에 의한 봄의 모습이라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 문서에서 계속됩니다.


 오늘의 영감 - 무언가를 하고 있기에 우리는 부자인 것입니다. 굳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또한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할지라도, 무언가에 도전해 보고, 시도해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경험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자인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꼭 열심히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5.01.3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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