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리뷰

시북(허지수) 2016. 1. 24. 21:16

 

 선생님 왜 떠나셨어야만 했나요. 새해 첫 번째 도서 글을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로 써야 하는 가슴 아픈 제자의 마음을 아시나요. 한 번도 직접 만나뵌 적 없지만, 글로 읽고, 강의를 찾아듣던 나 같은 제자도 있음을 당신은 아시고 계셨겠지요. 그래서 당신 역시도 끝까지 세상과 소통하고자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엮어주셨겠지요.

 

 신영복 선생님, 당신의 글을 한 번도 빠르게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담론, 428쪽을 꼭꼭 곱씹어가면서, 마침내 그 긴 여정이 다 왔는데... 그 눈부신 젊은 날, 루쉰(노신)을 알게 되고, 내가 아Q가 아닌가 반성해 왔는데... 그렇게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가시기에, 나는 그저 침묵으로 묵념만을 하게 됩니다. 아, 선생님, 저는 세상이 단 한 사람의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만, 당신이 제게 알려주셨던 것처럼, 그 비의를 기억하려 합니다.

 

 깜깜한 어둠 속을 달려가, 벽에 부딪히는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되어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시대를 비판적으로 냉정하게 관찰하며,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가며 틈틈이 책을 읽고, 또 나의 꿈을 써내려가면서, 그리고 할 수 있는데까지 살아내며 노력해 나가는 인생을 꿈꾸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내가 만난 신영복 선생님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나의 방식입니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로 평안히 쉬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은 인간이 도구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이 칠흑의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저자 : 신영복 / 출판사 : 돌베개

 출간 : 2015년 04월 20일 / 가격 : 18,000원 / 페이지 : 428쪽

 

 

 이 책에는 다양한 금언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제 마음을 울리는 것들은 대게 자신을 엄격하게 호통치는 것들입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 (p.326) 같은 말을 살펴볼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 같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부드러움을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냉철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호통칩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요구 입니다. 자기 자신부터 생각하기가 얼마나 쉬운 가요. 내 입장이 먼저인 사람들, 이기주의자가 실은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너무 고맙고 울컥하게도, 신영복 선생님은 자기 자신의 사례를 들어서 지기추상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해 줍니다.

 

 무기징역을 살고 있을 때, 선생님은 보안과 사무실에서 작업을 돕고 있었는데, 밤 11시가 넘어가서 출출한 그 시간에 짜장면을 기대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중국집 배달 철가방 도착!) "이것 조금 남았는데 마저 쓰고 먹지요." 그러나 교도관들은 조금은 당황했고, 무기수의 짜장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기대하고 있던 자신에 대한 (엄격한) 반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흔히, 신영복 선생님을 두고 반성적 진보, 성찰적 진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많은 작가분들 중에서도 특히 신영복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도, 자기 반성을 한다는 점이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고, 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경우도 신영복 선생님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호의를 많이 받고 자란 경우라서, 타인에게 기대하거나, 기대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물론 도움이 될 때가 종종 있지만, 반대로 실망하거나 낙심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따뜻한 위로라도 받고 싶어했는데, 너는 공부부터 더 하는게 좋아 라고 냉철한 반응이 돌아오면 괜히 마음 아파하고... 그만큼 나약하고, 못난 영혼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나약한 스스로까지 껴안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반성하며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래, 재빨리 판단하지 말자. 한 박자 늦추어서 대응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자. 이러한 겸허한 노력이야말로, 나를 오히려 끝없는 자기회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자기 반성을 해나가는 지식인. 이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여행에 대한 선생님의 고찰은 앞으로 제가 짊어져야 할 무게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안고 가야 할 이 구절을 고스란히 담으며, 이번 리뷰를 이제 정리해 봅니다. "여행은 떠남, 만남, 그리고 돌아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자기를 칼같이 떠나는 것입니다." (p.345) 저는 산다는 것에 대하여,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어느덧 인생의 절반 쯤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행복한 자기 자신과도 결단하고 돌아설 줄 아는 것이 어쩌면 지기추상과도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엄격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안주하면 할수록, 우리의 정신은 거기에서 만족해 버리고 눌러 앉아버림을 목격하게 됩니다. 힘들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상처입고 아쉽더라도 다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보는 모습을 잃지 않는 것. 때로는 세상 앞에서도 당당히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외치며,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나는 선생님의 삶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고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 나 하나부터가, 반드시 스스로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고, 그렇게 바르게 살고자 다시 발버둥치겠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계셔서, 나는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 2016. 01. 2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