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태양의 후예 (2016) 리뷰

시북(허지수) 2016. 4. 16. 02:41

 

 저는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 시간을 맞춰서 챙겨보는데 어려움을 겪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이제껏 본 드라마는 손에 꼽히는데, 베토벤 바이러스, 하얀 거탑, 괜찮아 사랑이야, 미생 정도, 정말로 그 정도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펼쳐보니깐, 제법 화제성이 큰 드라마를 보려고 했었네요. 최근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 관계로 TV예능이나, TV드라마에 채널을 맞춰드리곤 합니다. 태양의 후예는 그렇게 재방송을 두어번 보게 되면서, 급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활약하는 의사라니, 그것도 미인 의사라니 그 점이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아마 제가 여자였다면, 반대로 송중기의 눈동자에 빨려들어갔겠지만요. 하하.

 

 예쁜 여의사 선생님. 네, 제 이상형이 딱 그렇습니다. 현실감은 전혀 없습니다. 이상형이야 누구나 마음껏 꿈꿀 수 있으니까, 단지 그렇게 꿈꿔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마음 가득히 한동안 외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하얀 가운에, 촉촉하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마음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극중의 대사를 빌려서, 나 역시 "그 사람에 걸맞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저는 사랑에 대해서, 그 사람을 만나서 내가 더 발전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만남이 충격이 되어야 하며, 그 만남으로 인해서 인생을 더 멋지게 그려나갈 수 있다면, 그런 관계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이를테면 사랑이라고 이름붙여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리뷰는 드라마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작품을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그래서, 그래서, 사실은 에피소드 15편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강모연 선생이 아주 커다란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모습이 눈부셨습니다. 유시진 대위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돌이켜보면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그는 좋은 군인을 훨씬 넘어서서, 마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성자와도 같았습니다. 모범적이며, 훌륭하며, 멋있습니다. 그리고 강모연 선생 역시, 그와 똑같이 멋있게 그려져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또르륵 흐르더군요.

 

 여기까지가 짧은(?) 감상평이라면, 저 역시 유서 같은 것을 써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솔직하게 정리해두면, 다시 태어날 것 같았고, 세계가 한 번 더 진행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정혜윤 작가님의 표현을 빌려서, 나는 "부정적 의지가 아니라, 가고자 하는 곳, 이르고자 하는 곳"으로 이제 제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새벽 늦은 시간이 되든, 밤을 새우든, 무박 삼일을 하든지, 열정으로 나를 감싸고 싶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왜 우리는 만났을까요. H 선생님. 당신은 나를 만나자 말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질문을 던졌지요.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지 탐정처럼 콕 집어 알아맞췄지요. 그리고 다정하게 웃으면서, 짧은 대화에도 진심으로 응대해 주었지요. 실은 나도 관찰력과 호기심은 많아서, 의사 선생님들이 얼마나 바쁜지, 때로는 제대로 밥도 먹기 힘들고, 때로는 빼곡한 영어 내용을 머릿 속에 넣어둬야 한다는 것도 나는 그 클로즈 병동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당신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나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눈부시게 노력했나요.

 

 그렇게 하루, 이틀을 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매우 엄격하게 되돌아 보게 되었음을. . . H 선생님 당신은 알까요? 그 후에, 매일 산에도 올라가보고, 매일 도서관에도 가보며, 뒤늦게 내가 의사가 아니었음을 길게 후회하였습니다. 당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당당히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내 눈높이는 그와는 많이 다른 곳에 있어서, 당신께 고맙습니다 라는 진심 밖에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기적처럼 기쁜 일이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몇 년이면, 인턴일까 레지던트일까 끝나고 H 선생님은 훌륭한 의사가 될 것이겠죠. 나는 당신 같이 친절하고 좋은 의과대학생이 있었음에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존재 자체로 커다란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상형을 실제로 이 세계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도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유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어난 것을 많이 기뻐했고, 열심히 살지 않았음을 후회했노라고, 정직하게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테니까요. 반년이 넘었는데도, 이름도, 예쁜 외모도, 따뜻하고 다정한 태도도 늘 생각나지만, 나는 조금씩 조금씩 수년 간의 어머니 조울병 간호로 지쳐가고 있고, 식사도 제 때 못하는 탓인지, 배불뚝이 30대 아저씨 처럼 되어가네요. 그런 나를 대면할 때면, 이 빈약한 현실에 매번 좌절하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자는 마음이 항상 든답니다. 그것이 여기 오늘을 굳게 버티는 힘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세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세계에는 즐거운 일들이 가득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강모연 선생을 보면서, 나는 가끔씩 H 선생님을 겹쳐서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늘 다정하고 즐겁게 살아가기를.

 유시진 대위를 보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유서를 쓸 만큼, 혹독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편안하게 살아가는 나쁜 습관을 나는 반성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다시 진행되어 나가기를.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르므로, 흔들리지 않고, 다시 굳세게 일어서서 살아갈 수 있기를. 화이팅. / 2016. 04. 16.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