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농지개혁 - 유상매입 유상분배, 식민지 지주제 철폐

시북(허지수) 2016. 6. 17. 02:21

 

 이번 문서에서는 미군정 시기의 경제정책과 이승만 시기의 경제정책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미군정 시기, 어떻게 경제 운용을 했을까요, 정치적인 면에서는 모스크바 3상 회의를 통해 좌와 우가 대립되는 정치적 국면이 벌어졌었죠. 경제 역시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역으로 본다면,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으니까 정치적으로 혼란이 올 수 밖에 없었겠죠. 이제 경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이 시기는 엄청난 인플레이션 입니다.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물가는 폭등하는 시기였어요. 미국이 들어오기 이전, 일제 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을 살펴보면, 인적 물적 수탈하면서 공출, 배급 이렇게 막 뜯어갔었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있는 나라 아니겠어요. 이렇게 미국 입장에서 보니까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아니, 무슨 여기는 정부에서 막 쌀을 아주 싼 값에 거둬들이고 있었으니까요.

 

 왓 이즈 잇!!! 이게 뭐야!!! 그래서, 미군정은 처음에 곡물가격의 자유화 정책을 추진합니다. 쌀값 맘대로 해라, 그래야 시장경제지! 고급스러운 단어로? 하하, 곡가자유화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곡가의 폭등으로 이뤄집니다. 혼란기 였음을 미군정이 너무 파악을 못했었네요! 그래서 급하게 공출시스템으로 다시 변경합니다. 한편, 이 시기 제주 4.3 사건 같은 경우,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던 이유도 이렇게 경제적인 불안정을 깔고 있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함께 인지하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토지를 나눠줘야 하는 문제, 토지 개혁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작지, 즉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토지 규모를 살펴보면요, 점점 상승하는 그래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1946년 북한은 토지개혁을 하면서, 무상몰수(=5정보 이상이면) 무상분배의 방식을 취하는데요. 물론, 이전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이러한 북한의 분배방식은 소유권을 지급한다기 보다는 경작권을 지급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북한에서는 이렇게 분배된 토지들은 협동농장화 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쨌건 이 시점에서 남한 농민들은 우와 하며 부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역시 미국도 이에 대응한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일제 강점기 때 경제 정책의 중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였고, 일제 패망 이후에는 미군정에 의한 신한공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신한공사에 줄을 그어봅시다! 여기서 귀속토지의 분배를 단행 하게 됩니다. 귀속토지라는게 뭐냐하면,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토지를 이야기 하는 거에요. 지주들의 토지를 이야기 하는게 아닙니다~ 자, 여기까지는 북한의 토지개혁 방식에 대한, 남한의 대응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이렇게 해서 자작지는 광복된 이후보다는 조금 더 늘어났습니다! 그죠.

 

 거기다가 결정적인 것은 뭐냐하면 앞으로 남한에서도 정부가 세워지면, 이렇게 북한처럼 토지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정보가 공공연히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땅 가진 지주들 입장에서는 땅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촉이 딱하고 섭니다! 그래서 지주들이 자발적으로 땅을 팔아요. 빨리 돈을 확보해야겠다 싶었던 거죠. 이러한 지주의 자발적 매매에 의해서, 농민들의 자작지는 저절로 증가 추세로 가고 있었다는 것! 1945년 이후 자작지 상승의 흐름 쉽게 기억할 수 있겠죠?

 

 그리고 1948년도에 드디어 이승만 정부가 들어섭니다. 이승만 정부하면 세 가지 경제정책을 기억해둬야 합니다. 천천히 살펴보면 쉬우니까 걱정마세요! 첫 번째, 농지 개혁입니다. 가령 북한은 모든 토지에 대해서 분배하는 토지개혁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남한의 경우 농지개혁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에 대한 분배작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농지개혁의 방법은 뭐냐하면 유상매입 유상분배의 방식입니다. 유상매입은 3정보 이상의 토지를 사들입니다. 북한은 5정보라는 키워드였고, 남한은 3정보라는 것, 토지면적으로만 본다면 남한이 훨씬 더 강하게 토지 매입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왜냐하면 3정보 이상은 가지지 말라고 압박하는 거잖아요. (5정보는 한 15,000평 정도 됩니다) 남한은 더 앞서가는 개혁이라 이야기 할 수 있어요. 하하, 물론 이렇게 반론이 있긴 합니다. 북한 같은 경우 생산력이 높은 토지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추운 곳이다 보니까요. 남한은 비옥한 토지였고, 남한이 생산량도 많겠죠? 그래서 척박한 땅의 5정보 생산량과 비옥한 땅의 3정보 생산량은 어쩌면 비스무리 한건지도 모릅니다. 어쨌건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지금 각각 토지개혁, 농지개혁, 즉, 경제 개혁에 힘차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유상분배는 어떻게 시행했을까요. 토지의 가격을 어떻게 결정했느냐 하면, 1년치 생산량의 150%를 땅값으로 정했습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A라는 땅이 있는데 그 땅에서 1년치 100가마가 나왔다면, 이 땅 가격은 150가마라는 것입니다. 땅값은 사려고 할 때 150가마를 바로 지불 못할 수 있으니까, 5년간 분할해서 상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땅을 산 후에, 30가마씩 5년간 땅값을 지불하면 되는 겁니다! 유상분배의 구체적 방식이었습니다.

 

 농지개혁은 역사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식민지 지주제의 철폐 입니다. 농지개혁이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 때 잘 먹고 잘 살았던 일부 지주들, 또한 일본인 지주들, 어마어마한 땅들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한 개인이 많은 땅을 소유해 버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작농이 되고 말았던 아픈 역사가 이제 아물게 되었습니다. 아아, 참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식민지 지주제가 철폐된 것을 함께 꼭 기억해야 겠네요. 이러면서 소작쟁의 역시 감소하게 됩니다. 자작지의 증가로 자기 토지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으니까, 토지가 없을 때 쟁의를 일으켰던 사회 현상인 소작쟁의가 급격히 사그러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또한, 농지개혁은 6.25 당시 급격한 공산화를 방지하는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보아요. 농지 개혁이라고 하는게, 주로 49년에 법이 만들어져서, 50년도에 토지를 나눠주게 되는데요. 만약에요, 토지를 안 나눠준 상태에서 6.25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만약 그랬다면, 인민군들이 밀고 내려오면서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준다고요. 농민들은 광복 되고 나서 한 번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가,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서 북한 측에서 토지를 무상으로 나눠준다니, 북한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거죠. 돈과 생계가 가지는 힘이 그런 거니까요.

 

 그런데, 다행히도!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렇듯 의미 있는 농지개혁이 이뤄지게 되면서, 농민들은 토지를 갖게 되었고요. 농민들이 토지를 갖게 되면서 상당히 보수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 내 땅에서 이제 행복하게 농사지으려고 하는데, 북한이 내려와서 건드리느냐 같은 모습이 보이는 거죠.

 

 아, 그리고 지주들에게는 유가증권을 지급합니다. 이게 뭐냐하면, 나중에 돈으로 바꿔주는 증권인데요. 문제는 유가증권 백만원을 소유했으면,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에 인플레이션이 계속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가증권의 내가 받을 돈은 분명 백만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화폐가치가 폭락을 해요. 몇 년 있으니 예전의 백만원치 물건을 전혀 살 수가 없어요! 액면가만 높지 정작 칠십만원 밖에 가치가 안 돼요! 즉, 쉽게 말해, 유가증권을 가지면 손해라는 말이에요. 이러면서 지주들은 유가증권을 가지고서 손해를 많이 봅니다. 돈 많고 부유한 산업자본가를 꿈꾸며, 지주들은 땅팔고 유가증권까지 들고 있었지만, 지주들의 경우 산업자본가는 되지 못했다는 점을 끝으로 언급해 둡니다. 여기까지 농지개혁이었습니다. 전혀 안 어렵죠~? 재밌죠~! 저만 그런가요. 하하.

 

 다음으로 귀속재산 처리 문제를 봅시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자산들을 어떻게 했을까요.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 독점자본이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워낙 싸게 넘기거든요. 그리고 나머지 또 하나의 축은 원조 경제 입니다. 말그대로 원조해주고, 도와주는거에요. 누가요? 미국이요. 미국이 당시 가난하고 못 살았던 한국에게 원조를 해줍니다. 미국의 값싼 농산물들을 무상으로 원조 받아요. 원조 경제는 그런데 1958년쯤 되면 문제가 되요. 미국이 유상 차관으로 전환하게 되었거든요.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이제는 원조가 무상이 아니라 돈을 받고 빌려주는 형태로 간다는 것인데요. 이러다보니 사회가 팍팍해지고 훨씬 먹고 살기 어려워 집니다. 경제난을 겪는거지요. 그러한 배경 속에서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납니다. 경제가 불안하고 어려우면, 사회는 요동친다는 것을 여러번 보게 되네요.

 

 그나저나 미국의 값싼 농산물은 뭐가 있었을까요. 설탕, 면화, 밀가루! 이 세 가지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저보다야 머리 좋으신 여러분이라면 과연 찾을 수 있을까요? 제법 어렵습니다. 하얗습니다! 하하. 그래서 세 개의 하얀 제품이라고 해서, 삼백산업 이라고 불립니다. 삼백산업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시험에 삼백산업이 키워드로 있으면 이승만 정부를 떠올리면 되겠죠) 가령, 지금은 세계적 기업이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성 기업의 모태가 설탕! 제일제당에서 출발하는거에요. 설탕을 사고 팔다가, 그 흐름속에서 삼성이 혁신하고 반도체로 이름 날리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란 어쩌면 신기하죠? 또 재밌죠~

 

 벌써 이번 문서의 마지막이네요. 미국의 값싼 농산물이 원조로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이걸 어딘가에 팔겠죠? 이렇게 판매한 대금을 다른 말로 대충자금 이라고 합니다. 이 대충자금을 은행에다 예치해 놓습니다. 이러면서, 판매 대금을 어떻게 쓰느냐 이 문제겠죠? 한미 정부와 협의하여 사용한다 이겁니다. 한편, 원조 경제 체제가 되면서 농촌 경제는 타격을 입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들이 1960년대 많은 사람들의 이촌양도, 즉 도시로 향하는 모습의 배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농촌을 떠나는 하나의 원인 혹은 출발점이 되겠네요. 이제 60년대 이후의 현대사 경제 이야기는 다음 문서에서 계속 이어합니다!

 

 오늘의 영감 - 한 번쯤 고민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가져가게 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돈? 절대로 아닐테지요. 돈이 억만금이 있다한들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가져온 뜻만큼은 어쩌면 남지 않을까요. 정말 내가 한 평생을 이것 하나로 신념을 다 바쳐서 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뜻만큼은 살아 숨쉬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 뜻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뜻이라면, 그 사람은 죽음 넘어서 자신의 뜻이 살아 있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더 나은 생각, 사상, 예술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왜 이토록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건가요? 한 번쯤은 생각해 보시길 당부 드립니다. 혹시 나부터가 살아남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차마 대놓고 이야기 하진 않을 뿐이지, 혹시 안정적인 삶을 얻어내고 유지하기 위해서 일생을 보내려는 건 아닐까요.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일반적인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다르게, 죽음 앞에 선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면,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멋진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면, 그 당신만의 멋진 메시지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세 가지 당부를 전할 수 있습니다. 꿈이 참 자주 바뀌어 왔던 저는 "시간을 알차게" 라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슬픔도 고이면 단단해진다" 라고 반사하고 싶습니다. 공익광고를 보았습니다.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대목이 무척 근사했습니다. 고민은 때때로 금방 답을 찾게 해주진 않습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무엇인가의 빛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한국사 정리가 곧 끝나는대로, 또 다른 개인적인 정리들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아이디어란 그런 식입니다. 끝내 포기하지 않고 훌륭히 노력한다면, 결실이라는 것도 언젠가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좋은 결실이 있기를 응원합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함, 어려움에 도전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어서, 함께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