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통일 정책과 평화 통일의 과제

시북(허지수) 2016. 6. 30. 02:04

 

 한국사 마지막 문서입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통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승만 정부입니다. 이승만 정부의 통일정책은 딱 하나 입니다. 북진통일입니다. 간단하고 쉽죠? 북진통일에 위배되는 방안들은 다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 후반에 진보당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평화통일을 주장했던 진보당이 탄압을 받으면서 당수 조봉암이 사형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살펴본다면 조봉암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지난 1956년 대선에서 이승만과 대권을 경쟁했던 인물 아니었어요? 그런 인물을 사형시킨다는 것은 정치파트너에 대한 기본적 에티켓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정적을 사형대로 날려버린다는 것은 글쎄, 아무리봐도 적절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죠.

 

 이승만 정부는 4.19 혁명으로 무너지고, 장면 내각이 들어서지요. 장면 내각의 통일정책은, UN감시하에 남북총선거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봅시다. 총선거라면, 인구비례잖아요. 게다가 남한의 인구가 더 많잖아요. 북한이 응할리가 없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정권 내놓으라는 소리였으니까요. 하하. 그러므로, 장면 정부에서는 통일에 대해서 소극적인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 아니지 않느냐 라고 저항하는 혁신계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중립화 통일방안을 주장합니다.

 

 다음은 박정희 정부입니다! 1960년대 3공화국, 제 1,2차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수행해야 해요, 경제개발에 올인, 모든 화력을 쏟아붓고 있는 형편이었어요. 이 당시에는 통일 관심 없음. 선건설 후통일을 지향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박정희의 제 4공화국으로 넘어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우선 세계사적인 흐름이 달라졌어요. 닉슨 독트린이 등장하고 아니나 다를까 미국과 중국이 친해집니다, 북한도 우방국이던 중국과 러시아 중간에서 대체 어느 편에 서야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통일 방안은, 남북이 구체적으로 만나서 회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1971년에 최초의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렸고요, 세계사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자, 한국도 해빙의 분위기 속에서 남과 북도 손잡고 교류를 시도해 보는 셈이지요. 최초의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는 분위기도 있었고, 드디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합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이 평양에서 직접 만나게 됩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앞선 시대만 해도, 북진통일을 주장했었구요. 소극적 통일방안에, 선건설을 해야한다 그런 분위기로 쭉 갔었으니까요. 말하자면 남한이 들어선 이후, 북한은 우리가 점령해야 할, 혹은 우리가 구해줘야 할 대상에 불과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는 한민족이다? 라는 식으로 교류하는 파트너로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 통일 3대 원칙이 있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입니다. 이건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7.4 남북공동성명의 한 가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남북조절위원회가 있었어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몰~래 김일성을 만나러 가는 모습들을 보셨구요. 어쨌건 남북이 최초로 합의한 통일관련문서라는 것 꼭 기억해 봅시다. 화이팅! 색깔도 예쁘게 넣어봤어요. 하하.

 

 한편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의도가 그렇게 순수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즉, 7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어서 남과 북이 자신들의 각각의 정권을 더욱 더 강화하고, 유지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는데 활용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남북 정권이 공동성명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령, 북한에서는 이후 사회주의 헌법을 만들었고요. 남한에서는 10월 유신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때요, 남과 북 모두가 권력을 강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민족의 염원, 민족의 소망, 민족의 꿈이라는 통일을 정권의 체제강화를 위해서 이용한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정권이 넘어가서, 전두환 정부에서는요. 1984년도에 남한의 비가 억수로 와서~ 댐도 넘치고 물난리가 납니다. 수해의 피해를 굉장히 많이 입게 됩니다. 이 때 놀랍게도 북한이 구호물자를 전달해 옵니다. 이게 웬일이야? 자기들 먹고 살기도 힘들텐데 말이지요. 민족적인 차원에서 돕겠다는 거였지요. 오 감동인데요. 그래서, 그에 대한 화답의 형식으로 남한에서도 1985년도에 최초의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됩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참 중요한 내용이 되겠죠. 너무 안타까운 것은 왜 세상 어디에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의 혈연관계를 사상이라는 걸로, 이념이라고 하는 걸로 끊어놔가지고,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죠.

 

 이산가족의 상봉은 눈물나는 장면이 많습니다. 예컨대, 아들이 6.25 전쟁 통에 부모와 헤어졌단 말이에요. 근데,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보기 위해서 끝까지 살아가고 있다가 이산가족 상봉에서 마침내 만나게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만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들은 어떻게 헤어지고, 어떻게 또 그 아픔 속에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요. 이번에 헤어지면 어머니 돌아가실지도 모르고, 다시는 못 만날 지도 모르니까, 헤어짐도 눈물 그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즉,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잔인한 행위를, 이산가족들에게 그동안 가해왔다는 것을, 이것도 일종의 숨겨진 폭력일 수 있음을, 우리는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가 중요한 키워드 였네요. 중요한 대목은 색을 넣어, 3가지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북방외교를 펼치며, 중국, 소련과 수교를 하고요. 1. 유엔에 남북이 동시에 가입 합니다. 그 이전에는 북한이 계속 가입을 반대했습니다. 북한은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다며, 그동안은 계속 가입을 미뤄왔죠. 그러다가 유엔이라는 세계무대에서 발언하는 기회를 얻고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유엔에서 남북이 만날 수 있었고요. 합의도 볼 수 있었습니다. 2.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입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남북고위급 회담이라는 것을 체크하면 됩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은 남북의 관계를 잠정적인 특수관계로 봤습니다. 남북간의 교류는 민족내부교류로 봅니다. 이렇게 되니까 관세라는 것이 설정되지 않았어요. 예컨대 나라대 나라로 설정했으면 관세가 있었겠지만, 민족간 내부 교류로 합의하니까, 관세를 물리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렇게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이후에, 3. 한반도 비핵화 선언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의 1-2-3번의 흐름들을 체크해두면 되겠습니다. 시험에 종종 나오니까요.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솝우화 기억나시는가요.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길 것인가, 바람하고 햇볕이 싸우죠? 바람이 먼저 후후- 하고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자, 오히려 나그네는 외투를 꽁꽁 껴입게 되죠. 그러자 햇볕이 자기의 따뜻한 열을 쐬주니까, 외투를 벗어던지더라 입니다. 그렇게 북한에게도 따뜻한 햇볕을 쐬어주자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있었나요. 최초의 해로 - 바닷가 길로 가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남북 최초의 정상 회담이 열립니다. 이 때,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에서는, 남한의 연합제 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은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연합제라고 한다면, 지금의 EU 유럽의 모습이고요. 연방제라고 한다면 미국 각 주가 모여서 연방을 이루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 어쨌든 회담의 결과로, 드디어 육로 금강산관광이 열렸고요, 경의선이 복원이 되었고요, 개성공단의 등장, 이산가족의 상봉이 있습니다.

 

 다만 이 때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북한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원칙에 합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가 부정되는 방안에 대해서는 합의할 수 없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통일 합의 안에 북한이 동의해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6.15 남북공동선언이 되겠습니다.

 

 끝마치며, 시험에 자주 나오는 것 세 셋트로 요약해 봅니다. 인스타그램처럼, 샵을 활용해서 뚝딱. # 박정희 정부 7.4 남북공동성명, 통일3대원칙, 남북조절위원회 한 셋트구요. 그에 비해 두 번째 # 노태우 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는 - 공식적이고, 남북고위급회담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 김대중 정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발표되었고, 육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이렇게 시험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통일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꿈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행으로 기차타고 여행을 떠나는 거에요. 지금 우리는 북한이라는 벽이 있어서 못하고 있잖아요. 육로로는 갈 수가 없잖아요. 우리 수학여행, 평양에 있는 고구려 궁궐지를 보러가게 되었다고 말하게 되고, 개성에 있는 유적지를 보러 간대! 우와, 이번에 금강산도, 백두산도 구경한대! 그렇게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최선생님은 마지막 강의에서 당부한 바 있습니다. 이제 길었던 역사 문서 정리를 마쳐야 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사실은, 금방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167개의 문서, 3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그저 감사한 마음 뿐 입니다. 저는 작은 공부방에서 원래 중등 수학을 주로 맡았습니다. 집합이나 인수 분해, 근의 공식, 지수 법칙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날 한 학생이 "쌤~ 국사 시험 있는데 좀 가르쳐줘요." 라고 하길래, 몇 번 설명을 해준적이 있습니다. 저는 가르치는데 욕심이 좀 생겨서, EBSi 를 참고하게 되었고, 그 때 최태성 선생님의 명강의에 깊이 공감하며, 이런 강의는 꼭 어딘가에 글로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나씩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분이 블로그 댓글로 "글로만 읽었는데도 강의가 마치 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다고 표현했을 때, 나는 정말 다행이구나 라는 안도의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강의에 괜히 쓸데없는 말 더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또 함부로 빼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했으니까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만이라도 잘 반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기쁜 일이었습니다. 최선생님의 마지막 당부는 이것입니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 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을 보는데, 권력이 부패하니까, 일개 소시민의 삶이 무서울 정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혼자만의 행복 보다는, 모두가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당연히 좋은 선택을 위해 고민도 해야겠지만요. 그렇게 자신의 꿈을 발견해 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절대로 인생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공부방의 똑순이 제자 중 한 명이 백혈병 판정을 받아서 학교를 그만두었을 때, 저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고, 운전도 해가며, 다시 삶의 즐거움을 찾아나갑니다. 사람은 그렇게 힘든 순간을 겪고도, 웃을 수 있구나, 오늘을 즐겁게 살 수 있구나 라는 그 제자를 통해서 저 역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결국 오늘을 잡아라 라는 뜻의 명구, 카르페 디엠이 아닐까 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으므로, 오늘을 노력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므로, 오늘에 집중하면서 한 번 뿐인 눈부신 삶을 멋지게 자신의 뜻대로 구축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하지현 교수님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인생의) 완벽무결함을 포기하며, 상처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모든 위기를 성장과 새출발의 기회로 여겨, 새로운 정상 new normal 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펼쳐나가기를. 그 꿈, 소중히 여기어 매일 이루어 가기를.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노력하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꼭 힘내세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