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세바시 16회 - 가족신문이 가져온 조용한 혁명 조영헌 교수

시북(허지수) 2016. 7. 26. 23:50

 

 세바시 2011년도 강의의 내용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15분의 이야기들, 그 매력 속으로 빠져봅니다.

 ※ 16회 원본 강의 주소를 함께 첨부합니다. 아래 본문은 제 느낀 바대로 편집 및 요약되어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ewRcZ54QD34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에는 가족신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8년 동안, 매달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달에 한 번, 혹은 격월에 한 번씩 빼먹지 않고 발행하다보니 200회수가 넘게 되었습니다. 창간호를 살펴보겠는데요. 아버님의 축하글이 실려 있고, 사진이 들어가 있으며, 4컷 만화도 아래쪽에 넣게 되었습니다.

 

 1호를 여러부 발행해서 친척들에게 나눠주었고, 그 피드백을 받아서 2호가 또 작성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친척 누나의 칭찬글이 실려있게 되었고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일기도 실려 있네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내용을 떠나서, 이렇게 매번 발행을 시작하게 되었던 겁니다. 점차 독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화를 넘기기 시작했고, 50부 이상 발행하게 되었고, KBS TV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더 극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MBC에도 나오게 되었고, 손석희 씨와 함께 대화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손석희 씨는 서울 타임캡슐 프로젝트에 이 신문을 함께 묻는 것이 좋겠다고 클로징멘트를 했습니다. 아니 그러자 서울시에서 연락까지 왔습니다. 서울시가 승인을 해주어서, 앞으로 400년 후에, 타임캡슐 개봉 때, 저희 가족신문이 서울시 천년 기념으로 함께 오픈 되는 혜택을 받게 됩니다. 2394년에 일어날 입니다.

 

 10년 동안 가족신문을 발행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타임캡슐에 가족신문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 무게가 저에게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재미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400년 후에도 읽히는 그런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창간호부터 지난달 호까지 얼마나 양이 될까 궁금해서 무대를 메꿔보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배열하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내용을 채우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하나하나 보면 별 거 아니었지만, 28년치가 되니까 참 많았지요. 지속성의 힘이지요. 꾸준한 글쓰기와 집착이 가져온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받게 됩니다. 남들은 그렇게 봐주지도 않을 가족신문을 왜 그렇게 오래도록 발행했느냐? 또 발행의 위기는 없었느냐? 입니다. 왜 없었겠어요. 크게 두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 입학 시험에서 두 번 떨어졌을 때, 동생과 함께 대입준비를 해야 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그래도 가족신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이 때, 떠오른 궁여지책이 이솝우화로 가족신문의 분량을 채워나가는 것이었고, 그렇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저와 동생이 각각 박사 논문을 쓰겠다고, 중국과 미국으로 떠나게 될 때 다가왔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e메일이라는 것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가족신문은 죽지 않고, 계속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가족이고, 대단한 아버지셨지요.

 

 가족신문이 제게 3가지 변화를 주었는데요. 첫째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매달 무엇인가를 써내야 한다는 환경 때문에 저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생, 두 사람 모두 글쓰기가 중요한 교수가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원고 마감시간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참 힘들었는데, 꾸준히 노력하다보니 습관이 되었고, 대학교 들어와서는 레포트 마감시간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가정의 소소한 일들에 의미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었고요. 또 제게도 많은 변화를 끼쳤습니다.

 

 가치관의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작은 핵가정 단위에서 이뤄지는 소소한 대화와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편집하고 발행한다는 것은 저에게 소중한 가치로 다가왔습니다. 정말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커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고 하고, 영향력을 더 늘리려고 하는 순간, 가족신문은 망하는 것입니다. 아주 제한된 독자이지만,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에서 공유되는 가족신문이라면, 그 가치는 살아있다고 생각됩니다.

 

 들째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끈기를 통해서 얻게 되는 자신감과 펀치력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시도 자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바시 역시, 오래도록 1년, 10년씩 나아갈 수 있다면,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다면 사회를 향한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가족신문에서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싣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궁금해 했던 저는, 친척들에게 할아버지의 아는 소식을 좀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랬더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여러가지의 글이 도착했고, 책자로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이 소중하게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일은 메이저 신문사나 방송사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 바로 각 가정이 해야할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가족신문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이러한 조용한 혁명에 함께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2016년 7월 26일자 오늘의 영감 - 교수님이 나오셔서 가족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자부심 가득하게 15분간 열강하셨습니다. 뜻밖에서 저는 놀라움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글쓰기도 꾸준히 한 30년 하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블로그 9년차 정도가 되어가고, 동호회 14년차 정도 되지만,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겨낼 비결은 앞으로 더 많이 써내려가는 것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블로그가 커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제 버려도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내가 아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는 블로그라도 무척이나 소중하구나 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글을 써내려가기만 하면, 꿈결처럼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 갈 수 있구나를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강상중 교수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 어머님이 글을 잘 모르는데도, 어머니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서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이든 삶에 대해서 재조명 해 본다는 것이 참 멋있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그런 열정이 있을까를 되물어 봅니다.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가능했는지는 한 번쯤 살펴보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도 글이라고는 거리가 멀었던, 어머니, 지금은 몹시 아픈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지속성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겨우 16걸음 와놓고, 망설일 때 많았습니다. 발걸음이 무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에 의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속성의 힘을 믿고, 꾸준히 단지 그렇게 좀 더 걸어가보려 합니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계속 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이라는 단어는 참 좋은 뜻이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