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6. 9. 22. 00:47

 

 한 아마존 리뷰어가 이렇게 평했습니다.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족 중 난치병이나 중병을 앓는 분에게 힘든 작품이지만, 그래도 나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틀림 없었습니다. 스틸 앨리스를 보고 나서, 어딘가 마음이 공허해지고, 마음이 너무나 슬퍼졌습니다. 제 어머님은 심한 조울병을 앓고 있고,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으며, 영화 속 어머니 앨리스와 겹쳐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우리 가정에는 이제 1주일에 2회씩 사회복지사의 방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이와 똑같은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복지사의 도움이 있어야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는 단계. 아... 그럼에도 과연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이번 추석에 어머님은 마치 조용한 초등학교 아이와 같았습니다. TV 가요무대를 보면서 옛 노래를 어렴풋이 따라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길을 잃었습니다. 한 때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밝고 경쾌한 어머니 대신에, 이제는 조용하고 정적인 어머니의 모습. 그래서 스틸 앨리스를 보면서도 중간중간 눈물이 차올랐고, 이 리뷰를 쓰려는대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 겠노라고, 더 좋은 삶을 살아야 겠노라고, 매일 다짐을 하고, 그래서 은사님께 값비싼 기계식 키보드도 추석 때 선물받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앨리스 교수에 비해서, 얼마나 나의 인생은 여전히 가볍게 입만, 말만 둥둥 떠다니는지요. 삶은 어떠한 순간에도 선택이며,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정말 묵직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내서 이 영화 리뷰도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초반에 울컥했던 장면은 앨리스의 잊을 수 없는 명대사 였습니다. "희귀성 알츠하이머라니! 차라리 암이 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람들에게 도움도 받을 수 있고! 기금도 모금할 수 있고!" 신경과에서 정신의 병으로 판정 받는 것이란 정말로 그렇게 힘들고 아픈 것입니다.

 

 병명은 다르지만, 저는 지금도 조울병으로의 여행 이라는 책에 있던 구절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이 병 조울병은 가족들이 매우 힘들 수 있는 병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주변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라. 입니다. 저는 이후에 어머님이 아프시다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블로그에도 몇 번씩 사례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겨낼 때까지 노력하고, 약을 먹고, 계속해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앨리스의 가정은 정말 화려합니다. 남편은 의사, 본인은 교수, 자녀들도 법대, 의대생이고, 막내딸은 연기를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앨리스의 결정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격려해 줍니다. 특히 극의 후반부 보잘 것 없어 보이던 막내딸이, 엄마 앨리스와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가슴을 오래도록 시리게 만듭니다. 비록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지만, 그 인생도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의미는 얼마든지 가득차 있음을 선명하게 목격하게 됩니다.

 

 아빠의 말이 참 정직합니다. "(딸아)네가 나보다 낫구나" 그런 사실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강한 자극이 되는지 모릅니다. 설사 인생이 의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괜찮아. 중요한 것은 마음 속에 따스한 사랑이 여전히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리고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가혹하리라는 것은 꼭 생각해봐야 겠지요.

 

 낮은 확률도 걸리는 병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하고 이상한 곳으로 바라보게끔 만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랑하고 아끼던 공부방 제자가 백혈병 판정을 받아서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자, 저는 인생은 참 부조리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게도 인생은 어떠한 일이라도 때로는 일어나는 것, 우리는 하루 앞에 다만 주어진 시간을 아끼며 힘내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 그 마음을 건져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뇌해야만 했는지요. 읽고 있는 책을 잠시 펴겠습니다.

 

 "인간이란 그 이유만 안다면 제법 힘든 일도 견딜 수 있지만 그 이유를 모르고는 견디기 힘들다고들 합니다. 그러니까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타격을 입은 사람은 허탈한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괴로움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가장 어렴풋한 빛에야말로 모든 희망이 의거하고 있으며, 가장 풍요로운 희망조차도 희미한 빛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강상중 저, 구원의 미술관)"

 

 그래서 이 영화는 대단한 힘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싸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극단적 선택지까지 최후의 플랜을 만들어 놓는 장면은 강렬한 힘이 느껴집니다. 알츠하이머에 관한 연설을 하겠다며, 사람들 앞에 서서 그 어떤 사람들보다 멋지게 자신의 사례를 명연설 합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희망을 얻습니다. 그 연설 중에 일부를 발췌해서 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기억들로 인하여, 인생이 반짝이며 빛나는 것입니다. 글로 옮기기 위해 연설문을 요약했습니다.

 

 "내 남편을 처음 만난 밤, 저의 첫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친구를 사귀었을 때, 세계를 여행했을 때 - 이 순간들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이제 이 기억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 지옥 같은 고통입니다. 우린 바보처럼 우스워지고 무능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의 병입니다. 내 꿈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런 병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애쓰며 산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데까지만, 그렇게 매일 노력하며 걸어가본다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고 좋았습니다. 억지로 감동을 자극하지도 않는데도, 너무나 기막히게 훌륭한 연설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 영화로 인해 줄리안 무어는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것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혹여 힘든 병으로 고생하는 가정이 있다면, 무엇보다 힘내기를 응원합니다. 아무래도 도무지 병에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어렴풋한 빛을 발견해서 힘내는 게 중요합니다. 매 순간을 그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로 힘낼 수 있기를. 꼭 그렇게 우리가 이 세계에서 여전히 힘낼 수 있기를... / 2016. 09. 2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