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런던을 속삭여 줄게 리뷰

시북(허지수) 2016. 9. 23. 00:26

 

 런던을 속삭여 줄게 - 참 오래 두고, 가까이 하면서 읽었던 즐거운 친구 같은 책입니다. 저자가 런던을 여행하면서, 메모하고 느끼고 읽고 썼던 이야기 입니다. 가령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이런 굉장한 글을 썼습니다. 움찔하면서 하는 일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저력이 대단합니다. 함께 읽어보지요.

 

 "나에게는 사원의 무덤들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한 고장이고 멈추지 않는 탐험을 계속해야 할 지평선만 같았다.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거의 절대적인 자기만의 열정 속에서 인생을 살아갔고, 인생을 소모했고, 탕진했고 열정에 아예 인생을 갖다 바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다. 우리 시대는 열정 따위는 죽이고 주변 사람들하고 똑같아지기 위해 죽어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시기니까.(p.26)"

 

 장문이지요. 그런데 제게는 중간에 마음을 콕 집는 말이 있습니다. 오, 그대, 인생을 절대적인 자기만의 열정에 바칠 수 있겠는가! 저도 그 열정(!)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고, 방황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앙드레 지드의 표현이 여기 있습니다. 그대는 모든 것을 지나가며 바라볼 뿐 그 어느 곳에도 멈추지 마라. 움직이는 삶, 방황하는 삶, 찾아다니는 삶, 이것이 사실은 참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여유도 항상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찾아낸 열정을 불태울 만한 것들은 소중히 대해야 함은 물론이고요.

 

 저자 : 정혜윤 / 출판사 : 푸른숲

 출간 : 2009년 09월 20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99쪽

 

 

 이 책에서 발견한 워즈워스의 시구는 저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되었습니다. 블로그에서도 몇 번 써먹었습니다. 여러 번 곱씹어도 참 좋기만 합니다. 시구는 "평범한 날의 소박한 결실(p.37)" 입니다. 평범한 하루에도 열심히 다시 힘을 낼 수 있고, 그렇게 결실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마치 마법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거창한 결실에 대한 꿈을 접는 지혜로움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작은 것에 감동하는 방법, 작은 것에 기뻐하는 방법을 더 배워보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매일의 삶을 작은 결실을 남겨가면서 산다면, 아 그래 이것이 나의 꿈이었지! 라는 실로 멋진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정혜윤 작가님은 삶을 긍정하며 이렇게 기술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자기 삶의 신화가 될 수 있다고!" 한 인간이 자기 삶을 대답으로 바쳤을 때 우리는 어떤 노력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 질문에 대하여, 인생으로 대답한다는 것은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요즘 어떻게 지내니? 라는 일상적인 질문에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사랑 고백이 정혜윤 작가가 생각하는 고백 중 최고 라고 여긴다니, 그 기괴함이 참 재밌고, 흥미로웠네요. "너는 나야" 그건 일생을 건 선언이며, 황야에 길게 울리는 고통스럽고, 어쩔 수 없는 외침이지만, 그 외침이 사랑 고백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같은 입장이 될 수 있고, 너와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고, 너와 내가 같은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순간, 아! 그것이 사랑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다나카와 슌타로 식으로 말하자면 - 세계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는 나일 수 있다. 참 근사한 이야기들 입니다.

 

 책 속 밀턴의 이야기는 대단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앙에 관한 짧은 표현이었는데요, 역시 꾹꾹 필사해 읽어보겠습니다. "지식이 뛰어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를 가장 잘 지고 가는 자가 신의 가장 훌륭한 종이다. / 불행의 근원은 실명이 아니라, 실명을 참아낼 수 없는 데 있다.(p.73~74)" 두 번의 결혼 실패, 딸들이 싫어한 아버지, 사람들은 조롱했지만,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실낙원 1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오지요. 지옥도 천국으로, 천국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신도 맹목적인 복종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은 기계적이고, 습관적이지 않았나, 설렘은 사라진지 오래이지 않았나를 되묻게 됩니다. 혹여 내게 주어진 굴레가 있다면, 기꺼이 반갑고 당당하게 맞이하며, 잘 지고 갈 수 있기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기에 참 좋은 책입니다. 라셀라스의 10장에 있는 구절은 매혹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시인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법입니다." 경험을 쌓으며 살자는 취지에서 이 구절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도 (간접경험의 보물창고인) 영화 한 편을 찾아서 집중하면서 동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비록 시인이 아닐지라도, 인생을 그렇게 순진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긍정이 주는 열매가 참 좋아보였습니다.

 

 이번 리뷰는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독특한 책이라 마음을 잔잔하게 파도처럼 들락거리는 멋진 기분을 안겨주던 책이었습니다. 안녕, 멋진 한 권의 소중한 책이여. "우리는 한때 완전했던 어떤 형상을 잃어보았기 때문에, 다시 무슨 일이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자기 삶의 로맨틱한 예술가들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존재의 기술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삶을 통해 반드시 구현해내야 하는 예술일지도 모른다.(p.217)" 시인이 되었던 기분이 들었으며, 그렇게 런던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 2016. 09. 2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