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마태복음2:1-12)/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7. 1. 5. 02:21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태복음2:1-12)

 

이제 성탄절이 십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즘은 솔직히 예전에 비해서 성탄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편입니다. 일단 길거리에서 들려오던 캐롤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십년전에도 제가 설교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열기가 식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캐롤이 들려 오지 않는 것은 캐롤의 저작권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캐롤에 대해서 저작권에 걸리지 않으니까 많이 틀어도 된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는걸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새벽송을 도는 교회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집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제는 걸어서 가기가 곤란합니다. 물론 차로 가기도 어렵습니다. 새벽송을 부르러 차를 타고 다닌다...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낯선 것 같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주차공간이 문젭니다. 차를 댈 곳이 없습니다.

 

이젠 새벽송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새벽녘에 잠결에 들려오던 고요한밤 거룩한 밤의 가락은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생때 학교친구를 전도했는데 그 친구가 새벽송에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다니다가 원망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춥고 너무 많이 걷고 지금 같으면 자가용을 타고 다니...그래도 새벽송은 추억입니다.

 

요즘같으면 어쩌면 새벽송을 듣고 소음공해로 신고하는 일도 생길지 모릅니다. 그 옛날 교회의 새벽송이 구주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복된 소식을 알리는 소리였다면 이제 교회의 성탄절 예배는 가진자들의 ‘저거들끼리 잔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고 낮은 곳에는 결코 들려오지 않는.

 

방송에서도 성탄을 별로 떠들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성탄전야나 성탄 당일정도 몇가지 특집을 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 장엄하고 고요하며 신비스러운 성탄의 분위기가 더 이상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관습의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2월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성탄절은 이제 기다리는 자들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성탄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성탄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이에게는 성탄은 일년의 가장 아름답고 가슴 떨리며 거룩하며 장엄한 신비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탄을 생각도 하지 않던 이들에게 성탄절은 헤롯과 예루살렘이 소동하던 것처럼 천지개벽의 큰 일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징조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소식입니다. 그렇지만 성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의 기쁜 날입니다.

 

1.성탄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다
성탄이 기다리는 자의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주의 나심을 알고 동방에서 베들레헴으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성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박사들은 실제로는 페르샤의 점성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문에는 이들이 ‘마고스’라고 합니다. ‘마고스’는 마법사, 점성가, 현자, 또는 제사장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별을 보며 세상의 일들을 예측하고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언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페르샤는 로마제국의 동진을 막는 가장 큰 대적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를 모두 제패하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북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이들에 대적할 수 있는 문명국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그들은 야만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단지 이들이 유일하게 자기네와 맞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바로 페르샤인들입니다. 당시는 아마 파르티아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강국인 페르샤도 로마의 위협에 맞서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만큼 로마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오랜기간동안 페르샤에 포로로 머물렀기 때문에 페르샤인들 역시 유대의 전설이나 성경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메시야는 단순히 유대인들만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메시야가 탄생하고 로마를 물리치는 것은 페르샤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별을 연구하던 이들의 앞에 홀연히 밝은 별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목성과 토성이 겹치는 현상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헬리 혜성이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초신성이 갑자기 나타났다고도 합니다. 여하튼 이들은 그 별이 유대인들의 성경에서 말하던 메시야의 탄생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별을 따라 메시야의 탄생을 찾아 온 것입니다.

 

이들이 준비한 예물을 보면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매우 값비싼 것들입니다. 이들은 이 선물을 준비하고는 별을 좇아 예루살렘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좇아 예루살렘까지 와서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 대해서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걸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자기들이 먼 곳에서부터 별을 따라 올 정도였으므로 이미 수개월전에 태어나신 이를 , 자기네의 왕을 유대인들이 반드시 알고 있을걸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기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배는 신적인 경배를 뜻합니다. 그래요, 바로 동방박사들은 그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를 해방시킬 메시야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온 유대인들이 알고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2.성탄을 두려워하는 자도 있다.

그런데 이말을 듣고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난리가 났습니다. 헤롯왕이 메시야의 탄생소식에 놀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두매 사람입니다. 에돔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에돔인은 경멸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헤롯이 로마 원로원의 결의로 유대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으니 헤롯은 언제나 유대인들이 자기의 왕권을 공격하고 새로운 왕을 세울까봐서 겁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판에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것은 그에게는 청천벽력입니다. 자기가 엄연히 왕으로 있는데 다른 왕이 태어난다는 것은 그의 왕좌를 위협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에게 메시야의 탄생소식은 단순한 반란의 소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가 세운 왕이므로 로마에 반하는 왕은 그의 가장 큰 대적입니다. 그래서 놀란 것입니다.

 

오늘날 구주의 탄생은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올바르게 부를 획득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피눈물을 짜서 부를 쌓아 올린 이들에게
자기가 좀 있다고 없는 이들을 무시하며 괴롭힌 이들에게
구주의 탄생은 복된 소식이 아니라 엄청난 재앙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길한 소식입니다.

 

바르게 살지 못한 자신이 심판받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불길합니다. 그런이들도 물론 구주의 나심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주의 나심을 환영하거나 기뻐한 것은 아닙니다.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구주의 탄생을 싫어한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오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해왔던 구주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이들에게 분명 복음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역시 구주의 나심에 대해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소동합니다. 왜입니까?

이들 역시 기존의 체계가 뒤집히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안그래도 잔인한 헤롯의 통치가 더 잔인해 질걸로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유대독립의 전쟁이 일어나면 피바람이 불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이들 역시 가진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켜야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지금 이방인인 헤롯의 지배하에서 나름 만족합니다. 로마의 통치아래 있지만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고 막막한 그래서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수도에서 재산을 유지하며 군림하는 이들입니다. 기존의 질서가 뒤집히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래서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소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성도로 불렸던 예루살렘에서 구주의 소식은 없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10km정도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구주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인구 2000의 적은 도시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입니다. 그것도 베들레헴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관저가 아니라 여인숙의 마굿간에서 나신 것입니다.

 

그의 요람은 말구유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수도의 왕궁이 아니라 가장 적고 가장 낮은 곳에서 나셨습니다.

만리타향에서 그의 별을 보고 동방박사들이 그에게 경배하기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오는데 정작 그의 백성들은 그가 나심을 듣고는 두려워하며 소동합니다.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습니다.

 

3.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헤롯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주목하세요.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라고 부르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아니라 정확하게 그를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헤롯도 이미 알고 있다는 거지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이가 단순한 유대의 왕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숙원을 이룰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 두려워합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는 자이므로 인간의 힘으로 그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모인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여기서 좀 웃긴게 원래 대제사장은 한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은 뭡니까? 바로 대제사장이 여러명이 있다는 말이고 이것은 그만큼 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제사장은 장인과 사위가 대를 이어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율법에 의한 대제사장이 아니라 로마당국에 뇌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이 된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썩어빠진 자들이지요.

그러나 이런 자들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난다는 사실을 미가 선지자의 예언서를 이용하여 정확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헤롯과 서기관들은 구주의 나심을 환영하지도 않고 구주의 나심을 기다리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구주는 정확하게 성경의 예언대로 나신 것입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이들은 결코 메시야를 구주로 영접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다만 동방박사들에게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메시야를 찾게 되면 자기네에게 알려 달라고만 부탁합니다.

 

말로는 자기들도 경배하려고 한답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구주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들이 구주가 나신 것을 즉각 확인하러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먼저 동방박사들에게 가서 알아보고 알려달라고 한 것은 구주가 피난할 시간을 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뭐겠습니까?

 

사실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이때까지 수백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주님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오신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를 보러 가지 않은 겁니다.
한마디로 유언비어로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분이므로 그분의 오심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온 세상에 골고루 내리기를 바란다고 덕담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구주의 오심을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그는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기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께서 모든 부자들과 통치자들을 벌하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께서는 이땅에 더 이상 불의와 부정이 없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서기를 원하시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 일을 하게 하려고 세우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만 합니다. 구주의 나심을 기뻐하며 그의 나심으로 이 세상이 좀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하는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세상을 좀 더 사랑하며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하며
세상을 좀 더 정의롭게 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알기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4.별이 인도한다

하늘의 별이 사람을 인도한다는 것은 어떤 말일까요?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는 겨우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그 별의 움직임으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구별하기가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정관에서 보는 달이나 부곡동에서 보는 달이나 남포동에서 보는 달이 다 똑같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달이 다르게 보인다면 그는 굉장히, 아마도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관찰력의 소유자입니다.

제가 예전에 학창시절에 즐겨했던 일이 있는데 그건 밤에 길을 가다가 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마치 하늘의 달이 나를 따라서 가면서 나에게 빛을 비춰주는 듯이 느껴지는게 너무 신기해서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달은 나를 따라온게 아닙니다. 나를 따라서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그렇게 느낀 것 뿐입니다.

과연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별의 인도를 받았을까요?

 

헤롯의 왕궁에서 나오자 이제까지 그들이 보던 별이 다시금 그들의 앞에서 그들을 인도한 것을 보고 그들이 기뻐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의 인도를 받아서 베들레헴으로 갔고 그곳에서 아기 예수를 찾아서 그에게 가지고온 예물을 드리고 경배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주를 찾을 수 있었을까요?
그 당시 베들레헴에는 태어난지 얼마 안된 남자아이가 한명 뿐이었을까요?

 

물론 베들레헴이 겨우 이천명의 적은 도시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동방박사들이 자신들이 별의 인도를 받는 다는 것을 믿을만한 특별한 어떤 징조가 있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게다가 그들에게 아이를 찾을 수 있도록 뭔가 하늘의 별이, 페르샤에서 그들을 이끈 별이 특별한 힌트를 주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일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별이 그들을 인도했는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별이 동방박사들을 정확하게 베들레헴 구주의 처소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점성가들은 하늘의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세상의 길흉화복을 점쳤습니다.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고 죽을 것을 별의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점쳤습니다.

서울에 사당동에 가면 낙성대가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 하늘의 별이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감감찬 장군이 태어났더랍니다. 하늘의 문곡성이라나 뭐라나 여하튼 큰 인물이 될거라고 이야기했다는데........

 

가끔가다 우리도 우리의 탄생이 뭔가 굉장한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아니면 내 아들의 내 딸의 탄생에 뭔가 하늘이 내리는 징조가 있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자식들의 태몽에 대해서 예민합니다. 이 아이가 커서 과연 무엇이 될까를 생각하면서 태몽의 꿈해몽에 골몰합니다. 당연하게 어떤 태몽도 없을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오랫동안 별을 관측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천문학자가 아니라 별의 움직임을 보고 세상의 조화를 깨우친 현자입니다. 이들에게 베들레헴을 비추는 별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5.세가지 예물
이들이 구주께 경배하기위해 가지고 온 예물을 봅시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
굉장히 귀하고 의미심장한 것들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집에 있기가 미안할 만큼 귀하고 비싼 물건들입니다. 그럼에도 동방 박사들은 그 예물을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우리는 어때요?
성탄절날 무언가를 받는다는 생각만 했지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부모가 되면 자식들에게 또 연로하신 어른들에게 선물을 하고 교회의 예배에서 성탄절 헌금도 하고 길거리 자선남비에 기부금도 넣지만 성탄절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받는 날로 기억됩니다.

 

돈이나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축복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은 그 먼 곳에서 와서 주를 만나고는 아무것도 얻지 않고 오히려 귀한 것을 예물로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그 먼길을 왔습니다. 산을넘고 물을 건너 사막을 횡단하여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바라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 먼거리를 와서 그 귀한 것을 드렸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동방박사들이 주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뭔가를 요구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우리도 성탄절날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 보다는 무언가를 기쁨으로 주는 이들이 됩시다. 주의 나신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뭔가 베푸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끼리 기뻐서 즐거워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기쁨을 온세상과 함께 나눕시다. 그리고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들을 우리가 이어받아서 계속 합시다.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이 뭐지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썩어져가는 것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지켜지고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 주께서는 오셨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그게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억합시다. 성탄의 주인께서 바로 그 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을 하러 오셨다는 것을.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6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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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어린 시절에 새벽송을 돌고, 과자나 사탕 같은 것을 받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또 성탄절은 왜 그렇게 추웠는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을 여름에 하면 안 되나요? 농담입니다. 목사님은 재밌는 이야기 또 하나 해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잠시 동안, 메리 크리스마스 하지 말고, 그냥 휴일(holiday)이라고 쓰자고 했다는 것. 그래서 풀러에 있을 때, 성탄절날 휴일이라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이런! 그런데 재밌게도? 트럼프 당선인은 다시 메리 크리스마스로 하자 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 사람 일은 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올해에도 정관누리교회에서 받은게 많습니다. 주는 것이라고는 없는데, 성탄 기념 빵을 받아서 가족들과 참 맛있게 나눠먹었습니다. 이런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개척교회의 즐거움이라 생각해 봅니다. 새해에는 설교 업데이트도 분발해서 열심히 하고, 좋은 성도가 되길 다짐해 봅니다. 우리가 베푸면서 사는 삶이 될 수 있기를! / 2017. 01.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