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7. 3. 30. 01:15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 즉 운 좋은 여건에서 명작 영화 셔터 아일랜드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디카프리오 주연이니까 재밌겠지, 해외 IMDB 평점이 8.1이나 되니까 한 번 심야에 봐줘야지, 그런 마음이었지요. 결론은 대만족이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충격도 대단히 컸고, 영화 참 긴장감과 짜임새 있게 잘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조현병(정신분열증)에 대한 이해수치도 좀 더 증가한 것 같아서 고마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블로그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어머니가 심한 1형 조울병을 앓고 계셔서, 이후 정신의학에 관련된 서적들을 몇 권 독파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결국 정신 장애 판정을 받으시고, 폐쇄병동도 몇 차례 거치는 등, 여전히 정상 생활로는 복귀하시진 못하시지만... 벌써 수년간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뇌가 병드는 것도 슬프고 힘든 일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쩌면 고운 유리잔 같아서,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으면 금이가고 망가져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점을 영화가 침착하고 정중하게 잘 안내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연방 보안관 테디가 탈출 불가능의 섬, 셔터 아일랜드로 수사를 오는 것에서 부터 극은 시작됩니다. 보안관의 자부심이 강해보이는 이 남자, 배에서는 비록 멀미로 체면을 조금 구겼지만, 동료 보안관 척과 함께 이번 수사를 멋지게 해내겠다는 의지가 결연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무척 재밌게도 (실은 두 번 보면 새로운 관점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테디가 오자마자 경계 태세를 올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기 경계 수준이 장난 아닌걸?

 

 미국 최악의 정신병원에 왔으니까 이 곳 규칙을 준수해야고 목소리를 높이는 관계자. 덕분에 테디와 척은 어쩔 수 없이 총까지 반납하게 되었습니다. 테디는 도주했다는 레이첼 양을 찾아내보려고, 초 집중 모드 입니다. 그러나 몸은 잘 따라가주지 못하는 듯 합니다. 심한 편두통도 있고, 아스피린을 급히 먹고, 안정을 취하기도 하네요. 설상가상으로 날씨가 엄청납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어서, 이 섬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동료 척과 함께 섬 곳곳을 파헤쳐 가는 도중에 드디어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첼이 도주에 성공해 살아있었다는 것!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 섬에서는 나치와 소련에 버금가는 인체실험이 행해지고 있는 끔찍한 공간임이 드러납니다. 머리를 절개해서 뇌 곳곳을 찔러보고, 인간을 좀비로 만들며 등등, 그러고보니 테디가 수사하면서 어느 여자는 RUN (도망쳐!) 이라고 적힌 쪽지를 몰래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섬이었다니. 멀쩡하고 영리한 의사까지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섬뜩한 곳이라니, 그런데 테디는 용감하고 강인하고 행동부터가 다릅니다. 정의감이 넘치거든요. 내가 레이첼 당신도 구해내고, 이 곳의 비밀을 폭로해 버릴테다! 그렇게 비밀이 숨겨 있다는 등대로 향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등대 수색씬이 저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믿었던 현실과 펼쳐진 현실이 전혀 다른 세계. 그리고 마침내 밝혀집니다. 망상장애로 힘들어 하는, 조현병 환자 테디의 실제 모습이 관객 앞에 낱낱이 드러나고 맙니다. 존 코리 박사는 끝까지 테디를 고쳐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좋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시대를 한참 앞서간 선택이었지요. 함부로 뇌를 해부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물로만 치료하는 비교적 쉬운 길만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환자를 지지해주고, 진실을 전달해준다면, 환자가 견뎌내고,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놀라운 가치관을 가진 의사입니다. (*사족입니다만, 조현병의 경우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1년안에 재발율이 대략 70%에 달할 만큼 재발성이 높은 병입니다. 그러므로 약 끊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에요. 지금은 부작용을 줄인 좋은 약들도 개발되어 있고요.)

 

 가슴 아픈 사연이 펼쳐집니다. 테디의 예쁜 아내 돌로레스는 조울병으로 고생하다가, 자신의 세 자녀를 숨지게 했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끼는 아내를, 테디가 총으로 쏴버리고요. 그렇게 그는 중범죄자가 되어서 이 곳의 67번째 환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테디는 죄책감으로 심한 악몽을 꾸고, 아내의 환시가 보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망상 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유능하고 선량한 연방 보안관이었고, 어느 X같은 방화범이 자신의 아내를 죽이게 했다는 이야기는 결국 허구라는 점입니다. 그 점이 슬프고, 참혹하기까지 합니다. 테디처럼 이렇게 커다란 충격을 한 번에 겪게 된다면, 그리고 그 무게를 마음이 짊어지지 못하게 된다면, 뇌가 병들고 마는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가를 직시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내가 힘들 때, 정작 알콜으로 외면해 버렸던 자신. 소중한 아이들 셋을 한꺼번에 잃고, 아내까지 쏴버린 괴물같은 삶. 영화는 극후반부에 테디가 적나라하게 직면한 현실을, 고의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는 차라리 다시 병이 재발해서 보안관이라는 허구 속 인물로 착한 삶을 살고, 이 곳 셔터 아일랜드와 싸우다가 망가진 (내 본래 모습이 수술로 인해 죽더라도)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편으로 무능하고 못났던, 게다가 조현병에 더해 심한 난동이나 부리는 괴물같은 나를 인정하기가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어요.

 

 늦은 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스탭롤 올라가는 것을 마냥 바라보며 괴로웠습니다. 상쾌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까지도 잔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냉정하게 접근한다면, 인생에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며 핑계만 대고, 도망만 치고, 행복을 걷어차버린 못난 남자의 끝을 정면으로 바라본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힘든 현실을 우리는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마법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이겨내라고 다독이고 싶습니다. forget about it! 과거는 그만 잊어버려! 입니다. 그렇게 현실에 집중하면서 살 때, 우리는 빛나는 오늘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셔터 아일랜드가 충분히 매력적이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착각과 망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는 힘, 그것의 소중함을 생각나게 해주니까요. 현실은 때때로 비극적일지라도, 가끔은 좋은 일 역시 함께할 것이라 믿어가며, 열심히 살아나간다면 참 좋겠습니다. / 2017. 03. 3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