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두 번째 리뷰

시북(허지수) 2017. 4. 1. 01:33

 

 영화보기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평소 영화를 재감상 하는 일은 드문 편입니다. 어서 빨리 다양한 영화를 만나고 싶어! 라는 욕심 때문이겠지요. 물론, 훌륭한 책은 세 번씩 읽어도 좋다는 말이 있는데, 영화도 마찬가지 관점이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잘 만든 영화는 굳이 두 시간을 내어, 한 번 더 감상해도 충분히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문득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이 아픈 관계로) 조울병에 관한 지식을 약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떨까? 그래서 케이블TV에서 재시청을 결심했고, 이번에는 예쁜 티파니가 아니라, 팻과 그 가족이 병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훨씬 더 잘 보여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 영화는 조울병으로의 여행 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작품입니다. 팻은 조울병 증상으로 입원치료도 길게 받았고, 아내와는 접근금지 처분까지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약을 제 때 복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형적인 증상 몇 가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밤새도록 피로를 느끼지 않고, 책을 읽다가 감정 통제를 하지 못해 부모님을 깨우고 불같이 화를 내고, 창문을 부수고, 난동을 부립니다. 새벽에 경찰이 신고 받고 달려오기도 합니다. 그런 삶에 과연 구원이 있을까? 물음표 부호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예전 리뷰에서는 팻을 못되고 나쁜 막장 아들이라고, 폄하했었습니다. 지금은 반성합니다. 유전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가벼운 망상까지 앓았던 아픈 조울병 아들이었다는 것. 그래서 팻 어머니가 사랑으로 아들을 대하려는 모습이 저는 뒤늦게나마 무척 감동이었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팻은 계획을 세우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조언을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통해 병을 극복하려 하고, 약을 잘 먹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물론, 약을 먹으면 (약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살이 찔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멍하거나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할테지요. 그러나! 기분이 올라가는 조증은 참 위험해서 높아진 자존감으로 주변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데! 같은 현실을 잊은 착각과 망상은 문제가 되기 십상입니다. 팻은 결국 가정에서 어머니를 밀치고, 아버지와 한바탕 주먹싸움을 벌이고서야 반성하는 태도를 되찾습니다. 다행히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네요. 기분조절제, 항정신성 약물, 의사와 계속 상의하면서 양을 조절해 나가는게 원칙이라 하겠습니다. 잠깐동안 이제는 괜찮아 진 것 같다고 약 안 먹고, 재발을 반복한다면 그것도 참 비극 아니겠어요.

 

 사랑을 잘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팻 아버지도, 팻에게 다가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릴 적부터 형에게만 관심을 쏟아서, 형은 파트너 변호사가 될 만큼 잘 되었는데, 동생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니, 팻 아버지도 속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생활연기가 좋았습니다. 두 아들을 괜히 비교하지 마라고 잘라 말하고, 같이 미식축구나 보자고 이야기 합니다. 예전에 이 영화 봤을 때 (리뷰 쓸 때), 저는 스포츠 도박에 빠진 대책없는 팻 아빠라고 또 차갑게 비평한 바 있는데, 이번에 역시 반성합니다.

 

 팻 아버지가 딱히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깨부순 유리 치우자, 그리고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아픈 아들과 함께 풋볼 경기 보는 소소한 삶이라도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재평가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한바탕 주먹싸움 한 뒤에도, 어쩌면 못난(?) 작은 아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아픈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호하려 합니다. 그렇게 이웃집의 못된 인터뷰를 막아내는 모습이 충분히 멋있다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팻은 운 좋은 사람이 맞습니다. 비록 정신이 아파서 사고뭉치 였지만, 선한 부모님과 또 티파니 양을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그 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팻이 조깅하려고 길을 한참 달리는 순간, 티파니가 몇 번이고 불쑥 나타나 함께 뛰는 명장면은, 팻 어머니가 계획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팻에게 더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줌으로써, 과거의 아내를 극복해 내기를! 현명한 어머니는 바랐던 것입니다. 단지 조용히 쿠키만 굽고 있었던 게 아니에요. 아, 고마운 어머님. 팻과 티파니가 마침내 약속을 하고, 함께 댄스 연습을 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이제 댄스 경연에 출전하여서, 목표 5점을 향해 마지막 열정을 끌어올릴 때 입니다. 이 때, 불쑥 팻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티파니는 크게 당황스러워 하며, 순간적으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합니다. 좋은 친구이자, 의지할 사람, 팻 덕분에 댄스 연습의 시간도 좋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요.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열심히 노력은 다 하고, 팻이 정작 떠나가 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며, 술을 들이키는데... 또한 가짜 편지가 드러나고 욕먹을까봐 두렵기도 했을테지요. 그 복잡하고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제니퍼 로렌스가 잘 담았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팻 아버지에게 따질듯이 논리적 반박을 조목조목 하면서 댄스가 중요하다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네요.

 

 마지막 시간들은 해피엔딩의 연속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춤은 극적으로 5점을 넘기며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이 때 잠깐 비춰졌던 어머님의 환한 미소가 얼마나 눈부시던지. 작은 아들의 재기를 보며 아버지는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해줍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여인을 잡아라! 그리고 팻 역시, 이미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며, 티파니에게 달려가 입맞춤을 하는 근사하고 시원한 마무리까지 일품이었네요.

 

 리뷰를 마치며,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있습니다. 삶을 사는 방법이 두 가지래요. 하나는 아무 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지요. 팻에게 티파니는 춤 이라는 신세계를 안내해준 선생님이자, 함께 계획을 세워나갔던 기적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티파니는 자신의 단점을 넓은 마음으로 덮어주고, 이해해주려는 팻이 있어서 두 번째 인생이 새롭게 시작될 것입니다.

 

 해외 리뷰들도 이번에는 열심히 몇 개 찾아봤는데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인생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5점을 받고, 가슴 벅차게 감상했습니다." 남들이 쟤는 5점 밖에 안 되는데 뭐야 라고 비판의 날을 세울지도 모릅니다. 의아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길을 향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삶은, 분명 가슴 가득 기쁨을 안게 된다고 우리에게 멋지게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이렇게 용기 내어 두 번째 리뷰를 써놓고보니 모처럼 정말 행복해지네요. 좋은 영화입니다. (어머님의 조울병과 장애 판정 등) 제게 주어졌던 고통이라는 무겁고 힘든 시간들은, 분명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어머님을 이해하고 사랑해 나가야 함을 소중히, 그리고 단단히 배워갑니다. / 2017. 04.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