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7. 4. 21. 02:15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또 그것을 풍요롭게 누려가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선택과 포기가 따릅니다. 무엇이든 흥미롭고, 다재다능을 갖춘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인사이드 르윈이 보여주는 한 (통기타) 포크 음악가의 여정은 꿈과 희망으로 그려져야 마땅할테지요. 기타 하나,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그의 삶이 담겨 있는 노래들, 과연 행복이었을까요. 이 영화는 현실을 충분히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해서 말해줍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음악이 있지 않느냐고.

 

 뉴욕의 뮤지션 르윈은 가난해도 정말 가난합니다. 잠잘 곳이 없다보니, 이곳 저곳 사람들에게 빌붙어 지내는 충격적인 모습이 초반부터 등장합니다. 그러면서도 프로 뮤지션이라는 자부심은 갖고 있습니다. 음악 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으며, 비록 푼돈이라고는 하지만, 음악 카페에서 연주를 하면서 밥벌이만 간신히 하고 있습니다. 무명음악가의 삶이란 사실은 얼마나 매섭고 엄혹한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음악 영화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르윈에게는 사실 사연이 있습니다. 듀엣을 결성해서 함께 노래를 하고 다녔는데, 파트너가 그만 자살을 하고 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앨범들은 도통 팔리지가 않아서, 차가운 겨울 도시에서 코트 하나 제대로 장만하지 못할 처지입니다. 안타까우면서도 사실적인 대목은 유독 르윈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다른 뮤지션들도 자신의 앨범을 잔뜩 사서 재고로 떠안고 있는 슬픈 장면이 있습니다. 음악은 한 번 대히트 하면, 그동안의 고생들을 전부 만회할만큼 인생역전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근사한 일도 소수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해요.

 

 장면이 바뀌고, 음악카페의 실력파 얼짱 인기스타 진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르윈을 만나서 대뜸 불편한 심경을 드러냅니다. 나 임신했어!!! 이에 르윈은 낙태비용을 마련해 보려고, 친구에게 돈 빌려달라고 하고, 누나네에 들려 돈 이야기를 꺼내고... 음,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 황폐해 보이는, 루저 흙길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교수님의 고양이까지 떠맡게 되어서, 르윈은 하는 일마다 꼬이고 엉키는 엉망진창의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고양이가 날렵하게 도주해버리거든요.

 

 진은 진지하고 차분한 태도로 르윈에게 조언인지 폭언인지를 쏟아붓습니다. 제발 미래를 좀 생각하면서 살라는 겁니다. 르윈은 전혀 밀리지 않고, 진에게 공격합니다. 돈모아 저택에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삶이, 미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겁니다. 음악으로 계속 도전하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르윈은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먼 길을 오디션 보러 떠나게 됩니다. 심지어 그 운전 여정마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 일주일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의 힘든 인생길인지도 모릅니다. 숙고해서 평소와 다른 결단까지 내렸지만, 실행해서 부딪혀 보면 만만치 않음을 배우게 되니까 말이에요.

 

 시카고의 넓은 카페에서 마침내 유명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곡을 선보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르윈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돈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르윈을 거절하게 되고요. 아! 결국 이번에도 히치하이킹을 통해서 뉴욕으로 겨우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비통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영화는 몇 차례 르윈의 깽판치기가 등장합니다. 한 번은 교수님의 댁에서 갑자기 화를 내며, 식사자리를 망쳤고, 또 한 번은 정말 뜬금없게도 노래를 부르는 중년부인을 모함하다가 음악카페에서 내쫓기기도 합니다. 덕분에 영화 마지막에서 흠씬 두들겨 맞았네요.

 

 이 모든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노래들이 참 인상적이였습니다. 음악 카페 공연에서는, 자신 역시 목을 매달아 죽기 전에, 이 세상 구경을 잘했노라고, 산다는 것을 긍정하는 태도가 신비합니다. 시카고 공연 때에는, 아이를 꽃피우기 위해서 희생되었던 어머니를 기리는 음악을 선보입니다.

 

 어쩌면, 르윈은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를 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유능하고 성공적인 뱃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현재는 거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요양원 환자가 되어 있지요. 그래서 르윈은 아버지의 삶을 시체 같았다며 매우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나는 할 수 있는데까지 자유분방한 길을 걷겠다는 의지였지요. 물론, 마지막에는 르윈 역시도 뱃사람으로 현실적 밥벌이를 선택하려는 매우 현실적 대목을 보여줍니다. 이제 음악하기에는 지쳤다는 그의 고백은 참 가슴 아픕니다. 아, 우리가 살아가는 밥벌이의 무게감이란!

 

 마침 책을 읽으며 발견한 대목을 여기에 덧붙이면 좋겠다 싶네요. "사람과 삶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어차피 없는 정답이라면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답을 모른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라고 고민하는 대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순간의 경험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헌신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모습을 만들어가는 존재니까.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영화에 대해서, 저는 "우리가 이렇게 사는게 좋겠다" 라고 함부로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밥벌이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저는 이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어쨌든, 우리가 살아있잖아요. 그래서 시간을, 경험을 귀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의 영화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책을 발견해 기뻐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며, 길을 함께 걷고,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그렇게 사람을 아껴가며, 우리의 한 번 뿐인 인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밥벌이를 우선해도 되고, 하고 싶은 일을 우선 해도 됩니다. 정답은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즐겁게 견뎌가며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음을 응원하게 됩니다. / 2017. 04. 2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