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Rolling Home with a Bull,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7. 4. 22. 04:06

 

 이번에 소개할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임순례 감독님의 말을 빌리자면,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천천히 라는 주문을 걸어줄 즐거운 영화입니다. 우리는 정작 스스로의 마음도 잘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영화에서는 소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감정을 하나씩 꺼내고, 알아가는 과정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내용에는 약간의 불교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그래서 조금은 어렵기도 하고, 생각을 요구하게 됩니다. 저는 분석적인 접근을 잘 할 줄도 모르고, 그런 파고듬의 블로그도 아니기 때문에, 소소하게 느낀 바를 담담히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영화 포스터대로, 이 소가 지랄(?)맞은 주인과 함께 여행하고 있음에도, 사랑받고 있어서 바닷가 경치를 감상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소가 여행 도중에 아파하자, 수의사가 등장해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의 몸에서 (정확히는 코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피곤해서 그렇지, 푹 쉬면 나아질꺼야. 억지로 무엇인가를 시키지 말고, 소가 하자는대로, 쉬엄쉬엄 다뤄준다면 금방 괜찮아 질걸세.

 

 저는 이 대목에서, 실은 우리에게 전달을 하는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달리고만 있지는 않은지요? 코피 쏟는 인생만 있는게 아니라네! 온천도 가보고, 구경도 해보고, 시프트 다운을 한다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소에 대한 관점이 세 번 정도 변하게 됩니다. 당장 팔아야 돼, 아 소의 울음을 듣고 있으니 팔지 못하겠어, 그리고 함께 여행하겠어. 미움에서 동정으로, 동정에서 가족으로. 시간은 이처럼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관객수 1만6천의 다소 무명영화 라지만, 우연히 FHD로 보게 되어서 참 좋았습니다. 두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선호는 비혼인데다가,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사는게 불만이 많습니다. 그래도 시인이 되겠다고 했지만, 시는 매번 낙선이고, 소의 똥을 치우고 있자니,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녁늦게 작가모임에 갔다가 선배와 시비를 붙는 등, 불편한 마음이 종종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변에 의지할 친구도 없었기에, 개한테 프랑스 시를 읊어주는 장면은... 뭐랄까 이래저래 씁쓸합니다. 물론, 이렇게라도 하니 자기 위로가 되긴 하는데, 좀 한심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개가 조금 듣다가 개무시 하더니, 졸기까지 합니다. 그래, 잠이나 자자.

 

 다음 날, 숙취로 늦게 깬 선호는, 노년의 아버지에게 소만도 못한 놈이라고, 핀잔을 듣게 되고, 이에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던 선호가 날 잡아 트럭에 소를 싣고 길을 나서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로드무비의 궤도로 올라갑니다. 이제 누구를 만날 것인가, 어떤 에피소드가 있을 것인가, 이 점이 관전포인트가 되겠지요. 전화가 걸려오는데, 한참이나 말이 없습니다. 망설임 끝에, 7년 만에 만나는 옛 애인 현수의 목소리. 현수는 남편이 사고사 했다며, 선호를 부릅니다. 현수를 외면할 수 없어서, 장례식 장을 찾아 가보지만 정말이지 텅 빈 장례식 장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재회할 뿐이었지요.

 

 선호는 현수가 자기를 버리고 절친과 결혼해 버린 배신감으로 괴로웠다고 쏘아붙입니다. 이후엔 제대로 연애도 못했었다고 합니다. 서두에 저는 인간의 진짜 마음은 알기가 의외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선호가 딱 그랬습니다. 나중에야 현수에게 다시 진심을 표현하는데, 오래도록 그리워했었다고 하네요. 사실은 현수를 향한 애정이 그만큼이나 컸었던 것 같습니다.

 

 미웠지만, 그래도 보고 싶고, 쉽게 지울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 아닐까요. 칼로 두부 자르듯이 싹뚝 정리되는 관계가 아니고, 인간관계는 때로는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엉켜있기도 합니다. 저는 서로 간에 경계선을 잘 지키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조금은 깊숙한 관계가 있기에, 세상을 버텨낼 힘이 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리 많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는 지금 과부가 된 현수에게는 그렇게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 계속 해서 휴대폰 문자 폭탄(?)을 보내고, 소의 안부를 물으며 선호 곁에 등장하게 됩니다.

 

 심지어 소는 눈치가 남달라서, 팔리는 그 순간에 울어댑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질 수 없었던 선호는 철회를 하게 되었고, 다시 고향으로 소를 데리고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수가 함께 였지요. 현수는 매우 독특한 대사를 들려줍니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허전하지가 않아, 소 때문인가?" 뭐, 사실은 사고사를 당한 남편과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혹자는 배우자 갈아타기(?)가 너무 빠른 현수를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뒷 대사들이 더 강렬합니다. "난 이제 가야할 집이 없는데..." 현수는 그만큼 힘들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고, 선호가 마침내 함께해 주자, 다행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소는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면서 영화는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 됩니다. 도중에 절이 불타는 의문스러운(?) 장면이 있는데, 감히 소견을 덧붙인다면, 거기에서도 스님은 이 절이 불에 타게 된다면, 다른 절터에 가서 재기할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심지어 회색 잿더미 속에서도 꽃은 예쁘게 피어난다는 것이지요. 꼭 선문답 같고, 인생 비유 같습니다. 여기가 뜻대로 안 되어 불타버린다고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부지런하게 새로운 과정을 향해 오늘을 살아가라는 희망의 격언이겠지요.

 

 선호는 또 다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짓겠지만, 소를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챙겨주는 새로운 연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를 쓸 것입니다. 세상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대로, 가장 큰 기쁨 역시 관계에서 오는 것이었고, 슬픔도 관계에서 오는 것이었다는 결론입니다. 시 한 편 맘 편히 쓸 수 없던 자신만의 세계가 고통이었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농사를 경험하는 일이 즐거움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혁명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 입니다.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충분히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 2017. 04. 2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