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재심 (New Trial, 2016) 리뷰

시북(허지수) 2017. 5. 2. 03:23

 

 영화 재심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제일 안타깝고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일명 약촌 오거리 사건)이 아직 얼마 되지 않은 2000년에 일어난 실화 사건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 약자가 누명을 쓰고, 범인으로 내몰려서, 가장 황금 같은 청춘의 세월, 그것도 십여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것에... 탄식이 나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 정도로 비겁하고, 망가져 있구나를 체감하게 됩니다. 영화 속 경비 아저씨의 일갈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 같았습니다. "요즘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라며? 사실 따지고보면 지옥이 더 나아, 거기는 공평하게 나쁜 놈들은 죄를 받으니까, 그런데 여기 헬조선에서는 나쁜 놈들이 도리어 버젓이 큰 소리를 치고 있거든."

 

 영화 이야기로 출발해 봅니다 - 돈도 없고, 빽도 없이, 가정사도 생활고로 화목하지 않은 가운데, 주인공 변호사 준영은, 거대 로펌에 들어가 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어렵게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해서, 배부르고 등따스한 것만은 아닌가 보아요. 준영은 로펌에서 무료 변론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썩 내키지 않습니다. 시간만 때워보려고 아등바등이고, 사진을 홈페이지에 실어야 한다는데, 웃음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 썩은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현우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입니다. 현우와 직접 만나자 마자, 녀석은 대뜸 욕설을 내뱉는데요. 새로운 사람을 거의 혐오하다시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때문에 입었던 상처로, 이미 마음이 폐인화 되었던 것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영화는 10년 전, 약촌 오거리의 사건과, 현재의 현우 모습을 넘나들면서 사건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추리가 들어갈 요소는 다행히(?) 없습니다.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현우는 그 자리에 있었고, 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어딘가로 끌려가 두들겨 맞으며 억지 진술을 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현우의 옷을 벗기더니, 전혀 단 하나의 망설임 없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형사의 모습은 실로 끔찍합니다.

 

 제일 답답했던 것은, 약촌 오거리 사건의 진범이 몇 년 후에 나타나게 되는데요. 이 때에도, 검찰과 경찰이 합작해서 진범을 정신병에 의한 허위진술로 유도해버리며,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영화 상이라지만, 정말 질 나쁜 인간들입니다. 괜히 재수사가 들어가게 되면, 본인에게 불리해질 것이 뻔해지니까, 잔머리를 굴려서 위기를 모면해버리고, 그 이후로는 오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서 퇴직한, 의로운 경비원 아저씨는 이 나라가 지옥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호사 준영은, 현우를 설득해서, 다시 재심을 받아서 살인자의 누명을 벗고 당당히 세상을 살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벽에 자세한 약도를 그리고, 포스트잇으로 핵심 내용들을 세세하게 그려나가면서, 허점을 집요하게 탐구해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록에 근거해, 전화 통화 후, 1-2분 안에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 없음을 제대로 밝혀내게 되었지요. 처음부터 현우는 잘못한 게 없었고, 완전히 조작된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더 끈질기고 집요한 것은, 백철기로 대표되는 악당 형사팀들입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을 온갖 수단으로 방해하고, 수소문 끝에 어렵게 연락이 닿은 증인마저도 꼬투리를 잡아서 끌고 가버립니다. 이에 맹렬한 분노를 느끼는 현우! 영화는 후반부로 달리면서 현우가 너희들이 법을 가지고 놀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범법자 몰이 해나간다면 - 나도 더 이상 바보처럼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전개로 내달립니다. 칼을 다시 꺼내들고, 내가 다시 감옥 가더라도, 저 괴물 백철기를 없애버리겠다는 의지가 단호했습니다. 그대로 복수를 했다면, 그 나름대로 청불 등급의 잔혹 영화가 되었을테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입니다.

 

 준영이 등장해,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영화는 마지막 순간 현우가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됨을 관객에게 친절히 알려주며 (제법 빠르게) 막을 내립니다. 이제 1억 7천만원이라는 고액의 빚도 갚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고, 현우가 사회에서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게 되어서 특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까, 사람은 어떤 슬픔을 딛고서라도, 살아나가는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론인데, 그러므로 약자라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억울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낮은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 많은, 인간관계망이 잘 구축되어진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기대어 연대할 수 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들은 줄어들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성실하고 좋은 경찰들이 인정 받고, 일부 변질되어 버린 나쁜 경찰들은 발각되면, 옷 벗게 되는 더 투명한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잘못과 악행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언젠가는 꼭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을 여전히 믿습니다. / 2017. 05.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