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접하는 기쁨, 이동진 선생님이 깔끔하고 명료하게 평을 남겨주셨네요. 영화 한밤의 아이들은 140분이 조금 넘는 긴 호흡의 영화이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포스터에는 1,001명의 초능력 아이들을 테마로 하고 있어서, 자칫 초능력 영화로 오인될 소지가 약간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오히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입니다. 내가 독특한 능력을 가졌다고 한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짐지어진 운명은 피하기 어려운 것일까, 영화를 보시면 다양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근래 보았던 전쟁 영화 퓨리의 대사도 겹쳐보였습니다. 이상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역사는 폭력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싸움 속에 뜻밖의 아까운 사람들이 여럿 목숨을 잃기도 하지요.

 

 인도가 독립되는 순간 초능력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각자가 가진 능력들이 다르며,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태어날수록 능력의 힘이 더 세다고 하네요. 주인공 살림은 청소년기가 되어서 능력을 깨닫게 되는데, 초능력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리더의 별"을 타고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살림의 라이벌 격인 시바라는 아이는 싸움에 아주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 사람 - 살림은 순수한 조율자로, 또 한 사람 - 시바는 현실의 파이터로 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음이 일찍부터 밝혀집니다. 원래는 시바가 부잣집에서 살아가야 했으며, 살림이 가난한 거리음악가의 아이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지요. 그러나 간호사의 부적절한 용기발휘로 두 아이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고 만 것입니다. 훗날 간호사 이자 보모는 살림의 가족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진심으로 사죄하게 됩니다. 살림이 지금 부잣집에 있을 아이가 아니라니! 가능성을 그렇게 암시하면서 공들여 키워왔는데! 살림의 아버지는 머리 끝까지 화가나서, 아예 아이를 없애버리려고 하지만, 어머니가 가로 막지요. 핏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키워온 아이도 분명 소중한 자식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이 관점은 영화 내내 굳건한 태도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무시 받은 살림은, 이웃 나라 파키스탄에 있는 이모네로 활동을 옮기게 되었고, 이 곳에서 생활하며 이모부이자 장군인 줄피카르의 마음에 쏙 들게 됩니다. 그리고 줄피카르 장군은 동료 군부세력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역사는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인도의 동쪽 -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해 버렸으며, 줄피카르 장군은 독립을 인정해주며 서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전쟁과 쿠데타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살림과 시바의 운명 역시 이 흐름 속에 저절로 휘말립니다. 마치 거센 격류 속에 흔들리는 풀들과 같았습니다. 살림은 가족들이 전쟁 통에 대거 사망하는 참사를 겪으며 순식간에 고아로 처지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 크게 뇌를 다쳐 수 년간 뇌사상태에 빠져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동파키스탄 독립 전쟁 현장으로 파견되어져 나갔습니다. 전쟁이 금방 끝났기에 망정이지, 만약 안 그랬으면 삶의 의미와 총명함까지 사고로 잃어버렸던 0점 군인 청년 살림은 이 곳에서 홀로 목숨을 아깝게 잃었을 것만 같습니다.

 

 한편, 위기 속에서 특유의 강인함을 내세워서 승승 장구 군인으로 실력발휘를 하던 시바는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은 살림에게 가로채기 당해서, 가난 속에서 굶주림을 참아가며 컸고, 그 고난 등을 마침내 헤쳐가며 자리를 잡았는가 싶었지만,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각각 자리를 잡고 평화시대로 접어들게 되자, 군부의 인물이었던 시바는 이제 나라에 쫓기는 수배자로서 무척 아이러니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러다 사고사를 당하고 말지요. 누구보다 싸움 잘하는 초능력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전혀 중요한 덕목이 아님을 영화를 통해 섬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기억이 상실되었던 살림은 다행스럽게, 마술 능력을 가진 아가씨 파르바티를 만나게 되면서 삶이 회복되어 나갑니다. 그리고 비록 핏줄은 다르지만, 아담이라는 아이도 얻게 되었지요. 어쩌면 살림에게도 산다는 것은 가혹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러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지만, 이를 고백했다가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라이벌 능력자인 시바에게 붙잡혀서 각종 구타와 고문도 당했습니다. 삶의 거처가 강제 철거 되면서 그나마 정을 나누었던 파르바티 아내도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삶은,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은, 사랑이 있고, 아들이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영화는 힘주어 강조합니다.

 

 고된 인생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사랑 받고 있으며,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 힘든 기억만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렇게 희망이 담긴 엔딩이 인상적입니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가요. 오늘이 힘들게만 느껴지는가요. 저는 마무리를 괴테의 명구로 마치고자 합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극중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고, 힘든 현실을 견디며 그래도 노력해 나가길 권해봅니다. / 2017. 05. 25.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7.05.25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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