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요한복음14:11-15)

 

젊은 시절 우리는 혈기에 차고 희망에 차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세우고, 공을 세우며, 세상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불세출의 영웅도 될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 우리의 신념으로 안되는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피곤하거나 아픈 경우도 있지만 병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치 무쇠덩이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앞에는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이 교만하고 어리석었던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살아가며 불가능한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겪으면서 우리의 믿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약해 집니다. 새삼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것보다도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점점 쪼그라들고 약화되는 겁니다.

 

우리가 힘들어 질 때, 우리가 지칠 때, 마침내 우리가 낙담할 때 그래서 포기할 때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회의하며 반문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나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며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몇 번이고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타까워합니다. 이미 우리가 한번 혹은 여러번 주의 은혜를 체험했기에 완전히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 하나님의 또다른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하는데 그는 잠잠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급합니다. 답답합니다.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볼 때 잠잠한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거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완성하기위해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이미 준비하셨고 그 섭리의 도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는 이미 태동해서 역사하고 있음을 우리는 또한 믿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포기하지 말 일입니다. 우리가 미리 포기하게 되면 우리 하나님 역시 우리를 포기하십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이며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며 우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인생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라고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1.나를 믿는 자는
주께서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 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을 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랍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은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난 후에 지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주를 믿는 것에 어떤 특권이 있고 또 너희가 비록 눈으로 나를 보지는 못해도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변함없이 내가 너희의 간구하는 바를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겁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습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는 잘 믿지 않습니다. 믿어야지 믿어야지 하면서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한번 눈으로 보는 것에 영 못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지상에 스승 없이 남겨질 제자들, 믿음이 영 못 미더운 제자들이 못내 불쌍해서 그들에게 성도의 특권과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이적 기사를 접하면서 주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간절히 필요합니까?
의술이 발달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절망을 느끼고 주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그 능력이 간절히 필요한 절대절명의 상황과 마주칩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을 믿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합니다. 막 우리의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주님이 곁에 계시지 않아서 안된다고 한탄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더 믿으십시오. 우리 주님이 오늘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그래요,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다는 반증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만 하면 주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우리도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한다면 주가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는 천상에서도 우리의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왜냐면 주님은 하나님과 함게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려는 준비가 항상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에게 집중하기보단 세상에 집중해서 항상 주님과의 은밀한 중에 이루어지는 영교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이 21세기에 성경에 나온 기적을 맛볼 것입니다.

 

저는 지금 기적에의 예감으로 가슴 설레이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주쯤에 기적에의 보고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고 아버지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시옵소서. 그래서 이 불쌍한 자에게 위로를 주시고 아버지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중풍이니 귀신들림이니 치매니 암이니 하는 이런 각종 질병들을 낫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입니까?
앞을 볼 수 없다? 들을 수 없다? 걷지 못한다? 이런 것을 우리가 선천적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립니다. 다리가 불편해서 서거나 걷지 못하는 이들 역시 아예 포기합니다. 귀신이 들렸다? 조현병이다? 인간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평생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고 그들로 하여금 낫게 하셨습니다. 왜냐면 그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체가 어떻게 하면 고장이 나고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를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인체의 신비지만 주님의 입장에서는 전혀 신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장난 부분을 고치는 것도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을 직접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주님이 더 이상 곁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의 사명을 등한시 하지 말고 너희가 직접 그 일을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도저히 안됩니다”
“저는 불가능이에요”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주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가 더 이상 유대 땅에 계시지 않기에 그는 오히려 전 세계인의 기도를 실시간으로 들어 응답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완전한 신이 되셨기에 육체가 가지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놀라운 능력은 성령님의 그 위대한 능력은 오늘도 우리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복음의 확장성을 보십니까? 나만 병고치는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제자인 너희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단지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기 위한 조건이라면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를, 그 위대하신 사랑의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뭘 믿습니까?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불가능이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하신 주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지리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말씀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주님의 고별설교입니다. 주님은 그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켰지만 아직도 그들의 부족함을 보시고는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원래 스승은 제자를 파송할 때 걱정이 많습니다. 저들이 과연 잘 해낼 것인가?
물론 우리 주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이렇게 걱정하신게 아닙니다. 다만 스승이 너무나 정이 많아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과연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각종 이적을 행했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쳐서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에 주님의 교회가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과연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지 우리가 과연 진실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최후의 설교 자리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사실상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허언이 아닙니다.

 

‘나를 믿는다면 내가 한 일을 너희도 하겠고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겠다‘

 

제자들만 두고 떠나려니까 제자들이 너무 불쌍해서 우리 주님은 너희들도 내가 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가 어디서든 언제나 내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내가 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주님의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주님의 사랑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효력을 가집니다. 주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주님의 그 놀라운 역사가 오늘 우리 눈앞에서 다시 재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하신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우리 주님의 하신 사역에 대해서 그 이적과 기사를 제대로 믿지 않아서 일 지도 모릅니다. 주님에게 불가능이 없었지요? 이제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불가능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항상 조급합니다. 뭐든지 빨리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급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마침내는 낙담하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배신하기 전에 먼저 포기하고 버리시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잘 보면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믿는 자는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다음에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러니까 주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주님이 행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상에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처럼 보이고 부활 후 승천하셔서 제자들의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아도 결코 멀리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너희들과 함께 있는것과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더구나 너희들이 내가 시킨 일을 하다가 정 안되겠으면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해주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냐면 아버지께서 아들이 영광을 받도록 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랍니다. 어려운 말은 치우고 다시 살펴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곧 주님과 함께 하신다는 말이고 하나님이 곧 주님이라는 말이지요. 이 말은 빌립이 하나님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나를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말씀을 하는 중에 나오신 겁니다.

 

요즘이야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전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당시만 해도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고 하나님을 감히 참칭한다고 신성모독죄로 죽이려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한가지 를 더 말씀하십니다.
뭡니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다 행하리니” 그러니까 내 이름으로 구하기만 한다면 내가 다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므로 충분히 들어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적에 목말라있는 성도들에게 권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병나음을 선포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도록 선포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나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자 우리가 여기에 조금 살을 붙입시다. 하나님 안에 주님이 거하고 주님 안에 내가 거하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여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나의 계명을 지키라” 주님을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해서는 안되고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을 믿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 주님이 주신 계명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하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명령, 즉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진전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 다른 보혜사라고 했으니 이미 보혜사가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겠습니까? 그래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보혜사란 뜻은 중재자, 변호사라는 뜻이지요. 이제 주님이 가시면 보혜사가 없어 지니까 대신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보혜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주께서 우리를 떠나신것과는 달리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성령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받을 수 없지만 우리는 성령을 알고 우리와 함께 계신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거하신답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거하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룩하신 성령님은 더러운 곳에 거하실 수 없으므로 당연하게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럴려고 하면 죄를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죄는 뭡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주의 계명을 어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지킨다면,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산다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거하실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능히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지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도함으로 주님이 하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주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입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주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것은 곧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은 엄위하신 하나님이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도록 오래참고 기회를 준다는 의미지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시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죄를 저질러도 계속 놔 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포기고 방기입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그냥 놔두는 겁니다. 그냥 놔뒀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싸그리 지옥불에 넣어버리면 되니까. 그걸 주님의 사랑으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서 우리 주님의 나에 대한 태도를 체크해야 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뭐냐면 “십일조를 일억이나 냈는데 본전도 못찾았는데 내가 예수를 안믿으니까 그때부터 일통이 터지더라”

 

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무지한 이야기입니까? 우리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십일조를 감사의 헌금이 아니라 투자로 본 겁니다. 내가 이만큼 하니까 당신도 이만큼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장사꾼으로 대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안믿으니까 일통이 터진다고요?
사탄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참 좋겠습니다. 사탄의 특징은 항상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는 것이므로 그의 결국은 멸망이요 지옥불이요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일시적인 형통으로 교만하여 넘치지 않고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어려움에 의기소침하여 낙담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는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는 결코 나를 이대로 놔두지 않을 것임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세상살이에 치여서 두려워하거나 가슴떨며 있는 성도들에게 감히 고합니다. 주님을 믿으시고 그를 사랑하시며 그의 계명을 지키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이름으로 기도하도록 하셨고 자기를 믿도록 하셨고 자기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왜냐고요?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여깃 주님이 하셨던 그 놀라운 일을 하겠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적이 일어남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불가능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인간들이 안된다 안된다 하는 일도 믿음이 가능케 할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낼 것임을 믿습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오셔서 불신과 회의와 절망에 그리고 분노에 떠는 우리들을 깨우치시고 하나님의 장중의 손에 붙드셔서 주님의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의 산 증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받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성령님의 그 놀라운 힘을 이제 저들앞에 보여 주시고 하나님 홀로 영광받으시옵소서. 아멘 아멘.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7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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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하나님이 이루어 가셨던 놀라운 기적의 스토리에 우리가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선언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다는 것이네요. 그것은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우선되는 삶에서, 하나님이 우선되는 삶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때가 되면 은혜로움을 부어주실 것이기 때문이지요.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각박해지고 점점 이기적으로 살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런 조짐이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몇 명이니 물었더니, 수십 년 전에는 3명 정도를 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몇 명? 무려 0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SNS나 휴대폰에 매달리고, 혼밥에 혼술을 먹으며, 겨우겨우 버텨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에게 선하게 대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이 아플 때, 달려가고, 이웃이 힘들 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나눠주면 천국에서 기쁨으로 돌려받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힘차게 밥벌이에 뛰어드는 우리, 힘낼 수 있기를. / 2017. 06. 시북

 

by 시북 2017.06.10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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