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4:1-6)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요? 지금 보시다시피 가장 어려울 때 하나님의 기적을 보쟎아요.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쟎아요. 우리 하나님만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역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쟎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렇게나 든든한 것입니다. 지금 그 병원, 베트남에 불교도들이 참 많다고 하는데 그 병원에서 기적이라고, 기적이라고 입소문이 났답니다. 왜냐면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은 겁니다.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특별히 경외한다면 그 역시 우리를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고 우리를 아끼실 것이요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일러 복되다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천벌을 받을거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냐면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잠잠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간세상에 관심을 끊으신 듯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생각에 천벌을 내릴 주체가 더 이상 없어 진 겁니다. 인간세상을 살피고 심판하고 조율하는 심판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천벌이 무섭지 않느냐?”나 “하늘도 무심하시지”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 폐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잘먹고 잘사는 불합리한 일을 보면서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외면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인간들은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절망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럼 왜 오랫동안, 그 오랜 세월동안 우리네 조상들은 ‘천벌’이니 ‘하늘이 굽어 살핀다’는 말을 해왔지요? ‘하늘이 무심치 않다’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극히 최근을 제외한 인류상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그런 말을 사용한 것은 살면서 몸으로 하늘이 존재함을 체득했기 때문에 경험상 알고 있는 사실이 자연적으로 입으로 나온 것입니다.

 

지난 수천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 속에 단단히 인이 박혔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있는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비추어 보면 정말 이해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존재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신이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계셨는데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그러면 왜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미국 돈에 보면 IN GOD WE TRUST라는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여기서 in은 존재를 나타내는 in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는다. 또는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미국을 세운 선조들은 자기들의 신앙이 후세에도 전해지기를 바랐고 그리고 나라전체에 영원히 펴지도록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돈에다가 이 글귀를 새겨둔 겁니다. 물론 이 글이 언제까지 돈에 쓰여 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문학작품 고문에 보면 ‘상천하지에 하ᄂᆞ님하 아ᄅᆞ쇼셔’이런 식의 글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뜨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천년동안 우리 조상들은 이런 말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식의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1세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까? 21세기에 성령의 역사를 갈구하는 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자입니까? 그럼 지금도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불학무식에다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에다 고집쟁이 외톨이 왕따입니까? 비논리적이며 미신에 찌든 사이코입니까? 그래서 지금도 세상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믿습니까?

 

제가 요즘 드는 생각은 어쩌면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어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사교를 위해서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그냥 옛날부터 다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교인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시대에 뒤떨어져서 하나님을 믿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모르는 불학무식쟁이라서 하나님을 믿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시대를 초월하신 분이시고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 눈앞에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단코 우리가 시대에 뒤쳐진게 아닙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하지 않는 관점’이란 말은 풀러의 표어입니다. 물론 정작 풀러도 잡탕이 되어가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네 삶에서 우리네 신앙생활에서 이런 식의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말 유별나게도 믿는다“라는 말을 듣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유별나게 섬기면 그도 역시 우리를 유별나게 사랑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이건 절대로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성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려고 하면 신념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세상의 도전을 이겨내기 어려울 겁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부인해도 나는 성령께서 하시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래요, 그 기적을 믿는이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미 저는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신비를 보고 있습니다.

 

사실 4장은 3장에 연결된 후반부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3장의 후반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3:14에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14절의 ’너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익하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여호와를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다 사탄이 하는 말이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장차 영멸에 처해질 하루살이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내일이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내세‘니 ’영혼‘이니 가 전혀 관심 밖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막살고 그걸로 끝을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그분의 보상을 잊고 그분이 최후의 날에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잊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에게 복을 주지 않으셔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악인이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의감이 너무 투철해서 악인이 설치는 꼴을 못봅니다. 하늘이 존재한다면 결코 그럴 리가 없어! 그게 바로 하늘도 무심하시지?

 

천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자들이 잘살고 잘되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애쓰고 힘쓴 우리들만 황당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악인의 형통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그들의 날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여호와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려고 때가 차기까지 기다라고 계신다는 사실이 여기 나와 있지 않나요?

 

그리고 그날이 되면 지푸라기처럼 용광로 불에 타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나요? 하나님은 너무 오래 유예기간을 두셔서 악인의 형통이 우리가 볼 때 너무 긴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때는 절대로 쉬지 않고 차츰 차츰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심판하고 의인을 복주기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역사의 시간을 돌리고 계십니다.

 

1.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1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나옵니다.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용광로 불같은 날이 오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살라 버린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떠드는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누가 악을 행하며 교만하며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지를 다 듣고 계시지만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공평하게 주기위해서 정해진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아니 계시다라고 하늘을 원망하며 한하고 있습니다.

 

3:17에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그들을 아끼리니”
3:18에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너무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저들이 심판받지 않음에 대해서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때를 세워두고 지금 잠잠히 계시는 것 같지만 천군천사들을 동원하여 싹 쓸어버리려고 준비중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됩니다. 일단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드시면 그 수위가 너무나 높아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도 없고 견뎌 낼 수도 없을 정도로 엄하게 징치하십니다.

 

만일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는 그때까지 악인이 회개하면 그건 그의 복이요 이 세상에도 유익이 될 것이지만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패망하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 내용에 이어서 본문을 이해하면 이렇습니다. 의인, 하나님을 섬기는 이를 하나님이 아끼신다는 표현 다음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악을 저지르는 이들을 우리 하나님은 용광로에 던져 넣은 지푸라기처럼 살라 버리신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믿고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길로 다니며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때로 성도들 가운데 이런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나만 너무 별나게 믿는 것은 아닐까?’ 천만에요, 우리 하나님은 자기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자들에게는 유별나게 열심히 믿는 믿음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우리의 기도로 세상을 움직이기를 원한다면 불가능에 도전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현대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기적을 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유달리 별나게 믿어야만 합니다.

 

의인의 기도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압니다. 우리가 바로 그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 상달된 기도로 세상을 움직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되면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며 의인과 악인이 어떻게 다른 대우를 받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날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때 ‘용광로 불’이란 무엇이든 삼키고 살라 버릴 듯한 무시무시하고 이글거리는 불을 말합니다. 그리고 용광로에는 쇠를 녹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나무토막도 아니고 지푸라기를 넣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탈거리가 아예 안되는 거지요. 바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악인의 비참한 말로를 여실히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그렇게 되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날은 지금도 쉬지 않고 카운트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라도 내 행동이 방자해지려고 할 때 혹여 라도 내가 변하려고 할 때 내가 초심을 잃으려고 할 때 여호와의 날, 용광로 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날에 용광로에 들어가는 자는 여기서 세 종류가 있습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 그리고 여호와를 시험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앞에서도 나온바가 있습니다. 3:15에 보면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도 결코 좋은게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한 것은 십일조를 바치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나 아닌가 시험하라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는 교만한자와 악을 행하는 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가 그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면 큰일날 뻔 했네” 이게 바로 화를 면한다 하노라 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제대로 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복이 임합니다. 지금 우리는 기적을 목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 큰 기적도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끊지 말 일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모르고 이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나님 앞에 까불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하나님은 얼마나 웃고 계실까요? 하루살이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범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맞닥뜨린다고 해도 범이 하루살이를 신경도 안 쓸 겁니다. 귀찮은 날파리 정도에 범이 살기를 뿌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범이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악인이 지금 당장 하나님의 심판을 맞닥뜨리지 않아서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가 그렇게 자고하고 헛소리를 하는 동안에도 심판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겁니다.

 

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반면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는 자에게는 엄청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껏 살지도 못하고 없는 시간과 물질을 쪼개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힘들었지요? 공의를 지킨다고 너무 슬펐나요? 이제 그걸 다 보상하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우리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악인에게는 용광로 불이 기다리지만 의인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라고 하십니다. 공의로운 해가 떠오른다는 표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는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전혀 오염되지 않고 새롭게 된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새롭고도 복된 새날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더 이상의 아픔도 슬픔도 비통도 없고 억울함도 없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땅에서 그 은총을 골고루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 고통들을 모두 치료받는 겁니다. 영육간에 모든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고 우리가 이제껏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힘과 쾌적한 상태가 시작되는 겁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공의가 이 세상을 다스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위로하실 것이며 우리의 마음에 흡족하고도 넘치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불평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로운 이는 ‘공의로운 해’에게서 나오는 ‘치료의 광선’을 받아서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 지고 그래서 더 이상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외양간을 박차고 나오듯이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마음껏 훨훨 날게 될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그동안 숨죽이며 힘들어 했습니까? 하나님의 도움과 간구를 바라며 혹여라도 잘못될까봐 숨도 제대로 못쉬고 얼마나 힘들어 하며 울었나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을 받아서 몸과 마음이 더 없이 완벽하게 치유되고 복구되어서 마음껏 뛰놀게 될 것입니다. 약동하는 힘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보는 부모들의 얼굴에 더없이 통쾌한 웃음이 지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만큼 우리 하나님의 의인에 대한 보상은 더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 일입니다.

 

그런데 송아지처럼 뛰노는 것만으로 그치는게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지금 당장 눈앞에서 형통한 것 같이 자고한 악인들을 이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이기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흔적도 없어 질거라는 겁니다. 악인들의 압제에 눌려 의인들이 고통 받았던 그 모든 모양도 찾을 수 없게 악인들이 재처럼 변해서 그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겁니다. 그들의 권세와 그들의 부가 더 이상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흔적도 남지 않을 거라는 걸 주께서 선포하신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본문에서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승리를 대비시켜서 이렇게 극명하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낙담하지 마십시오. 기다리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의 날은 결코 머지 않았고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공의의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을 받아서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고 완전해 져서 마음껏 넓은 세상에서 주님의 은총아래에서 걱정과 근심없이 뛰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단하지 말고 계속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이 비췰 때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7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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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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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여름이라 집안에 모기가 극성입니다. 그래서 전기로 작동하는 모기장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불빛이 들어오는 모기장 안으로 모기가 날아들더니, 전기에 닿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구조입니다. 이런 류의 덫은 예로부터 있어왔나 봅니다. 어느 철학자는 파리를 잡는 통을 보고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파리통 역시 입구는 있으나, 한 번 들어가고선 출구를 찾지 못해서 사망하고 말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볼 때, 그 관점에서는 - 인간이 때로는 어리석게 죽음을 향해, 또 죄를 향해 달려갈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달콤해 보이고 끌리기도 할테고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죄악은, 잘못된 행동은, 탐욕은, 끝이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는 거예요. 마치 마약과 같습니다. 바르게 살아가기란, 기도하며 살아가기란, 집중력이 필요하고, 의지력이 필요하지만, 대충 아무렇게나 살기란 간단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소중한 삶을 혹여 스스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바로 지금 STOP, 아니오를 외치며,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해 보시길 응원합니다. / 2017. 06. 시북

 

by 시북 2017.06.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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