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썸딩 더 로드 메이드 (Something The Lord Made, 2004) 리뷰

시북(허지수) 2017. 8. 15. 01:35

 

 썸딩 더 로드 메이드, Daum 영화에서는 제목이 간단하게 "신의 손"으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IMDB에서 평점 8.3 이라는 준수한 점수를 얻고 있습니다. 주말 늦은 밤, IPTV 영화를 찾다가 미국 의학 영화 라는데 확 끌려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느끼는 바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실력,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하는 모습에서, 미국이 선진국인 이유를 새삼 알게 됩니다. 물론, 2017년인 지금도 미국에선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대에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고졸 흑인임에도 하얀 가운을 당당히 입고 다니며, 도전적이고 오만한(!) 의학박사 블레이락의 명석한 조수로 일하던 남자 비비안의 이야기인데요. 갈등도 담겨 있고, 좌절도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긴 세월을 집중하면서 보내는 삶이란,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남들의 칭찬과 인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사실은 정말 귀중한 일임을 배우게 되는 소중한 영화 입니다. 그 긴 시간, 얼마나 많은 태클이 있었을까요. 그럴 때 마다, 자존감을 굳게 지키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흑인이 아닙니다. 라고 단호히 이야기 합니다. 블레이락 박사도 조수를 지킬 때는, 지켜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훌륭하고 명망 높은 백인 외과의사 블레이락은 어쩌면 비비안 조수를 이용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비안도 자신이 특별한 조수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봉급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학교 내에서 (고졸 외에는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으므로) 연구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조수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기도 합니다. 블레이락 박사는 여러가지 복잡한 행정절차를 수정해가면서까지, 비비안을 곁에 두려고 합니다. 내 처지를 역지사지로 이해해주고, 내 봉급을 듬뿍 올려주는 사람. 그렇게 하여 블레이락과 비비안은 사실상의 동업자 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박사의 노예도 아니고, 그만 둬버리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 비비안의 고집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블레이락 박사는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옮긴 이후로 더욱 바빠집니다. 강의를 해야 하고, 호출은 계속 울리고, 연구를 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집에 밤 11시 이전에 들어가는 것이 23일 만이라고 합니다. 딸은 거실에서 자고 있는데, 환자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아빠 얼굴 좀 보려고요. 그런 어려운 여건에서 이제 연구는 비비안의 몫이 됩니다. 블레이락의 지원과 신뢰, 그리고 비비안의 계속 되는 노력으로, 이 두 사람은 마침내 심장에 대한 통찰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심장쪽 혈관 흐름에 이상이 생겨서 온몸이 파랗게 변해가는 이른바 청색증 아기. 치사율은 무려 100퍼센트.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불치병. 이 어려운 난제에, 블레이락과 비비안이 세계 최초로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금기. 심장은 손대어선 안 된다. 바로 여기에 미국 의학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집도에 나섭니다. 금기는 마침내 깨어지고, 오늘날 심장 관련 수술은 백만건 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흑인민권운동이 펼쳐지고, 비비안은 어느새, 존스홉킨스 대학의 연구실 한 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전문가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미국사회의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명예의학박사가 되어서 이제는 정말 닥터 비비안이 되었습니다. 어린 날의 꿈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비비안의 초상화는, 블레이락 박사 옆 자리에 나란히 걸리며, 학교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돌아보면 순탄하지 않은 인생. 1930년 대공황을 맞이해 대학등록금을 받지 못한 불운한 운명. 30대 중반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의대에 들어가고자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것조차 실패. 긴 세월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는 모습만이 남아 있습니다. 비비안은 그럼에도 지금의 내 일을 좋아한다며, 망설이지 않는 그 눈부신 모습이, 말할 수 없는 울림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돈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매일을 진심을 다해 노력할 수 있다면, 거기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2017. 08. 1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