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2017) 리뷰

시북(허지수) 2017. 8. 22. 05:18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소름이 확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인간 아기들은 한 살만 되어도 엄마의 눈동자 움직임에 반응을 보입니다. 생후 열두 달이면 벌써 스물일곱 살짜리 침팬지보다 더 나은 사회성을 갖추는 겁니다.(의학박사 히르슈하우젠 저서 중)" 유인원들은 눈동자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출 줄 모릅니다. 고개 정도는 젖혀 줘야 그제서야 관심을 나타냅니다. 인간이 사실은 얼마나 예민하고 정교하며 영특한지요. 저는 혹성탈출 신작 시리즈를 세 편 다 보게 되었지만, 유인원의 진화와 인간의 퇴화에 대해서 실은 별로 반갑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바이러스에 의해서 엄청난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유인원이 업글 될 가능성은 글쎄 별로 없지 않을까요. 어쨌든 사실은 그냥 이쯤에서 접어두고, 그럼 영화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갑니다.

 

 멋쟁이 유인원 리더 시저는 더 이상 인간과의 싸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유인원을 몰살시키려고 계획하지만, 인간 병사들은 유인원과의 싸움에서 시작부터 밀리며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시저는 기회를 주고,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리 유인원의 삶을 건드리지 말아달라, 그러면 서로가 잘 살 수 있지 않느냐 라는 평화를 단호하게 말하네요. 그런데!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인간들은 전혀 평화롭게 공존할 생각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어요. 시저의 위치가 드디어 파악되자, 인간군 대령은 정예 멤버를 편성해 시저의 서식지를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시저는 아내를 잃고,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집니다. 어제까지 평화를 외치던 시저가, 이제 나는 복수의 길을 가겠다고 외치며, 종의 전쟁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동료 유인원은 시저를 두고 놀라운 표현을 서슴치 않습니다. "시저가 이제 (전쟁광이었던) 코바의 모습 같다." 가족을 잃게 되자, 시저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무리들을 향해서는 서식지를 옮기라고 명령하고서, 자신은 대령을 향해 돌진해 갑니다. 어쩌면 불을 향해 뛰어들어, 타들어가는 불나방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저의 초 소규모 부대로는 역시 무리였습니다. 살아남은 인류의 군대를 상대해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요. 시저는 산 채로 붙잡히고, 많은 유인원들은 노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시저의 인상적인 리더십은 물론 이 곳에서도 반짝이긴 합니다. 물도 없이, 제대로 된 식량도 없이 가혹하게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유인원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라고 일갈합니다. 그의 정당한 항의는 물론 채찍 매질로 돌아오지만, 이 장면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혜택은 저절로 주어지는 법이 잘 없다는 점. 힘든 환경에 있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존엄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일을 하는 것은 충분히 좋다! 그런데 밥도 제대로 안 나오고, 급여까지 형편없다면. 그 다음에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시저 덕분에 유인원들은 옥중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물과 식사도 푸짐하게 배급되었습니다.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게 이렇게 중요하네요. 사람들을 어차피 개 돼지로 생각하는, 반쯤 정신 나간 인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유인원들은 한데 똘똘 뭉쳐서 탈출 계획을 세우기로 결정했고, 계획은 빠르게 착착 진행됩니다.

 

 한편 대령은 자신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전달합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있었는데, 바이러스에 걸려서 말도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남은 인류의 보존과 유인원과의 싸움 승리를 위해서, 그 이후 말 못하는 인간들은 몽땅 죽여 없애버렸다는 겁니다. 군인들을 모아 큰 소리를 외치는 모습은 일종의 광기에 가깝습니다. 크게 외쳐봐! 따라할 수 없다면 너도 당장 끝이야! 입니다. (실제로 대령은 낙오되는 자군의 병사까지, 총구를 겨누기도 합니다.)

 

 극중에서는 말 못하는 소녀가 중요인물로 나오는데요. 이 소녀는 놀랍게도 도중에 수화를 익히며, 의사소통 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지금 목 마르다는 거에요. 물 좀! 그리고, 대령은 후반에 말 못하는 병에 전염되고 말았는데, 그의 정신만큼은 충분히 멀쩡해 보였습니다. 결코 가설대로 지능이 퇴화되어 확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말이 안 나올 뿐이었지요. 대령은 자신의 엄청난 실수를 감당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후 인류는 서로 싸우다 장렬히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약한 편에 있는 유인원들이 서로 협력을 통해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인류는 엄청난 군사기술을 가지고선 서로를 불신하고 전력으로 쏘는데 온힘을 다하는 모습이 극명히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이른바, 우리가 최후의 역사적 인류가 되겠다는 오만한 욕심이 완전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시저가 없더라도, 유인원은 얼마든지 살아나갈 수 있다, 유인원은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임을 보여주며, 영화는 아름답게(?) 마치게 됩니다. 전쟁 치고는 좀 싱거운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오만과 자멸 때문이라는 점이 또렷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말 좀 못한다고 학살해 버린다는 대목은, 정말이지 섬뜩하지 않습니까. 내가 인류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 위해서, 같은 인간을 적으로 돌린다는 대목은 정말이지 안타깝지 않습니까.

 

 지인 중에 청각장애를 앓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열심히 밥벌이를 하는 모습에 저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 지인은 카카오톡으로 히로와 나누는 사랑의 수화 라는 이모티콘을 씁니다. 사람이, 말 좀 잘 한다고 잘난 척 할 필요가 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미언불신 이라는 한자를 써놓던 지인도 생각납니다. 그럴싸한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멋진 말 보다는, 오늘 조금 더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은 더욱 멋져 보였습니다. 돈벌어 혼자 잘 살기 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밥 한끼 사주는 게 훨씬 더 행복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걸로 이 별은 유인원 것이 되었네요. 함께 살아가는 공존. 탐욕이 판치는 시대일수록 정말로 귀중한 가치인 것 같습니다. / 2017. 08. 2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