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누가복음12:13-34)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 권세? 명예? 건강? 미인? 쾌락? 행복? 사랑?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완벽한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고 그 답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 답에는 나름대로 많은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누가 있어서 틀렸다 맞다 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까 충분히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모든 가치의 척도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움직임이 너무 심합니다. 이게 얼마짜리다. 우리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도 굳이 돈으로 액수를 매기려고 합니다. 가령 이게 정가가 60만원 짜린데 내가 이걸 20만원을 주고 샀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건 우리에게 얼마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거지요? 60만원입니까 아니면 20만원입니까? 내가 이 물건을 가지고 어떤 일에 사용했을 때 과연 이게 나에게 어느정도의 만족감을 주었는지를 돈으로 매길 수가 있나요?

 

그런데요 정작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게 60만원이냐 20만원이냐가 아니고 그 물건자체입니다. 우리에게 이 물건이 필요해서 샀고 그러면 그 물건이 우리에게 어떤 효용을 주고 만족을 주는지가 중요해야지 이게 가격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거지요.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는 말이 있습니다. 좀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정말 진리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가 아니면 결코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다는 것은 그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입니다. 그가 심하게 아파봐야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입장에서 봅시다. 그는 건강했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병을 치료하는데 쓴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니면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입원했고 돈도 엄청 쓴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건강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건강한 사람에게 건강은 한푼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까? 그 건강 때문에 쓴 돈이 없으니까.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돈입니까 행복입니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요? 우리는 수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삶의 한가운데서 허덕이는 생활인이기 때문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잘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돈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지요? 잘 먹고 잘 살기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돈을 위해서 건강이나 행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해지기 위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행복해 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말은 우리네 삶에서 전혀 당연하게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한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해서 마음 속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했답니다. 요즘이야 돈으로 환산해서 전자상의 숫자로 표시되지만 옛날에는 현물로 쌓아 두는 것이 제일 안전했겠지요. 물론 창고가 불에 타거나 도둑에게 도둑맞거나 강도에게 털리는 일도 분명히 있지만 이때는 창고를 지키는 이들이 보초를 설 겁니다.

 

당시 은행은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 창고에 가득한 곡식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이걸 가지고 사람들에게 월급도 주고 집지을 때 재료비니 삯이니 땅값 같은 걸로 지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소출이 많아 져서 더 이상 기존의 창고에 곡식을 쌓아 둘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큰 곳간을 짓고 여기에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신다면 그가 쌓아 놓은 곡식은 누구의 것이 될까요?

자, 그런데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란 어떤 자입니까? 위의 내용으로 대강은 눈치를 챘겠지만 정확하게는 어떤 사람이지요?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재물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서 중립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돈을 좋은데 사용한다면 그 돈은 좋은 것이 될 것이고 나쁜데 사용하거나 그것을 위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고 죽이면 그건 아주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뭐 어떤 영화에서 주연배우가 한 대사가 생각나기는 합니다. “돈은 다 좋은데 냄새가 안좋아” 하하, 어느 정도의 돈이 쌓여 있어야 돈냄새가 안좋게 느껴질까요?

 

사람들은 흔히 자기를 위하여는 재물을 많이 쌓으려고 하지만 남을 위하여서 또는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지 않으면 그걸 낭비하는 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이가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줄 돈은 가장 늦게 주고 받을 돈은 최대한 빨리 받아서 수중에 보유하는 현금의 양을 늘리는 것” 말이 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그냥 황당합니까?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하늘에 재물을 쌓은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하나님의 사역에 돈을 헌금하는 것같은게 들어 가겠지요.

 

수중에 보유하는 현금이 줄어듭니다. 낭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면 세월이 지난 후에 자기에게 정작 재물이 필요해졌을 때 마치 예금을 찾듯이 하늘금고에서 꺼내어 쓸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금고를 지키고 관리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므로 화재도 도난도 해충의 피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재물이 엄청나게 쌓여서 증식되어 있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영구적인 재물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그 재물을 하늘에 쌓아서 물려 주세요. 그러면 자녀가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재물은 누구도 손 못댑니다. 당연하게도 상속세니 양도세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분 중에 어떤 분이 항상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는 돈을 부지런히 모아서 자식에게 물려줘야 겠다” 이분 자식이 공부를 못했답니다. 그리고 재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상당히 인색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자식에게 물려주기 전에 재산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그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자식에게 물려주지도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 허망하지요?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성자가 아닌 다음에야 남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재물을 쌓는 이는 없습니다. 자기 손에서 재물이 빠져나가면 마치 죽는 것처럼 생각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 재물을 움켜쥐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을 위해서 재물을 쌓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잘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재물 중에서 제일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종이돈입니다. 옛날처럼 금은구리로 돈을 만들지 않고 대부분 고액권은 종이쪼가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에도 잘 타지만 바람에도 잘 날아갑니다. 성령을 성경에서는 ‘르아흐’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원뜻은 바람입니다. 호흡 또는 숨결. 그가 한번 숨을 내쉬면 바람이 불 것이고 그러면 쌓아둔 종이 조각이 날아 가 버릴 것입니다. 세상풍파라고 하지요? 바람과 파도. 바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안전하게 보관해서 필요할 때 찾아 써세요.

 

우리가 아무리 재물을 우리를 위해서 쌓아놓아도 하나님이 한번 불어 버리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필요도 없이 단지 쌓아 두라고 우리에게 주신게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남에게 자기에게 그리고 이웃과 사회에 더 큰 만족과 기쁨을 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판단하기에 자신을 대신하여 물질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청지기로 생각하시고 맡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의 뜻,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빼앗아서 다른 이에게 관리를 맡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우리가 쌓으려고 해서 쌓아 지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높이 쌓을수록 많이 쌓을수록 보관이 더 어렵습니다. 세상의 풍파와 세상의 도둑 강도들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이 강도처럼 그것을 빼앗으려 달려듭니다.

 

액수가 적을 때, 처음에는 좀 쌓여가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남 좋은일 시키는 겁니다. 그러므로 허망하게 날아 가 버리기 전에 먼저 자발적으로 남을 위해서 사용해 보세요. 눈으로 보기에는 남에게 가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하늘의 하나님창고에 쌓아 두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해 지는 방법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적당히 사용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남을 위해서 사용해 보세요. 아무리 사치하고 소비해도 남는다면 이제는 눈을 주위로 한번 돌려 보세요. 먼저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척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켜 보세요. 그들로부터 감사인사를 받으면 마음이 즐겁지 않나요. 그들이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역시 기쁘지 않나요? 또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대신 갚아 주시니까 마치 절대로 망하지 않는 보험에 든 것처럼 든든해지지 않나요?

 

예수께서 수만명의 무리가운데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주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
여기서 선생님은 랍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 사람이 주님을 자신의 주로 여긴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율법선생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랍비들은 유산다툼에서 종종 권위있는 조언을 통하여 다툼을 조정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지금 일반적인 랍비가 하는 유산다툼에 대한 조정을 요구한 것인데 공평하게 조정해 달라는 말은 아니고 자기 편을 들어 달라는 말입니다. 왜냐면 자기 형에게 명하여 유산을 자기와 나누게 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명성을 이용해서 유산다툼에서 지지를 받고자하는 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 사람을 이렇게 부릅니다. “이 사람아” 이 말은 영의 사람과 반대되는 육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속된 사람 정도. 우리말로도 ‘이 사람아’라는 표현은 약간은 책망하는 듯 한 표현입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이 사람에 대해서 주님은 지금 약간은 못마땅하게 부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사람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그리고는 부자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물론 이 사람의 요청은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비유를 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감복하는게 아니라 뭔가 주님은 우리와는 전혀 딴 세상에 사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주님이야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니까 돈이 안 중요해도 생존경쟁에 헉헉대는 우리로서는 돈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아무리 돈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설교를 해도 돈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이게 있어야 마음이 든든합니다. 참 신기한게 이게 하나님도 아닌데 사람을 든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뭔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의 노력을 한마디로 묵살합니다. 결론은 항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저도 뭐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건 아닙니다. 필요하지요. 빵과 물만 먹고 높은 바위위에서 수행하는 수도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골짜기, 세상이라는 곳에 삽니다. 이곳은 돈이 없으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은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돈돈 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게 너무 심해져서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것에는 아예 가치를 두지 않는 그런 상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우리가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좋은 말입니다. ‘목숨이 중하냐 돈이 중하냐’는 삶의 근원적인 물음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사실 이런 문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죽기는 싫어하면서도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마치 몸보다 음식이 더 중하고 몸보다 의복이 더 중하고 몸보다 집이 더 중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몸이 가장 중요함에도 가장 값없이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요? 그래요, 그러나 무의식중에 우리 , 특히 젊은이들은 몸을 가장 덜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운동도 게을리 하고 몸에 나쁠 수도 있지만 입에 맛있는 것이면 뭐든지 먹으려고 하고 편한 자세를 유지하여 몸을 장기적으로 힘들게 만듭니다. 제가 좌광천을 걷는 일이 많은데 여기에서도 젊은이는 거의 없고 주로 노인층들 중년층들만 있습니다. 몸이 소중함을 깨달을 이만 있는 겁니다. 젊은이들은 ‘이건 이 다음 나이 들어서 제대로 챙기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사실 이런 경향은 우리가 몸을 값없이 받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몸을 수십억을 주고 샀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결코 몸을 이렇게 막 굴리지 못할 것입니다.

젊음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말은 정말 제가 생각해도 명언입니다. 젊음이란 그 자체로 빛이 나고 아름다운 것인데 정작 젊은이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공기를 봅시다. 지금은 공기를 파는 이가 없습니다. 이게 공짜기 때문이고 무한대로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맑은 공기를 일부에서 팔기 시작했으니까 아마 환경이 나빠지면 공기도 돈 내고 사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벌써부터 물은 돈내고 사먹습니다. 한세대 전만 해도 돈 내고 물을 사먹는 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잘 보세요. 이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입니다. 무한대로 있다고 해서 귀중하지 않은게 아닙니다. 희소해야만 가치가 있는게 아닙니다.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값없이 쓸 수 있도록 많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생존에 가장 중요한 공기를 돈 주고 사서 쓰게 된다면 그때부터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돈이 없어서 공기를 사지 못한다면 즉시로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기의 질을 따지는게 아니라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가 됩니다. 만일 공기가 충분하지 못했다면 사람은 지금처럼 번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리는 너무 소중하지 않게 막 사용했지요.

 

옛날 주나라에 경국지색의 미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너무 예뻐서 임금님이 매우 사랑했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하루는 젓가락을 상에 놓고 밥을 먹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왕이 묻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냐?” 그러자 달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대왕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박채나 먹는데 쓰는 나무젓가락이 웬 말입니까?”

 

이 말을 듣고 왕이 “그러면 쇠로 젓가락을 만들까?” 하고 묻자 달기가 답하기를 “그러면 무거워서 어떻게 음식을 먹겠습니까?” 하고는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어 달라고 했답니다. 여자에 정신이 나간 왕은 달기의 요구대로 상아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 나라에 많이 있던 코끼리를 죽이기 시작해서 곧 코끼리가 멸종이 되었답니다.

 

한편 이 말을 들은 기자는 탄식하기를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기름진 음식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면 소와 돼지를 잡아야 할 것이며 이런 음식을 나무 접시에 놓을 수 없으니 금그릇 은그릇이 필요할 것이고 이런 고급식기를 사용하면서 베옷을 입는게 어울리지 않으니 비단옷이 필요할 것이고 비단옷을 입고서는 초가집에 살 수 없으니 금전옥루를 지어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결국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야 할 터이니 어찌 나라가 온전하겠느냐고 하고는 조선으로 망명을 했답니다.

 

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워낙 중국 사람들이 허풍이 세니까. 일부러 교훈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거지요. 어때요? 사람은 이렇게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을 위하여 애를 쓰기 시작하고 결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욕심이 만악의 근본이라고 그 욕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바로 보는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원래 음식은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했지요.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두세대 전만해도 우리네 강토에는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봄만되면 제대로 먹을게 없어서 산으로 들로 먹을걸 채집하러 다니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양식이 풍족해진 요즘 사람들은 이제 식도락을, 고급 식당을 찾습니다.

 

이제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의 큰 산업이 되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음식이 외형이 화려해 지기 시작합니다. 음식을 먹는 곳이 화려해 집니다. 인간의 탐욕을 자극합니다. 각종 먹방 프로는 지금 사람들에게 인기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곳에서 고급 식기에 음식을 놓고 먹기를 위합니다. 근사한 음악이 나오고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화려한 야경을 보면서 먹는 것을 즐깁니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점 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됩니다.

사실 돈이 정말 좋은 것은 맞습니다.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돈은 결코 영원하거나 궁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어졌을 때 잘 사용하면 됩니다.

 

제가 르완다에 관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영화인데 르완다를 다스리던 독재자가 정권을 잃고 외국으로 망명을 가는데 이 사람이 호텔 지배인에게 인질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합니다. 미국 달러로 요구하니까 호텔 지배인이 달러가 없답니다. 다만 ‘르완다 프랑’만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독재자는 이제 르완다를 떠날 거니까 ‘르완다 프랑’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으휴” 하면서 주먹을 쥐고 흔드는 모습. 어떤 이에게는 돈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종이 조각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추석입니다. 한쪽에서는 돈이 넘쳐 흘러서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임금을 받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고향에도 가지 못한다고 한탄합니다.
정부에서 근로장려금과 자녀수당을 추석 전에 지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석명절을 보내는데 보탬이 되라고 추석 전에 지급하는 겁니다.

 

정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보호하고 선을 권장하고 악을 벌해서 제어해야 하며 이들의 행복을 촉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면 세상 권세도 역시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추석 명절을 주신 이유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휴식을 취하면서 서로 정을 나누는 것을 보기를 원하셔서입니다. 그러나 그 명절에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돈 때문에 힘들어 하고 우상에게 절하고 하는 것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명절을 폐하실지도 모릅니다.

 

‘이것들이 추석을 만들어서 바쁜 일상에 놓여나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라고 했더니만 말썽만 피우고 사람들이 서로 더 힘들어지고 불행해지는 일만 하고 있어, 폐지다’ 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

오디오에 관한 한가지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이게 지금도 막 싸우는 논쟁거린데 비교적 명확한 것만 말하려고 합니다.

 

뭐냐면 ‘블라인드 테스터’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을 감기고 소리를 맞추는 겁니다. 뭐가 더 나은 소린지를 눈감고 맞추는 겁니다. 가령 눈을 뜨고 들었을 때는 이게 더 소리가 좋다느니 이게 소리가 윤기가 흐르고 세밀하고 무대가 넓어지고 등등 각종 미사여구들을 남발합니다.

 

비싼 앰프, 유명한 앰프, 비싼 케이블 선. 그래서 수억에서 몇십만원까지 다양한 앰프와 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싸구려로 부실하게 만든 것은 제외하고 수십만원대 이상부터 앰프는 눈을 감고 맞추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선은 더 심하지요. 아주 얇고 차폐도 잘되지 않은 선이 아닌 다음에는 거의 못맞춥니다. 맞추는 이들도 반복해서 들어서는 맞추지 못합니다. 이건가 저건가 자기들도 헷갈립니다.

 

유럽의 한 명품오디오업체에서 수천만원짜리 앰프를 만들었는데 이게 수십만원짜리 일제 앰프의 내용물하고 똑 같다는게 밝혀져서 한동안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껍데기를 제외한 기판이니 회로같은걸 다른 업체껄 그대로 사서 넣은 겁니다. 포장만 자기네 회사걸로 한 거지요.

 

가격차이가 무려 백배이상인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까 그 명품업체가 말하기를 자기네는 케이스를 좋게 만들어서 음을 고급스럽게 튜닝했으므로 싸구려 일제와는 다르다고 말했답니다. 충격적이지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건 그런데도 그 업체는 장사를 여전히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업체가 그리고는 망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눈을 뜨고 그 소리를 들으면 정말 다르게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답니다. 고음이 어떻고 저음이 어떻고 음장감이 어떻고 무대가 앞으로 나오고 등등 그런데 눈을 감고 들으면 전혀 모르겠답니다. 그래서 오디오하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블라인드 테스터입니다. 수십년 오디오 했다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 눈감고 소리를 맞추는 것.

 

사실상 오디오는 참 좋은 취미입니다. 멋있는 취미로 남자의 3대 취미 중에 들어갑니다.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그러나 돈이 정말 많이 들어 갑니다. 왜 그럴까요?
안목의 정욕 때문이지요. 눈으로 보고 화려하고 정교하고 든든하게 생긴 것을 보고 그 상표를 보고 소리를 들으면 소리가 다르게 느껴지는 겁니다.

 

중국산처럼 번쩍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뭔가 묵직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 위에 영어나 독일어로 상표를 딱 써 놓는 겁니다. 이게 과연 안목의 정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더 충격을 받은건 여인들의 가방, 백입니다. 가죽도 아니고 비닐에 상표가 찍히면 이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된답니다.

 

한국에 어떤이가 가방 만드는 장인인데 이 사람이 짝퉁 가방제조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가 만든 가방을 한 개 오만원에 넘겼답니다. 이 사람은 지하실에서 가방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잡히고 나서 알고 보니 자기가 만든 가방을 넘겨 받은 사람은 그걸 한 개 오백만원에 팔았는데 정작 진짜 업체에서 만든 것 하고 자기가 만든 것 하고 제대로 구분을 못했답니다.

 

그러니까 진짜를 만드는 업체의 전문가란 이들도 그걸 구분을 못할 만큼 똑 같을 뿐만 아니라 박음질이니 재질이니 접합부같은 것은 자기께 진짜보다 품질이 더 좋았답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이 더 이상 지하에서 짝퉁을 만들지 않아서 나도 너무 좋다고 했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본래 사물의 가치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지금은 상표 가치시대입니다. 남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더 비싼 것 더 희귀한 것을 선호하는 겁니다. 희소하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흔하게 만드셨습니다. 햇빛, 공기, 흙, 물 뭐 이런 식으로.

 

그래서 오늘 우리 주님의 물음은 현대인들에게 근원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 정신없이 매달려서 그들을 쫓아가다가도, 그들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달려가다가도 한번쯤은 세상을 떠나서 조용한 가운데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리스도의 이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세상의 가치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역시 세상에 한발을 걸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향을 어느 정도 받더라도 조금은 세상의 가치관이 주는 영향을 덜 받고 하나님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정도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덜 비참해 지고 덜 힘들어 지고 덜 분노할 수 있습니다. ‘솰롬’의 경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무한공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 절대적인 것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되 부차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그런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믿음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나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이번년도에는 무려 십일간의 휴가기간이 생겨버렸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가을 십일간의 휴가가 우리네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인 휴식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영혼의 안식도 찾고 몸과 마음이 힐링도 되고 충전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병상에 누운 자도 일어나고 어려웠던 문제들이 풀리고 절망가운데서 희망의 빛을 보고 낙담한 자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며 만드실 수도 있는 주님은 스스로를 제한하여 거친 빵과 작은 물고기로 식사하셨고 화려한 집도 없이 노숙하였으며 심지어 제자들에게도 두벌 옷이나 전대도 가지지 못하게 하셨지요.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성자는 아닙니다. 돈이 없으면 당장 곤란한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신분을 가집니다. 하늘나라 대사,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주님이 ‘이 사람아’ 라고 하시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성도입니다.

너무 물질에만 경도되지 말고 영적인 것에도 한번 쯤 관심을 돌리고 가만히 앉아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요, 음식보다 몸이 중요하고 의복보다 몸이 중요합니다. 까마귀도 백합화도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너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 살지를 걱정하지 맙시다.

아주 크게 보면 우리는 이 땅이 제공하는 것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땅 파먹고 산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이 땅, 지구는 누가 주셨지요?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전체에게 주신 것에 각종 명목으로 선을 그어 사로 빼앗고 싸우고 넓히려하고 그렇게 놉니다.

 

정작 이 지구의 주인이신 그는 우리에게 어떠한 돈도 요구하지 않고 이 땅을 주셨습니다. 공기도 햇빛도 물도 흙도 그가 우리에게 공짜로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며 하나님 자신을 경배하고 그에게 감사를 돌리는 그런 모습을 보기를 원하셨기에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 놀라운 것을 공짜로 무한대로 받은 우리는 정작 덜 중요한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앙앙불락하며 때로 원망하고 질투하고 분노하며 그렇게 삽니다. 이제는 조금 성숙한 신앙을 가질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이 십일간의 가을휴가가 그런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데 기여하면 좋겠습니다.

 

정말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놓여나서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위해여 충분히 재물을 쌓으세요. 많이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적당히 쌓았다면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에도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세상가치에 함몰되어 정신없이 살다가 모처럼 한가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면 보다 근원적인 것을 위하여 가치 있게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다시 좌광천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도 알맞고 하늘은 맑고 푸릅니다. 공기도 신선하고 초록은 정말이지 눈이 부십니다. 제가 10월달에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좌광천을 걸으면서 준비하는게 있습니다. 좌광천은 단순히 천변이 아니라 숲속 골짜기도 있고 그런곳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들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무엇보다 정의를 사랑하고 공법을 사랑합시다. 단순한 생활인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하나님의 성도가 됩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성도이며 이 세상을 언젠가는 떠나서 그의 앞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사실을 잊지 맙시다.

 

날마다 우리가 더 하나님께 성숙된 신앙을 가진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기를 그래서 나와 내 가족과 내 자녀와 손자대까지 복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7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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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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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젊은 날에는 젊음이라는 멋짐을 가지고 있고, 아픈 데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문득 내가 젊음을 잃고, 상처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로 16일 째, 매일 만 걸음 이상씩 느릿느릿 걷습니다. 하루에 2시간 정도씩 소모 됩니다.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체력도 쌩쌩하고, 몸매도 날씬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괜한 비교에 침울해 집니다. 하지만 절친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거니?"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 0번에 올라가 버렸습니다. 반년 이상 걷게 되면,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서 조금은 체력이 상승하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좋은 일이 굳이 하나 있다면, 찬양을 평소보다는 10배는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찬양인, 어노인팅, 마커스, 제이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찬양 가사 중에는, 결국 나는 이름 없이 피었다가 지는 꽃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역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사용은, 그 때는, 우리가 감히 알지 못하므로, 우리가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인생자립,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욕심으로 살았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는 깊은 밤입니다. / 2017. 10. 시북.

 

by 시북 2017.10.1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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