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88 맨유의 원조 킹, 데니스 로

시북(허지수) 2020. 7. 8. 14:06

 

 맨유의 '킹'이라고 하면 최근에는 에릭 칸토나가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킹'이라고 불리던 빅스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맨유의 원조 킹인 데니스 로 입니다.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던 명선수 이야기로 출발!

 

 프로필

 

 이름 : Denis Law
 생년월일 : 1940년 10월 18일
 신장/체중 : 175cm / 71kg
 포지션 : FW
 국적 :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 55시합 30득점
 주요수상 : 1964년 유럽최우수선수상 (발롱도르)

 

 맨유의 잭나이프, 데니스 로 이야기

 

 1960년대 맨유에는 전설의 삼인방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환상의 드리블러 조지 베스트, 캐논 슛의 바비 찰튼,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금발의 악마"로 까지 불리웠던 발군의 존재감을 자랑한 원조킹 데니스 로 입니다. 버즈비 감독시대의 이 60년대 맨유는 196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삼인방 공격수는 모두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 첫 번째가 1964년, 바로 젊디 젊은 데니스 로 였지요.

 

 데니스 로의 플레이 영상을 찾아보면, 지금봐도 정말 온몸을 던지며 곡예적인 슛을 날립니다. 멋진 골을 정말 많이 넣었는데,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면서 굉장한 존재감을 자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딩 능력이 정말 엄청났습니다. 데니스 로는 작은 키였음에도 장신 수비수에 밀리지도 않고, 아주 정확하게 헤딩을 찔러넣었습니다. 너무나 날카로운 헤딩슛이었기 때문에, 상대 수비수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래서 데니스 로에게 "잭나이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작지만 순식간에 자리를 잡아서 날카롭게 골망을 찔러버리는 데니스 로! 정신적으로도 자유분방했으며, 격렬한 투쟁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범적이었던 동료 바비 찰튼과는 전혀 딴판이었지요.

 

 당시 데니스 로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잉글랜드의 레전드 바비 찰튼 이상이었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데니스 로의 외모와 실력에 반한 나머지 당시 유행처럼 아이의 이름에 데니스를 붙였다는 엄청난 실화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유명한 이야기인데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베르캄프의 부모님 역시 데니스 로를 너무 좋아해서, 데니스 라는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주었습니다. 훗날 네덜란드의 전설이 되는 그의 이름이 바로 "데니스 베르캄프!" 이지요.

 

 데니스 로는 어릴 적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궁핍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축구화도 제대로 못 샀다고 합니다. 그래도 공차는 것을 좋아하고, 축구에 대단한 소질이 있었습니다. 데니스 로는 허더스필드 타운FC에서 축구선수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이 팀 사상 최연소 기록인 16살 때 프로축구 선수데뷔를 할 정도였습니다. 10대 때, 이미 주전선수로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도 뽑힙니다. 이 인상적인 소년은 활약에 힘입어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하게 됩니다. 1960-61시즌, 20살의 공격수 데니스 로는 무려 21골이나 넣으며 일약 떠오르는 신성이 됩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가 그를 데려갑니다. 당시 데니스 로의 이적금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금액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토리노는 당연히 기대가 컸겠지요. 데니스 로는 이탈리아에서도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했지만,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 때 경기를 못 나오기도 했고, 먼 타국에서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1년만에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가 이번에 옮기게 된 팀이 바로 버즈비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였습니다. 20대 초반의 데니스 로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나갔습니다. 맨유 데뷔전부터 2골을 넣기 시작해서, 처음 5년동안 무려 160골을 넣었습니다. 산술적으로도 시즌 평균 30골이 넘습니다. 정말 상대팀에게는 악마가 따로 없었습니다!

 

 관객을 빠져들게 하는 아름다운 슈팅, 예리한 헤딩, 게다가 스타성도 풍부해서, 데니스 로는 일약 맨유의 중심으로 우뚝 섭니다. 데니스 로의 환상적인 활약에 반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급기야 "킹"이라는 칭호까지 얻습니다. 1963-64시즌이었습니다. 40년생인 데니스 로는 이 때까지도 한참 젊었지요. 41시합에 출장한 데니스 로는 골을 무섭게 몰아넣었습니다. 거의 매시합 골이 터져나갔고, 도저히 킹 데니스 로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해 데니스 로는 45골을 넣었습니다. 환상이었지요. 이 해 맨유는 2위로 밀리며 아무런 타이틀도 따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니스 로는 너무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고, 1964년 자랑스럽게 유럽최우수선수상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상을 받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수는 데니스 로가 유일합니다.

 

 이듬 해, 맨유는 드디어 8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다시 한 번 도약을 시작하며 60년대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그리고 196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며, 유럽정상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데니스 로는 1968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없었습니다. 격렬한 플레이로 인해서 무릎이 말썽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상으로 인해서 수술을 해야 했고, 68년 대망의 챔스리그결승전을 병원에서 관전했다고 전해집니다. 맨유가 강호로 이름을 날리면서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을 때까지 데니스 로의 활약이 엄청났던 것이었는데, 정작 가장 멋진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이 때문인지 조지 베스트, 바비 찰튼에 비해서 데니스 로가 좀 더 적게 알려진 것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영광의 우승트로피는 며칠 후 버즈비 감독이 직접 병원에 찾아가, 데니스 로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만큼 중요하고 위대했던 선수였지요.

 

 이후 부상에서 복귀해서 21골을 넣는 등 재기하며, 맨유에서 통산 237골을 넣었습니다. 현역 마지막에는 맨체스터 시티로 돌아와서 한 시즌을 뛰고 은퇴합니다. 마지막 시즌까지도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짓궃은 에피소드로, 현역 마지막 무렵 1974년에 맨시티 소속의 데니스 로는 공교롭게도 맨유와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때도 무정하게(?) 골을 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맨유는 2부리그로 추락하게 됩니다. 지난 날 맨유의 킹이었는데, 봐주는 법이 없군요. 1974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리그통산 300골을 넣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기록입니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도 꾸준히 출장해서, 30골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스코틀랜드 역대 최다득점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세계에 자랑했던 공격수, 스코틀랜드의 불멸의 레전드 그가 바로 데니스 로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데니스 로의 멋진 골장면 영상을 덧붙입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2008. 07. 05. 초안작성.

 2020. 07. 08.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