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일지라도

시북(허지수) 2018. 10. 23. 05:01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반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자꾸만 마음이 높아져 가는 스스로의 오만함이 눈에 보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전혀 아닌데, 나는 그렇게 멋있는 사람도 전혀 아닌데...

 굳이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비겁한 위선자"에 딱 어울리는 이기적인 사람인데 말이에요.

 

 말은 그럴 듯 하게 포장하면서, 삶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괴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도전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삶은 넓고, 편하고, 쉬운 길로만 다니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자신을 냉철하게 되짚어볼 때면,

 상처받기 싫어서,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는, 게으르고 못난 나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됩니다.

 요즘 표현을 빌린다면, 이건 "완전 노답" 이에요.

 

 그러면 왜 이 노답 인생이, 감히 사람들과의 약속을 깨고 다시 블로그에 돌아왔는가요?

 

 저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고작 중1 때, 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실명을 언급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적어도 그 분께 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당시 담임선생님, 음악을 가르치시던 김은영 선생님께서 저를 업어서까지 교실에 앉혔습니다.

 지금도 저는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 선생님... 굳이 그렇게 살지 않으셔도 되는데...

 너무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게도, 저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을 이후에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출석 일수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여, 중학교를 그만둔 저는, 제대로 걷는 것이 소원이 되었습니다.

 긴 시간 의자를 붙들고 일어서고, 걸어보고, 그러던 어느 날, 서서히 다리를 다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기어서 화장실을 가고, 비상 시를 대비해 방 안에 소변통이 있던 그 삶이 조금씩 달라진 것이었죠.

 

 초졸인 저는, 19살이 되어서야 야학이라는 곳을 그것도 매우 우연히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훌륭한 야학 선생님들에 의하여, 너무나 큰 사랑과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자! 보세요! 나같은 사람은 말로 떠들지만. 누군가는 행동으로 올바른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 보세요! 위선자 같은 완전 노답인 사람과, 실천하는 진짜 명품 인생의 차이를 말이에요.

 

 좋은 사람들 곁에 있으면, 그 정직한 성품이 안개처럼 다가와 조금씩 스며듭니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극진한 애정공세(?) 속에 살아가는데, 검정고시 합격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어요.

 너는 반드시 할 수 있다고 꼭 안아주셨던 역사교육과의 신 선생님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느 학교 앞, 두개의 비올라, 아마 쌍비 라고 불렀는데요. 선생님들께서는...

 과외로 돈 벌어서, 그걸로 그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스테이크를 든든히 먹여주시곤 했습니다.

 나는 그 때마다 제대로 감사를 표현했었던가, 이제는 기억조차 선명하지 않은, 제법 오래된 일입니다.

 요즘 표현을 또 빌린다면, 저는 쳐묵 쳐묵, 그런 것은 잘해놓고, 그렇게 제자를 귀중하게 대하는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분명 못했고, 끝끝내...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죄송하기만 합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저는, 이후 프리터 인생이 되었습니다. 책보며, 아르바이트 하는 삶에 안주했습니다.

 옷 가게, PC방, 편의점 등 이 일 저 일을 오가며, 시간부자로 만족하며, 또 사장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매우 긴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블로그에서 저는 똑똑한 척, 멋있는 척, 위장해보려고 온갖 화려한 말을 써왔지만,

 이번 만큼은 그런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오직 정직하게,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쓰겠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우리 야학의 잊지 못할 자랑스러운 표어 였으니까요.

 

 프리터로 매우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질문을, 이른바 답도 없는 질문이라고 하겠네요. 당연히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찾아질리도 없습니다.

 

 그러던 2018년 10월. 젊은이 한 사람이 너무나 마음 아프게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제발 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10월 22일, 어제 저녁, 제가 일하는 곳에, 정말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한자가 적힌 묘한 담배를 들고 다닌 것을 보니, 중국계거나, 중국계 담배를 싼 맛에 구했다거나 둘 중 하나겠죠.

 그 사람의 만취 행패에,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 오늘이 내 인생의 끝날일 수 있겠구나... 를 실감했습니다.

 당연히 경찰은 출동했지만, 경찰은 어디까지나 경찰의 메뉴얼이 있을 것이고,

 그 이상한 행패자가 물건 부수지 않은 이상, 흉기 꺼내지 않은 이상, 마냥 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가 2차 재침입 후에는, 또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냥 돌아가 버렸으므로, 큰 사고 없이 마무리 되었으나...

 저는 이미 후들후들 몸이 떨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주 겪게 되는 주폭과는 좀 더 다른 느낌의 아찔함이었다고 남겨놓고 싶네요.

 (*물론, 이 아찔함의 감각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차도 이 사람을 제정신으로 볼 수 없다고 발언까지 했기 때문에... 저는 더더욱 그 공포의 시간들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마음 놓고 열심히 노력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조차 못 만들고 있습니다.

 일찍이 루쉰이라는 사람이 경고했듯이, 쌓였던 울분을 위에 높은 분께 대놓고 풀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만만한 이웃을 괴롭히고, 찌르며, 끝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어 버리는 지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연대하고, 저항하여, 악과 맞서 싸워나갈 수 있기를. 악에 물들어 가지 않기를. 저는 소망합니다.

 

 그리고, 제 삶이 계속 이어져나간다면, 다음 주 부터는, 다시 힘을 내어 글쓰고 또 공부해 나가려 합니다.

 괴로움과 부족함으로 글을 쓴다고 했던 정혜윤 작가님의 말씀에 용기 백배 하여, 또 힘을 내려 합니다.

 일천 만에 하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일지라도, 정직한 고백을 남겨놓을 수 있어서 그걸로 충분합니다.

 

 매일 매일 노력하고 있는, 대한민국 아르바이트 여러분. 힘내세요.

 똑똑한 사람이 이기고... 오만한 사람이 이기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현실을 분명히 볼 지 모르겠으나...

 힘내어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젊은이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8. 10. 23. 새벽. 신 군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