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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철인 칼 하인츠 슈네링거

시북(허지수) 2008. 8. 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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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Heinz Schnellinger

 슈네링거, 그는 수비의 철인으로 평가받던 독일이 낳은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레전드 슈네링거의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프로필

 이름 : Karl-Heinz Schnellinger
 생년월일 : 1939년 3월 31일
 신장/체중 : 180cm / 78kg
 포지션 : DF
 국적 : 서독
 국가대표 : 47시합 1득점

 투지와 정신력으로 '게르만의 혼'을 보여준 철인수비수 슈네링거

 슈네링거의 평가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이상적인 수비수, 마치 정밀한 기계를 보는 듯한 정확한 플레이, 흠잡을데 없는 수비수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베켄바우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독일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불리던 이가 바로 슈네링거였습니다. 슈네링거의 훌륭한 수비에 상대선수는 완벽하게 봉쇄되곤 했습니다. 뛰어난 체격에,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정신력이 더욱 돋보이는 멋진 선수였습니다. 레프트백이 주포지션이지만, 워낙 수비를 잘해서 중앙수비수까지 거뜬히 소화해내는 만능수비수이기도 했지요. 그럼, 그의 커리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8년 1.FC쾰른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슈네링거는, 어릴적 부터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10대 때, 이미 서독국가대표로서 1958년 월드컵에 참가합니다. 슈네링거는 당시 서독선수로는 드물게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1962년 월드컵부터는 주전으로 참가한 슈네링거는, 이윽코 얼마 후 세리에 A 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1963년 이탈리아의 AC만토바로 이적! 데뷔전부터 강호 AC밀란을 물리치는데 큰 공헌을 하면서 이탈리아 무대에 적응해 나갑니다.

 AC만토바, AS로마를 거쳐서 1965년에 AC밀란으로 오게 되는 슈네링거. 여기서도 명문팀의 굳건한 수비수로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됩니다. 독일 출신의 이 수비수는 9년 동안 AC밀란에 몸담으면서,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을 들어올렸으며 국내무대 뿐만 아니라 UEFA컵 위너스컵 우승, 게다가 UEFA 챔피언스컵(현 챔스리그)까지 우승을 따냅니다. 1966년 월드컵에도 당연히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잉글랜드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슈네링거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는 1970년 월드컵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31살의 굴지의 수비수 슈네링거는 벌써 월드컵을 4번이나 겪고 있었습니다. 베켄바우어도 있었고, 게르트뮐러도 있었고, 서독은 우승을 노리면서 진격해 나갑니다. 조별리그 전승! 8강에서는 66년 월드컵의 숙적 잉글랜드에게 통쾌하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준결승까지 진출합니다.

 1970년 월드컵 준결승 :: 66월드컵 준우승 독일 VS 68유로 우승팀 이탈리아
 이 경기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세기의 시합으로 까지 불리는 전설적 경기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네스타 역시 이 경기를 최고의 월드컵 경기라고 손꼽고 있는, 유명한 명승부 였습니다. 선제골은 이탈리아가 넣었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버리는 듯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비는 탄탄했습니다. 종료 시각은 다가왔고, 수비수 슈네링거까지 공격에 가담합니다. 그리고 극적으로 동점골이 터집니다! 슈네링거! 포기할 줄 몰랐던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바로 슈네링거의 동점골이었습니다! 평생 A매치의 유일한 골이었지요.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터뜨린 이 투혼의 정신력을 두고 사람들은 게르만의 혼을 보여주었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베켄바우어는 다쳤음에도 부상투혼을 발휘하면서 끝까지 서독의 저력을 보여줍니다.

 연장전에 돌입한 양팀은 치열하게 골을 주고 받습니다. 이번에는 서독이 앞서나가다가, 이태리가 동점. 잠시 후, 이태리가 다시 또 앞서가다가 서독이 따라 잡으며, 순식간에 스코어는 3-3 이 됩니다. 결국 교체 투입된 이탈리아의 판타지스타 리베라가 최후의 골을 넣으면서... 서독은 안타깝게 3-4 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훗날 이 경기를 두고, 아즈텍의 사투, 최고의 월드컵 경기, 세기의 시합, 등으로 부르게 됩니다.

 슈네링거가 세계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은 월드컵에서 아쉽게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번이나 월드컵에 참가했음에도 2위, 3위, 4강, 8강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슈네링거는 국가대표 47시합 중에서, 월드컵 무대에서만 17시합을 소화할 정도로 대단한 철의 수비수였음에도, 월드컵 정점은 차마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독일은 이후, 슈네링거는 없었지만 황제 베켄바우어의 지휘 아래 바로 다음 월드컵에서 멋지게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후로도 명수비수들이 많이 배출되었기에 슈네링거의 혼은 이렇게 이어져 내려오면서 살아숨쉬는 듯 합니다. 슈네링거는 현역 마지막 무렵에 독일로 돌아와서 한 시즌을 보내고, 1975년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현역시절 1962년 독일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월드 베스트 일레븐,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단골로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명성을 자랑하던 명수비수가 바로 슈네링거 였습니다.

 이것으로 슈네링거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슈네링거는 어디에서나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묵묵하게 꾸준히 활약한 독일의 레전드로 평가받습니다. 과감하게 해외무대에서 활약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승리를 위해서 투지를 늘 잊지 않았던 선수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임에도, 관심있게 애독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