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독일의 헤딩달인 올리버 비어호프

시북(허지수) 2008. 10. 12. 20:45

Oliver Bierhoff


 90년대 축구스타 중 헤딩을 잘하는 선수를 꼽는다면, 단연 비어호프의 이름이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의 국가대표로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으며, 유로96에서는 우승의 주역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스타공격수 비어호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Oliver Bierhoff
 생년월일 : 1968년 5월 1일
 신장/체중 : 191cm / 90kg
 포지션 : FW
 국적 : 독일
 국가대표 : 70시합 37득점

 공중의 지배자, 올리버 비어호프 이야기

 공중의 지배자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되겠지만, 비어호프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었습니다. 190cm가 넘는 큰 키와 전혀 밀리지 않는 몸싸움. 게다가 엄청난 위치선정능력! 점프력까지 훌륭했던 그는 헤딩에 관해서는 비견할 선수가 거의 없을만큼 탁월한 공격수였습니다. 90년대 세계최고 클래스의 '공중의 지배자'였으며, 축구 역사상으로도 손꼽히는 헤딩의 달인이었습니다. 혹자는 비어호프를 두고, 이렇게까지 아름답고 확실하게 헤딩슛을 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었다는 찬사까지 있습니다. 물론 헤딩뿐만 아니라 전성기 골결정력이 훌륭한 것은 당연했지요. 자, 그럼 그의 축구인생사를 이제 살펴봅시다.

 1985년 여름, 17살의 한 소년이 바이어 웨르딩겐 축구팀의 유소년 축구선수로 혜성같이 등장합니다. 이 꼬마 신동 비어호프는 주니어리그에서 수 많은 골을 폭풍같이 몰아넣으면서,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됩니다. 당연히 이듬해 18살이 되고, 1986-87시즌 분데스리가에 비어호프는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프로의 벽은 냉엄하고 높았습니다. 하기사 아이들끼리 하는 주니어리그와 그래도 유럽의 강호리그인 분데스리가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지요. 수준이 다른 세계였지만, 그래도 비어호프는 첫 시즌부터 기대를 모으면서 19 시합이나 출장했지만 아쉽게도 득점은 3골 밖에 넣지 못했습니다. 이듬해는 12시합 1골 기록. 반짝 주목받았던 아이돌 비어호프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했고, 이후에는 웨르딩겐을 떠나서 함부르크, 보루시아MG 등에 몸담게 됩니다. 새롭게 팀을 옮겨봐도 비어호프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고, 20대 초반 때, 시즌 18시합 무득점이라는 스트라이커로서 다소 치욕적인 성적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때까지도 비어호프는 참 별 볼일 없는 공격수 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 많은 독일출신 공격수 중에 그냥 무명의 한 선수에 불과했지요.

 그랬던 그를 바꾼 것은, 도전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실패했던 선수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새롭게 무대를 오스트리아로 옮겨서 잘츠부르크팀에 몸담게 되는 비어호프. 감독의 신임하에서 비어호프는 보란듯이 33시합 23득점이라는 환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0골의 사나이가 불과 1년만에 23골을 작렬시킨 것이지요! 이 때의 활약을 인정받은 비어호프는 마침내 이태리 세리에A 진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어호프 본인도 동경했던 리그였다고 합니다.

 동경하던 이탈리아에 와서도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20대 중반, 아스콜리에 몸담게 된 비어호프는. 소속팀이 강등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어호프는 그런 좋지 못한 여건 속에서도, 비록 2부리그인 세리에B 에서 뛴다고 하더라도 꾸준한 신뢰를 받으면서 맹활약! 일약 팀의 중심선수로 거듭납니다. 그의 착실한 실력은 어느새 세리에A 무대로까지 입소문이 퍼져나갔고 1995년 세리에A의 우디네세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인 골잡이가 세리에 무대에서 활약한 경우도 드물었고, 또한 그의 실력도 사실 가장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통할 지는 아직 검증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주니어리그, 오스트리아리그, 2부리그 등에서는 빼어난 활약을 펼쳤었지만, 정작 분데스리가와 세리에A 에서의 성적표는 이때까지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그의 인생은 스물일곱 부터 찬란하게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우디네세 에서의 1995-96 첫 시즌. 비어호프는 보란듯이 맹폭을 퍼붓습니다. 무려 17골을 몰아 넣으면서,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선 것입니다. 세리에A 에서 성공하게 되자, 독일에서도 관심을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윽코 독일대표팀에도 소집되었습니다. 그렇게 유로96이 개최되었습니다. 독일은 이기고, 또 이기면서 결승에서 체코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체코는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만만찮은 실력을 선보입니다.

 유로96 결승전. 앞서가는 것은 체코요. 다급한 것은 독일. 후반전에 비어호프가 투입되었습니다. 사실 대표팀 경력만으로는 아직 풋내기 비어호프였지만, 실력만큼은 이제 더 이상 풋내기가 아니었습니다. 교체 투입되자마자 비어호프는 천금같은 동점골을 체코로부터 뽑아냅니다! 결국 승부는 팽팽하게 무승부로 흐른 끝에 연장전에 돌입하였고, 떠오른 히어로 비어호프의 역전 결승골든골로 독일은 2-1 그림같은 승리를 따내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비어호프의 이 결승전 두 골이, 독일을 세 번째 유로우승으로 이끈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온 유럽에 퍼져나갔고, 이제 바야흐로 유럽의 스타공격수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입니다.

 그의 눈부신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997-98시즌, 우리나이로 서른살. 비어호프는 우디네세의 간판 특급골잡이로 수 많은 골을 만들어내면서, 32시합 27득점이라는 정말 경이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득점왕도 비어호프의 몫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잘해내는 괴물공격수를 다른 팀들도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 이듬해 비어호프는 명문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대기만성형 스타랄까요. 비어호프는 AC밀란에서도 이적하자마자 스무골을 몰아칩니다. 그의 빼어난 활약도 있었고, AC밀란은 세리에A 우승트로피를 차지하면서 멋진 시기를 보낼 수 있었지요. 이후에는 AC밀란의 레전드스타 셰브첸코가 오게 되면서, 점차 주포의 자리는 비어호프가 아닌 쉐바의 차지가 되어갔습니다.

 선수생활 마지막 시기에는 미래를 위해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한 때 박주영 선수가 뛰고 있는 프랑스의 AS모나코 팀에 몸담기도 했습니다. 현역 최종시즌은 이탈리아팀 베로나에서 활약하면서 은퇴하게 됩니다.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해트트릭까지 작렬시켰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은퇴 후, 현재는 독일대표팀에서 팀매니저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마치면서 역사적인 유로96 결승골 경기장면 영상을 덧붙입니다. 추억의 스타들이 참 많이 잡히네요. 클린스만, 해슬러, 마티아스 잠머 등... 아마도 이런 추억의 영상도 누군가에게는 참 잊지 못할 추억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 늘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