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986년 빛나는 전설, 이고르 벨라노프

시북(허지수) 2008. 11. 20. 15:27

Igor Ivanovich Belanov


 유럽 축구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인 발롱도르. 매년 유럽최우수선수에게 주는 이 상을 탔던 축구선수의 국적을 살펴본다면, 축구강국들이 어떤나라였는지 살펴보는데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3회이상 발롱도르 선수를 배출한 나라는 9개국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제외한다면, 발롱도르를 잔뜩 배출한 나라들은 이른바 유럽의 주요리그들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지요. 독일, 네덜란드, 잉글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나머지 한 자리를 바로 구소련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소련에는 야신과 블로힌이 앞서서 이 상을 받았고, 또한 오늘의 주인공인 이고르 벨라노프 선수가 1986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면서 당당히 소련에서 세 번째로 발롱도르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야기 속으로 오늘은 출발해 볼까요.

 프로필

 이름 : Igor Belanov
 생년월일 : 1960년 9월 25일
 신장/체중 : 174cm / 70kg
 포지션 : FW
 국적 : 구소련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적)
 국가대표 : 33시합 8득점

 80년대 구소련의 에이스 스트라이커, 벨라노프.

 80년대 유럽 축구를 주름잡았던 발롱도르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초호화 멤버였습니다. 독일의 특급에이스 루메니게, 월드컵 우승주역 파올로로시, 프랑스의 장군님 플라티니, 오렌지삼총사 멤버인 반바스텐과 굴리트까지! 올드축구팬이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특급 레전드 들이었지요. 그런데 1986년은 조금 묘합니다. 그 해 수상한 선수는 이고르 벨라노프 라는 소련선수! 유독 그만이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가 실력도 없는데 발롱도르 같이 큰 상을 받았을 리는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당시 후보에 올랐던 선수들은 80년대 각각 잉글랜드와 스페인이 자랑하던 명공격수인 게리 리네커와 부트라게뇨 였고, 두 선수 모두 벨라노프에게 밀리면서 결국 발롱도르를 눈앞에서 놓쳐야만 했던 비운의 주인공들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벨라노프는 1986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전설의 스트라이커였습니다. 한 번 찬찬히 그의 전설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1960년 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는 오뎃사에서 태어난 벨라노프는 스무살 무렵 현지의 오뎃사에 있는 축구클럽에 입단하면서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뎃사에 있는 두 클럽을 오가면서 점차 실력을 발휘해 나가던 벨라노프. 결국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85년 명문 클럽인 디나모 키예프로 이적해 오게 됩니다.

 이것이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벨라노프는 스피드를 살린 쾌속드리블, 날카로운 슈팅을 주무기로 삼아서 소련의 에이스로 우뚝 서게 됩니다.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1985-86시즌에 소속팀 디나모 키예프는 UEFA컵위너스컵에서 우승을 따냈습니다! 당연히 소련 국내리그에서도, 국내컵대회에서도 벨라노프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우승을 싹쓸어 담아버립니다. 유럽클럽대항전이었던 UEFA컵위너스컵 결승에서 AT마드리드를 3-0 으로 대파하면서 우승을 차지했을 때, 사람들에게 벨라노프의 인상은 강하게 뇌리에 남게 됩니다.

 1986년 월드컵에서도 소련의 벨라노프는 귀중한 골을 넣으며 팀의 조별리그 돌파에 공헌을 했고, 토너먼트에서 벨기에를 만나게 되는데... 월드컵에서 벨라노프는 펄펄 날면서 골에 골을 폭발시킵니다!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그 실력을 화려하게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드문 일이지만, 해트트릭까지 했던 소련은 벨기에에 3-4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월드컵의 긴 역사에도 해트트릭 해놓고 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도 벨라노프의 활약이 강렬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80년대 소련에 떠오른 벨라노프는 일약 대활약을 펼치며 소련을 역시 강호로 불리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6년 10월에는 유로 예선이 열렸습니다. 지난 대회의 챔피언인 프랑스와 소련의 대결. 하지만 소련에는 벨라노프가 날고 있었고, 소련은 프랑스를 2-0 으로 물리치는 훌륭한 모습을 선보입니다. (프랑스는 결국 나중에 예선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 1986년 벨라노프는 소속팀에서도, 월드컵에서도, 유로예선에서도 강렬한 포스를 빛냈던 것입니다. 결국 1986년의 유럽최우수선수(발롱도르)는 이고르 벨라노프의 차지가 될 수 있었지요. 혹자는 월드컵우승, 유로우승도 안 해 본 선수에게 너무 높은 평가를 내렸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해 1986년 유럽축구계는 벨라노프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강렬한 인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소련의 마지막 슈퍼스타였지요.

 또한 1988년 유로도 잠깐 짚고 가야겠습니다. 소련은 조별리그에서 네덜란드까지 잡아내면서 조 1위로 준결승에 오릅니다. 이탈리아를 완파하고, 마침내 결승까지 오른 소련.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공교롭게도 다시금 네덜란드 였습니다. 네덜란드는 반 바스텐의 예술같은 골이 터지는 등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었지만, 소련은 슈팅이 골포스트를 때리는 불운을 맛보면서 이번에는 네덜란드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습니다. 끝내 소련은 0-2 로 패하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때의 네덜란드 오렌지 삼총사로 불린 반바스텐, 굴리트, 레이카르트의 전설적 활약은 유명했는데, 1988년 발롱도르에서는 세 선수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네덜란드를 조별리그에서나마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소련이었으니, 소련도 역시 80년대 강팀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소련의 선수들도 해외이적이 허용되어서, 벨라노프는 독일(보루시아MG)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독일의 '키커'축구잡지에서는 벨라노프가 온 것을 보며 "로켓"이 분데스리가에 왔다고 소란을 떨기도 했었지만, 아쉽게도 높은 기대만큼의 활약은 독일에서 펼치지 못했다고 평가받습니다. 30대가 넘어가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벨라노프 였기 때문이겠지요. 선수생활 마지막은 우크라이나로 돌아와서 두 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비록 그는 찬란하게 오래도록 빛나던 태양 같던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 중후반 로켓으로까지 평가받으며 세상을 놀라게 해주었던 혜성같이 반짝이던 축구스타였습니다. 벨라노프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겠지만, 80년대 쟁쟁한 슈퍼스타들 사이에서 당당히 발롱도르까지 차지했던 그의 이름은 세계 어딘가의 누군가의 가슴 속에는 멋진 추억으로 함께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이야기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