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클래스> 리뷰 (Entre les murs, 2008)

시북(허지수) 2010. 5. 24. 17:40


 프랑스 영화이자,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바 있는 클래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우선 사전정보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 허탈함과 충격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저는 로랑 캉테 감독이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를 심도 있게 찍었다던가, 철저하게 사실적으로 접근한다던가, 희망적인 메세지를 의도적으로 던지지 않는 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교실 내에서의 약간의 영화적 판타지를 바라면서 뭔가 감동적이거나, 가슴 뭉클한다거나, 학창 시절만의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클래스를 접했던 것입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랭선생님의 일방적이지 않은 상호 토론에 가까운 수업방식이 흥미로웠고, 또한 학생들을 자신의 기준에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참아주려는 모습에서 뭔가 희망을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울화통 터지지만, 그래도 참고 참는 그 모습은, 실제로 많은 현장에서의 선생님들의 고충이자 답답한 점이겠지요.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고... (웃음)

 로랑 캉테 감독에 의하면, 학교는 일종의 성역이자, 비밀 요새라는 표현을 씁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부모님이 실제로 알기 힘들고, 선생님들도 학교에서의 일들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국 학교의 현실을, 감옥, 심지어 입시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할 만큼, 학교에 대한 이 사실적인 표현들은 공감할 만한 지적입니다. 또한 로랑 캉테 감독은, 학교에 관한 영화는 많이 있어왔지만, 학교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 않다고 언급합니다. 이 점에서 클래스 라는 영화는 다소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스는 학교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에피소드를 부각시키지도 않고, 충분히 그리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 예나 지금이나 뒷자리에 앉아서 반항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불량한 아이들의 모습,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어서 노터치를 해달라는 아이, 어딘가 또래 집단과 달라서 놀림 받는 아이 등... 재밌는 것은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의 내면을 무리하게 파고들어가지 않고, 분석하지 않으며, 아이의 고민을 우리가 함부로 쉽게 알 수 없음을 무덤덤하게 그려냅니다. 그것을 긍정적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의 존중 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쩐지 조금 불편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너 대체 왜 그러는거야?" 나도 궁금하고, 관객들도 궁금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영화는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영화적 접근이 "현실적" 이라고 불리는 까닭이겠지요. 다만 그 속에서 주제를 찾는다고 한다면, 학교는 갈등도 있지만 또한 화합도 있고, 때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그 희미한 메세지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느껴졌습니다. 로랑 캉테 감독도 그 점을 관객들이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경험과 순간들이 지나가는 학교의 모습들을 비추고, 그것을 보면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 영화의 중요한 주제라면 역시 "관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관계" 말 자체는 참 좋은데 영화에서는 내내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긴장과 혼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말 듣지 않고, 선생님은 또 답답함에 울화통 터지고... 영화의 백미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

 마랭선생님은 잘못된 태도를 보이는 학생과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혼자 남아서 속상한 나머지 의자를 걷어차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공감 5만표를 던지고 싶은 장면! 학생들이 내 말을 따라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리 인성이 좋고, 인내심이 뛰어나고, 세상과의 열린 시선을 가지고 있는 교사일지라도, 한계는 그렇게 늘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타고난 좋은 교사는 없다,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교사가 있을 뿐이다. 그렇겠지요. 아, 그리고 마랭선생님은 이상적인 교사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히어로나 멋쟁이도 아닙니다. 그냥 주어진 자리를 살아가고 고민하는 사람으로만 그려집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 "나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학생들의 솔직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 이번에는 공감 50만표!!! 사람은 의외로(?) 남에 대해서 말하기는 좋아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기 어려워하지요. 뭐, 여하튼 좋은 수업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학생들의 관심사를 이해해 주려고 하고, 좋은 점에는 칭찬을 보내는 마랭 선생님은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더 재밌는 씬이라면,

 "이런 거 요즘에 쓰는 데도 없어요. 배워서 뭐해요." 아~ 그야말로 학생들의 논리정연한 공격에 마랭 선생님은 쩔쩔 맵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생각해보면 참 좋았습니다. "닥치고 배워! 배워서 남주냐! 시험에 나온다!" 쉽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수학에서의 로그를 천문학에서나 많이 쓰고, 실생활에서는 거의 안 쓰듯이 - 프랑스어의 정확한 문법 표현은 일부의 계층 사람 말고는 잘 쓰지 않는다고 맹렬하게 비판하는 아이들에게, 마랭 선생님은 차분하게 답합니다. 너희들 말이 옳아, 그래도 다양한 표현과 방식들을 읽어낸다면 세상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막힌 현답이라 생각합니다. 리영희 선생님이 "외국어는 세계를 보는 하나의 창"이라고 말하며, 하나의 언어를 더 배우면 하나의 창을 더 갖게 되는 셈이라고 언급한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배우면 좀 더 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논리가 아이들에게 쉽게 통할리가 없겠고요 (웃음)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훌륭한, 또는 그럴싸한 대안을 기대했습니다만, 그 어떠한 대안도 내밀지 않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지내고 있다. 이것이 학교의 솔직한 모습이다. 크... 그렇게 계속 비추기만 할 뿐입니다. 심지어, 불량한 학생이 끝내 퇴학 당하는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마랭 선생님은 그저 담담하게 학생의 편도, 선생의 편도 일방적으로 서지 않은 채,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듯 보입니다. 그렇게 1년이 가고, 한 학년이 끝나가고, 저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느끼고, 생각해 보면서, 시간이 흐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하는 책상과 걸상들을 남긴 채 말입니다.

 정리되지 못하는 뒷맛을 남기는 것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하겠네요. 뭔가 흐뭇한 광경을 기대하고 본 분이라면 필경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것이고, 무엇인가 복잡한 교실의 환경 속에서 답을 발견하고 싶었던 분이라면, 오히려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웃음) 어쩌면 "이 영화, 대체 뭐지..." 라고 생각할지도. 솔직히 이런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주는 프랑스 사람들의 세계관이 역시 뭔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구요. 90년대 후반부터 사회문제 등을 정면으로 부각시키는 영화들이 나타났고, 그 대표 주자 중에 한 명이 로랑 캉테 감독이라고는 해도, 역시 현실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질문?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랑 캉테는 예전에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주지 않는다. 사회적 그룹과 개인 간의 갈등이 나의 주된 관심사다." 개인적으로 답을 내린다면 어려운 수학 문제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답은 보이지 않고, 직접 풀어내야 하고, 마주해야만 하는 사회적 문제. 차라리 외면하고 포기하면 편하지요. 그럼에도, 계속 이 현실을 응시하고 바라본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바꾸겠다, 저렇게 바꾸겠다,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쉬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현실 앞에서는 갈등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살아나간다는 것을 그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 클래스. ★4를 주겠습니다. 감동의 영화가 아닌, 현실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많은 경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는 다릅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이 아름다움만 강조해서 화장실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서, 궁전 뒷편에 오물이 가득했다 합니다. 현대의 집은 이제 안방 안에도 화장실을 놓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이는 쪽이 현명한 것입니다. 불편해도 사실을 그대로 보고, 거기서 출발해서 답을 찾기 시작한다. 그 접근법을 몇 번이고 되새겨 보면서 글을 마칩니다. 리뷰조차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라 사뭇 죄송합니다. - 2010.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