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맨유를 부활시킨 아이콘, 마크 휴즈 이야기

시북(허지수) 2010. 11. 4. 14:48

 지금은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현역시절에 이름 좀 날렸던 스타플레이어들은 종종 있습니다.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도 현역시절 대단한 인기스타였지요. 오늘은 2010년 11월 현재, EPL의 풀럼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마크 휴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도 역시 현역시절에는 "맨유의 전설"로 불릴 만한, 인기스타 였으니 말입니다 :) 자, 그럼 출발합니다.

 프로필

 이름 : Leslie Mark Hughes
 생년월일 : 1963년 11월 1일
 신장/체중 : 178cm / 75kg
 포지션 : FW
 국적 : 웨일즈
 국가대표 : 72시합 16득점


 맨유가 화려한 시절을 보내기 까지 - 마크 휴즈의 눈부신 활약들

 개인적인 잡담 하나 덧붙이면서 글을 시작하자면, 저는 20대 시절에 나이키, 아디다스 멀티샵 매장에서 1년 가까이 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탓인지, 맨유 하면 나이키, 리버풀 하면 아디다스 라는 게 매우 익숙합니다. 사진을 보다 뭔가 신기한데, 라고 생각이 든 것은 맨유 + 아디다스 유니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크 휴즈가 뛰던 당시가 꽤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약 20년 넘게 훌쩍 과거로 돌려서 마크 휴즈의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맨유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했던 마크 휴즈는, 1983년 드디어 프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은 빨리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1984-85시즌 부터는 완전히 주전이자, 중심선수로 활약하면서 16골을 몰아넣는 공격수로 성장한 것입니다. PFA 최우수 영플레이어 상을 획득합니다. 이듬해에도 17골을 넣는 등 스트라이커로 그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휴즈는 이제 중대한 이적을 하기에 이릅니다. 지금이야 맨유가 워낙 포스가 대단하지만,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맨유는 우승과 인연이 없는 침체기였지요. 이 시절의 잉글랜드 명문이라면 단연 리버풀이 머릿 속에 떠오르고 말이지요. (아! 요즘 리버풀은 ㅜ.ㅜ...)

 여하튼 마크 휴즈는 - 에버턴에서 뛰고 있던 잉글랜드 특급 게리 리네커와 함께 - 스페인의 명문팀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적한 뒤 휴즈만의 특색있고 멋진 플레이는 펼쳐지지 못하고 맙니다. 한편 리네커는 20골 넘게 몰아치며 라리가에 와서도 잘만 차고 있다보니, 휴즈는 비교도 당하고 "아 저 친구는 골도 못 넣고 별로야~ 완전 별로야~" 이런 비난과 굴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불과 1년만에 이번에는 독일의 명문팀 바이에른뮌헨으로 임대를 갑니다. 뮌헨에서도 휴즈는 중심선수로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마크 휴즈의 2년간의 해외 명문팀 활약상은 탐방(?) 수준이 되었고, 별다른 소득없이 끝나고 말았지요. 맨유에게는 어쩌면 이것이 매우 축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마크 휴즈는 맨유로 "컴백홈" 하니까요.

 80년대 중반 그 유명한 퍼거슨 감독이 부임하였고, 마크 휴즈는 친청팀에서 정말 화려하게(!) 재기하면서 존재감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마크 휴즈는 "스타성"이 충분했습니다. 호쾌한 슈팅으로 시선을 사로 잡았고, 두려움 없이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도 매력적입니다. 강한 슈팅력으로 골을 잘 넣는 것 외에도, 힘이 좋아서 전방에서 포스트플레이를 잘 펼쳤는데, 퍼거슨 감독도 마크 휴즈를 매우 비중있게 활용합니다. 맨유로 돌아온 이후 마크 휴즈는 6시즌 연속으로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지요. 혹자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스타일의 센터포워드가 마크 휴즈였다 라고 평합니다.

 맨유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은 마크 휴즈는, 1989년과 1991년 두 번씩이나 선수단이 선정한 잉글랜드리그MVP로 선정될 만큼, 걸출한 존재감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팀이 강화되어 나가던 맨유는 마침내, 드디어, 급기야! 90년대 부터 화려한 시절을 보내기 시작하지요. 1992-93시즌 마크 휴즈는 41시합이나 출장하고 15골을 넣으며 팀에 큰 공헌을 했고, 에릭 칸토나 등 멤버들이 뛰어났던 맨유는 26년만에 대망의 리그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해서, 90년대에만 맨유는 5번이나 리그우승을 차지했고, 99년에는 유명한 트레블(삼관왕)을 차지하기도 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지요. 그 부활의 원동력이라면, 역시 마크 휴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팬들도 그를 스파키 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큰 사랑을 보냈습니다. 고마워요 스파키!!!

 90년대 중반 맨유는 한 차례의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합니다. 칼바람이 불면서 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그라운드를 누볐고, 이것은 크게 성공을 거두지요. 그런데 이제 노장 취급 받던 마크 휴즈도 칼바람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30대 중반에 가까워져 갔고, 이제 마크 휴즈는 첼시로 이적해서 지안프랑코 졸라 등과 함께 활약하게 됩니다.
 
 첼시에 와서도 베테랑 답게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활약했고, 마크 휴즈는 중심선수로 뛰면서 괜찮은 활약상을 펼쳤습니다. 1997년에는 이례적으로 현역임에도 MBE 훈장을 받기도 했고요. (이 대목은 정상에서 은퇴하겠다면서 31세로 맨유에서 은퇴해버린 "킹" 에릭 칸토나와 상당히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어떤 선택이 더 낫냐고 굳이 가치판단할 필요는 없으며, 다만 저는 나이가 들어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노장들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즉, 반드시 정상에서 은퇴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베테랑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고요. 뭐, 칸토나 쪽이 폼은 좀 더 나겠지만요. 하하.)

 이후에도 마크 휴즈는 사우스햄튼, 에버턴, 블랙번에서 노장선수로 활약하면서 그라운드에 대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현역 마지막 무렵에는 공격수로 예전만 못하자 아예 포지션을 조정해서 미드필더로 뛰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승리에 공헌해 나가지요. 2000-01시즌에는 우리나이로 39살의 나이로 29시합에 출장하며 소속팀 블랙번의 1부리그 승격에 공헌하였고, 현역 마지막인 2001-02시즌도 프리미어리그에서 21시합을 소화합니다. 그는 공식 리그경기만 무려 606시합을 뛰었지요. 이것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은퇴라고 해야겠지요 ^^ 한편 웨일즈 국적이다보니 국가대표로 72시합 16득점의 기록을 남기지만, 라이언 긱스와 마찬가지로 유로나 월드컵 같은 큰 무대는 나가보지 못했지요. 덕분에 마크 휴즈의 세계적인 지명도는 다소 낮아진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최고의 순간은 비교적 잘 기억해 냅니다. 2002년 한국의 4강 뒤에다가 신화 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고, 또 월드컵 우승, 챔스 우승 같은 것을 해내면 누구나 박수쳐 줍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었던 스타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맨유가 90년대 부활할 수 있도록 90년대 초반 아이콘으로 활약하던 마크 휴즈를 그래서 오늘은 꽤 비중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고요 :) 초창기 지도자 시절인 웨일즈 대표팀 감독할 때는 강호 이탈리아도 잡고, 꽤 돌풍을 일으켰는데... 비교적 최근 경력인 맨시티 감독 시절에는 부진으로 해임당하는 바람에 또 약간의 걱정도 되고, 뭐 이제 풀럼 감독을 맡고 있으니 또 알아서 잘 해보시겠지요 (웃음)

 이제 이야기를 마치면서, 유튜브에서 발췌한 마크 휴즈 골장면을 덧붙입니다. 호쾌한 공격수의 골퍼레이드를 보는 것은 역시나 눈이 즐겁네요.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마크 휴즈 감독을 TV에서 보면, 주변 분들에게 저 감독 공 좀 차던 무서운 사람이었어 라고 소개해 보세요. 하하. 아무쪼록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