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10 1986년 월드컵, 또 한 명의 영웅 호르헤 부르차가

시북(허지수) 2020. 8. 18. 13:58

 

 좋은 단짝 친구가 있으면 참 행복하지 않나 싶습니다. 더욱이 같은 일을 하는데, 마음이 잘 맞는 파트너와 함께 일을 하게 되면, 한결 더 즐거워 지겠지요. 축구에서도 비슷한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력이 좋지만 호흡이 맞지 않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절묘한 패스를 멋지게 받아서 확실하게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요. 다시 말해, 패스가 탁월해도, 받을 사람과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 일수도 있습니다.

 

 프로필

 

 이름 : Jorge Luis Burruchaga
 생년월일 : 1962년 10월 9일
 신장/체중 : 177cm / 75kg
 포지션 : MF, FW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59시합 13득점

 

 86월드컵, 결승골의 주인공 호르헤 부르차가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부르차가 선수는 귀중한 공격재원이었습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로 공격수부터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플레이 할 수 있었고, 둘째로 높은 테크닉과 확실한 결정력이 주무기 였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라도나와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이지요 :)

 

 아르헨티나에는 잘 알려진 3대 클럽으로, 보카 주니어스, 리버 플레이트, 그리고 인데펜디엔테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부르차가는 2부리그에 있던 아르세날FC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실력을 인정받으며 1982년 명문팀 인데펜디엔테에 입성하게 됩니다. 데뷔 이후 부르차가는 단연 중심선수로 활약을 펼쳐나갔으며, 소속팀도 1983년 전기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뿐만 아니라 1984년 남미의 챔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참가해 많은 득점을 올리며, 인데펜디엔테를 남미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대회 득점왕도 6골을 올렸던 부르차가였지요. 이런 명선수라면 당연히, 80년대 아르헨 국가대표로도 발탁되면서 활약했고요 :)

 

 국가대표로 활약을 살펴보자면, 1983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서 3골을 넣는데, 이 때도 득점왕을 차지합니다. 이렇듯 소속팀의 에이스와 대표팀의 멤버로 명성이 알려지자, 1985년 유럽진출을 하는데, 프랑스의 FC낭트에 몸담게 됩니다.

 

 1986년 월드컵이 열리자, 부르차가에 등번호 7번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지요. 모든 경기에 출장했으며,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한 방을 터뜨린 것입니다! 1986년 월드컵 결승전 아르헨티나 vs 서독전이 열립니다. 8강과 4강에서 마라도나의 미친 존재감을 잘 보아왔던 서독은 마라도나를 막아야만 했습니다. 힘겹게 올라온 서독이었기에, 대회 아이돌 마라도나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었겠지요. 아르헨티나는 그러나 공격도 수비도 강했습니다. 먼저 두 골을 넣으며 2-0 으로 앞서가지요. 서독은 게르만의 투혼을 발휘하며 80년대 명공격수 루메니게와 루디 푈러의 골로 간신히 2-2로 따라붙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등번호 10번 (마라도나) 과 등번호 7번 (부르차가) 을 막판에 막지 못했지요.

 

 전술적인 방어막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마라도나의 절묘한 뒷공간 패스가 작렬합니다. 아뿔싸 하는 순간 이미 늦었습니다. 중앙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저 선수가 보입니다. 부르차가 입니다. 80년대 부르차가의 득점력은 몇 번이나 검증된 바 있었지요. 이번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공을 받은 부르차가는 그대로 드리블 질주를 펼쳤고, 정확한 슈팅을 날리며, 서독을 침몰시킵니다. 마라도나의 훌륭한 패스를 받은, 브루차가의 훌륭한 드리블, 그리고 정확한 결정력까지. 그야말로 중요한 경기에서 최고의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결승전의 공동 MOM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환상적이고, 역사적인 골로, 아르헨티나는 1986년 월드컵 정상에 섭니다.

 

 이후에도 부르차가는 아르헨티나의 국민적 영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1990년 월드컵에도 참가한 바 있습니다. 90년 월드컵에서도 부르차가는 중요한 승부차기 때마다 키커로 나서서 성공시키며, 결승진출에 공헌한 바 있습니다. 결승에서는 막강한 조직축구를 보여주던 서독에게 아쉽게 0-1로 패배했고요. 이후 국가대표를 은퇴합니다. 국대 59시합 13득점이라는 커리어를 남기고요. 클럽팀에서는 프랑스리그에서 장기간 활약하다가, 1995년 고국으로 복귀, 인데펜디엔테에서 98년까지 활약한 후 은퇴했습니다. 그 후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고요.

 

 많은 경우가 그렇듯이, 부르차가는 반짝 스타가 아닌, 준비된 스타였습니다. 이미 남미 챔스와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이었고, 그 명성 그대로 좋은 기회를 잡아채며, 월드컵 스타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마라도나의 영혼의 파트너, 부르차가! 로 정리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 다음에 또 만나요.

 

 2011. 03. 08. 초안작성.

 2020. 08. 18.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