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04년3월14일/큰 용사여 일어나라(청년설교10)/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4. 22. 22:25

-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

1.또 다시 범죄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가나안의 하솔왕 야빈을 격파하고
지난 40년간을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 40년 평화롭게 살게되자 이 사람들의 고질적인 죄악성이 피어오릅니다
바로 욕정입니다
성경6장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도데체 무슨 악을 행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2.바알에 미친 이스라엘

본문에는 단순히 또 악을 행했다고 했지만
실제로 히브리원문에는 ‘악’ 앞에 정관사 ‘그’를 붙여서 바로 ‘그 악’이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숙명적으로 되풀이해서 빠졌던 죄악인
바알과 아세라 숭배 즉 우상숭배의 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가 왜 욕정입니까?

그리고 도데체 바알과 아세라가 어떤 신이길래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끊임없는 징계를 받으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몸이 조금만 편해지면 미친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에게 달려갔던 것일까요?

6장에 나와있는 이표현은 사사기 4장1절에 그리고 3장 7절과 12절에 나와있는 표현과 동일합니다
바알과 아세라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특별히 영험해서일까요?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 바로 그 하나님 여호와 대신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이 바알과 아세라는 이제 아무도 안 섬기는 것을 보면 전혀 어떠한 염험도 없었음이 확실합니다
물론 사탄이 이 바알과 아세라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가끔가다 그 장소에서 역사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바알과 아세라 자체는 말하지 못하는 단순한 돌멩이와 나무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도데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미친듯이 수많은 역사의 교훈을 받고서도
조금만 몸이 편안해지면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간 것일까요?
바로 그게 욕정 거꾸로 말하면 정욕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실 이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큼 재미있습니다
아니 재미가 아니라 열광적이고 몰입시키고 거의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게 합니다

허참 성령의 역사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까?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예배는 한마디로 말하면 스트립쇼와 집단 혼무
그리고 혼음으로 이어지는 광란의 섹스파티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전에는 예배의식을 수행하는 ‘성스러운 창녀’들이 있었고
심지어는 ‘성스러운 남창’ 그리고 더한 것은 수간용으로 사용되는 염소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남색과 수간을 가증히 여겨서 돌로 쳐죽이라고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정도면 이해가 되십니까?
엄숙하고 거룩하며 단조롭고 기름냄새와 피비린내 진동하는
그리고 아까운 제물을 낭비하는 여호와 예배와 관능적이고 향락적이며
인간의 말초적 본능을 최대한 자극하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예배행위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아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3.재미있는 예배가 능사가 아니다

저는 오늘의 우리예배를 돌이켜서 한번 여기에 대입시켜 봅니다
아무리 우리 예배를 재미있게 한다고 해도 세상이 주는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예배를 아무리 재미있게 꾸며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죠
나이트에서 춤추고 미남 미녀들과 향략을 즐기는 것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 하고는 아예 기본자체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재미라는 관점에서는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배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실 때만이 이러한 세상적인 재미를 능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지 않는다면 예배는 정말 지루하고 딱딱하며
공연히 시간만을 축내는 비생산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더 퇴페적일수록 더 향락적일수록 그리고 즐기면 즐길수록
더 더 더 신에게 잘 예배한것이 되고 더 많은 복을 준다는데
도대체 누가 이 신을 안섬기려 하겠습니까?

여하튼 이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나면 바알과 아세라에게 달려가곤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시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모든 이방족속들을 멸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셨던 것이지요

촌놈들이 도시문명의 화려함과 향락을 일단 한번 맛본다면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촌에서 그냥 눌러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마약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약을 일단 한번 맛보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까지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정부는 이러한 마약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마약밀수와 매매을 최대의 범죄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단속하고 발본색원하려고
엄청난 예산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들면 결국 너희는 죽는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징계하고 훈계하며 채찍질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되십니까

4.미디안에게까지 당하는 이스라엘

여하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히 섬기다가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당했는데 이번에는 딱 칠년동안 미디안 사람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칠년이라 ...........
이상하게도 형벌이 너무 가벼운것 같습니다

바로 이전에 이스라엘은 동일한 범죄로 20년동안 가나안의 하솔왕 야빈을 섬겼는데
어째서 겨우 7년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이 들어서 조금 덜 범죄했나?

하하 여러분 그런 것이 아닙니다
1절에 보면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라는 구절을 직역하면
“그가 그들을 미디안에게 주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아래 있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손에 내맡겨지게 되었단 말입니다

미디안족속은 이스라엘과 결코 관계가 없는 민족은 아닙니다
모세의 장인이 바로 이 미디안족의 제사장아닙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에 백부장 , 천부장 제도를 마련한 것이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 미디안족속이 이스라엘에 큰 도움을 준 우호적인 이웃이었는데
이제 여호와의 보호의 손길이 떠나가자 즉시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어서는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7년을 지배하는데 햇수는 짧지만
그 강도는 이제까지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5.망각된 경고의 말씀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여러분
원래 하나님은 우리의 산성과 피난처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하나님 대신에 인간들이
스스로를 위하여 피난처와 산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에 피난하려고 했지만 식량을 위하여
그들이 곡식을 파종하고나면 3,4절에 미디안사람, 아말렉사람, 동방사람들이 쳐들어와서는
이스라엘의 밭에다가 자기네 가축을 풀어서는 모든 식물들을 먹어치우게 합니다

자기네만 산에 피하고 굴에 숨어있으면 뭐합니까
자기네의 밭이 모조리 황폐해지고 토지 소산이 없어지는데...
사실 하나님은 이미 신명기 28:15,33절에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며 행하지 아니하면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라고 경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바알과 아세라에 미쳐있던 백성들인지라
그런 경고의 말씀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른단 말입니다
알수가 없죠. 뭐 성경을 보기를 해야 그런 말씀이 적혀있는지를 알지.............

6.가혹한 채찍

뿐만아니라 한두 민족이 아니라 거의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힌것 같습니다.
동방사람이라고 한걸 보면 하란, 모압, 에돔, 아랍족속들이 미디안의 약탈과 함께 떼를 지어
이스라엘에게로 쳐들어 온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토지소산을 모두 먹어치우고는
이스라엘의 소나 양 이나 나귀도 몽땅 끌고가 버렸습니다
가나안의 북에서부터 남쪽에 이르기까지 그 땅에 식물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무자비한 약탈과 침략행위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산속에 숨어서 자기네 땅에서 자기네가 지어놓은 곡식들을 먹으며
그것도 인간들이 먹는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먹으며 자기의 가축들을 끌어가고
촌락을 파괴하는 미디안과 여타 족속들을 바라보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서워서
아무도 나와서 싸울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7.다시 부르짖는 이스라엘

매년 이렇게 7년을 계속하게 되니 마침내 이스라엘 인들은
인간적인 정욕에서 벗어나 참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그 앞에서 음란하게 춤을 추고 음행을 일삼으며 경배해도
바알과 아세라는 어떤 구원도 베풀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들 참!
그렇게 고난을 당하지 않고 채찍에 맞지 않고 평안할 때
하나님 안에 거할줄 모르다가 호되게 당해서 죽기 직전에야 겨우 하나님을 찾다니 참 인간이란!
그러나 뭐 죽기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것 보다는 그래도 낫습니다

8.하나님의 응답

계속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마침내 응답하셨는데
한 선지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고 그 땅은 내가 준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그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너희가 내말을 안들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지금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만든건
바로 너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당신이 계시다면
어찌 우리에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이야기 하지만
이 모든 악과 불행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에게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의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
미디안과 동방사람들의 약탈과 압제가 계속되자 계속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에게 불평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기네에게 아무 힘도 주지 못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계속해서
음란히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참
자기네가 미디안이나 아말렉 사람들 그리고 다른 동방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
그들은 그 사람들의 신이 하나님보다 더 세기 때문에 그 신들을 섬겨야 자기네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뭐 어차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다는 건 자기네의 쾌락이 점점 더해가는 거니깐
전혀 손해가 아닙니다
광야에서 찌는듯한 무더위 가운데 서서
제물의 각을 뜨고 태워서 또는 삶아서 제사를 지내고 자기네는 서서 그걸 보는것 보다는
자기네에게 쾌락을 주는 좋은 신을 잘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자 그들은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 땅의 신, 즉 농경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되었더라는 말입니다

바람과 비를 주관한다는 바알과 풍요의 신인 아세라를 섬겨야 농사도 잘되고 새로운 땅에서
잘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겁니다

이제까지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여호와는 산의 신이고
유목민의 신이므로 옛날 말이지 농사를 짓고 있는 지금 섬길 신은 아니라 이겁니다
이건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정말 황당한 사람들입니다
이러니 하나님이 어찌 징계의 채찍을 들지 않으시겠습니까?

9.마침내 기드온이 등장하다

갑자기 성경은 여호와의사자가 오브라의 상수리나무 아래 앉았는데 마침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 몰래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기드온의 등장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하는고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무어라고 대답합니까?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하나님의 그 이적이 어디있나이까?
그리고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러분
솔직히 이 앞절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금 너희가 당하는 고통이 너희가 나를 버리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지금 그 말은 못들었는지 하나님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어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불평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 붙이셔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괴롭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금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기드온은 결코 큰 용사가 아닙니다

이사람은 지금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서 포도주틀에서
몰래 곡식을 빻고 있던 겁쟁이입니다
또 사람들은 먹을것이 없어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산에 숨어살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는 먹을것이 있으므로 이웃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현실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지않고
아니 아예 그런생각조차 없이 내 한목숨 살면 된다고
숨어서 곡식이나 빻고 있는 뻔뻔한 자이기도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네의 죄 때문에
자기들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은 꿈에도없이 오히려

하나님 당신이 우리 고통의 원흉이라고 외치는 후안무치한 무식장이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큰용사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찾아오신것에 대한 감격이나 두려움도 없고
그냥 천연덕스럽게 원망이나 늘어놓고 있는 영적 불감증에 걸린 불평장이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불평해야 겠습니다
하나님 뭐 저런 것을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까?
그렇게도 사람이 없습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말씀하시되
너는 이 네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냈다 라고 하셨는데 이 사람의 대답은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처음답은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집에서 제일 작은자니이다

지금 하나님이 친히 그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보내노니 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자 기드온은 자기는 힘이 없어서 도저히 못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겸손해서 그런 말을 한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천성적으로 비겁한 자이고 노예근성을 가진 자입니다

현실을 파악하는 역사적 안목도 없고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건전한 기독교인다운 자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한몸 무사한 걸로 만족하며
세상이 잘못되는 것은 무조건 하나님탓으로 너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한심한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그리고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사람을 치듯하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쯤되면 왠만한 사람이라면 그럼 제가 한번 해보지요 정도는 될겁니다
아무리 겁쟁이고 꿈이없는 소시민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이 사람은 대뜸 그러면 하나님 저에게 표징을 보여주십시오
참 나 이제는 이적을 보여달랍니다
그리고 내가 준비를 할동안 어디 가지말고 나를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가서 뭘 가져왔나 보십시오

염소새끼하나, 고운 가루 한 에바, 한소쿠리의 고기, 한양푼이에 가득한 국
아마 염소새끼를 잡아서 고기와 국을 만든것 같은데...........

이만하면 당시에는 엄청난 호화판입니다
모두들 먹을게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산속 동굴에서 전전긍긍하던때에
이정도 음식을 가져올 정도라면 기드온의 집에는 양식이 어느정도는 넉넉하게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의 불행에 눈을 감았는지도 모릅니다

지킬게 너무 많아서....이걸로도 충분한데 ...............
괜히 뭐 큰용사니 뭐니 떠들어서 독립군을 일으켜봐야 ............... 뭐 어차피 이길것 같지도 않고

여호와의 사자가 국을 쏟은 반석에서 불이나오게 하고 그 불을 타고 떠나 버리자
비로소 기드온은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슬프다고 부르짖는데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므로 이제는 죽게 되었다고 슬퍼합니다

이 사람은 이 순간에도 오로지 자기의 목숨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고 하니 안심하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은 원문상으로는 “너에게 평강!”이런 뜻입니다
샬롬이라고 하지요
참 지금 하나님은 네가 안죽을테니 너무 떨지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드온은 아무리 봐도 기가 찬 사람입니다
아마 하나님역시 이 기드온을 잘 알았던것 같습니다

성경에 기드온은 단지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다라고만 말하고 슬프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가 자기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뭐 비겁한 졸장부가 자기목숨외에 무엇 때문에 슬퍼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웃들이 못살겠다고 외쳐도 나만 살수있으면 되지
내가 왜 다른이들을 돌아보아야해! 하며 이웃의 불행과 고통과 억울함과 불의에 눈감지 않습니까?

지금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어도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하며
나자신만을 돌보고 있지않습니까?

큰용사여 일어서라!고 주님이 말씀하실때에 조차
하나님 전 큰용사고 뭐고 필요없습니다. 전 극히 하잘것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닙니까?

그리고 분명히 우리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당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살고 있습니다 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의 탓을 하며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일어서라고 하는 하나님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왜 그모양입니까?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를 회피하고는 그 책임은 하나님에게 지우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과연 하나님앞에 큰 용사입니까?
그래서 이 누란에 처한 나라를 구할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에게 곡식이 있고 그래도 종도 있고 살만하니
아예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던지 나만 내 가족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소시민에 불과합니까?

하나님은 이제까지 소시민적이고 비겁하고 소극적인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큰 용사여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이제 네가 일어나서 나를 의지하여 이 나라를 구원하라고 하실 때
주의 명령에 순종하고 큰 용사로 일어서는
그래서 나라를 구하는 이 사회를 구하는 그런 강력한 믿음의 큰 용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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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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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2012. 04. 누란(쌓아올린 계란)이라는 말은 우리 또래인 오늘날의 2030세대에서는 잘 쓰이지 않으나, 386세대인 홍목사님이나, 조국교수님과 같은 분들에게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이 설교문은 마침 지금 시절을 빗대는 듯한 엄중한 목소리로, 현실 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누란지위의 나라, 한국사람은 외국사람들에게 으르렁 거리고, 일부 외국사람은 한국사람을 함부로 막 대하고, 밑에서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느라 거의 임금은 올라가지 않는 이상한 나라. 물가는 황당하게 오르곤 하는 나라. 빈부의 양극화는 극도로 심해져서 박경철 원장님의 비유처럼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빈부차이가 너무도 심합니다. 대자본의 기회는 한량없이 연해있고, 가난한 자는 송곳을 세울 곳도 없습니다" 위태위태한 나라.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소심하게 살아가는 기드온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듯이, 어쩌면 지금 나약한 우리를 통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라고, 보다 바르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라고, 오늘 이 순간도 촉구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것을 보면서,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이 질문이 온종일 가슴을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