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감사40. 나는 누구인가? 질문 앞에서

시북(허지수) 2019. 12. 21. 23:11

 

 이상한 감정이었다. 왜 자존감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나는 누구인가? 가 계속 떠올랐을까. 난이도 높은 질문이었다.

 행복을 위한 관점, 시간을 얻기 위한 관점에서, 제거를 계속해서 선택해 왔는데...

 하나씩 연속해서 지우고 나니까, 끝내 몇 안 되는 내가 남았다.

 단점을 나열해보고, 장점을 나열해보니까, 빈약한 추수에 매우 괴로웠다. 그랬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인가 잘려나갔다는 단절감 마저 느껴졌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애써 시간을 만들면, 그 비워진 시간 동안, 깊이 생각하고, 멋진 책을 읽는 고급진 내가 될까?

 책을 사랑하는 애독가이시면서, 또한 한편으로 내가 무척 존경하는 정혜윤 작가님처럼 될까?

 아무렴~ 어림 없지. 책읽는 일반인 코스프레는 관두자. 그것조차 가면이 아닐까!

 

 나에게 맞춤 선물을 준다면 무엇일까? 즐거움을 선택한다면 무엇일까?

 어쩌면 책을 읽는 내 모습도 하나의 나 이겠지만, 역시 게임 속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도 있었다.

 얼마만이었을까? 나에게 어울리는 게임타이틀을 셀프 선물을 해보았다.

 

 내가 아니라며 멀리했던 음악게임들도 다시금 차례차례 스마트폰 메인화면으로 끌어당겨 놓았다.

 나는 금욕하며 수도자의 길을 걸을만큼의 훌륭한 사람이 아님을 선명하게 "발견"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놀면서도, 게다가 길을 빙글빙글 돌아가면서도, 썩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강박증을 버린다면, 얼마나 더욱 행복할까?

 리그 1등, 탑티어 편성, 4성 혹은 SSR집착을 버린다면 얼마나 더욱 행복할까?

 

 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은 사랑하는 음악 (리듬) 게임들이 아니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였다.

 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은 완벽주의 였다.

 

 여러가지로 미완성인 것들을, 이미 가진만큼 충분히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 했다. 그 길이었다.

 아끼는 여사친과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채워가면 그만이었다. 행복은 너무 가까이에 있다.

 

 나는 좀 더 노력하는 게이머가 될 것이다.

 약하고, 또 얻어터져서 1,000등 안에도 앞으로 못 들어가겠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주어진 시간을, 그 누구보다 즐겁게 살아가고자 노력할테다.

 

 그리고 더욱 솔직히 말해서, 그 편이 정신장애를 안고 계신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며,

 고통의 현실을 견뎌내야 할, 지독히 무거운 내 삶의 무게라 생각한다.

 나는 이 현실조차 긍정할 만큼, 시간을 소중히 재밌게 살고 싶다.

 

 내 마음의 강건함을 유지하면서, 돈을 벌고 즐겁게 사는 모습이, 한편의 효도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 치매 어머님을 모시다가, 현실에 절망해 지독한 우울증에 걸리는 일화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제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게이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SNS로 함께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갈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내 몫의 고통마저 덜어주려고, 함께 웃고자 노력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서 사는 맛이 더욱 뿌듯한, 자랑스러운 게이머다.

 

 제이엘님, 감꼭지님, 만화광님, 사이밥스타님 등께 감사를 함께 전하며

 

 - 2019. 12. 21. 사랑스러운 나를 만나고, 존중하며.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