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1 기적 앞에서, 나는 수중캔디를 먹겠어요.

시북(허지수) 2020. 4. 23. 01:55

 

 2020년. 그 어떤 날도 밥벌이가 고단한 날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우기는 고객한테 연신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어느덧, 거의 마흔. 나이를 속일 수 없는지, 여기저기 몸이 아파왔습니다. 간병 중인 어머님의 정신장애는 깊어져서, 간단한 한자리 덧셈도 어려워 졌습니다. 그나마 저를 무너지지 않게, 꾸준히 방패가 되어 보호해주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은 덕질생활과 여전히 나를 아껴주는 분들. 그리고 김병수 선생님의 의학 블로그에도 종종 놀러가곤 했습니다.

 

 슬픔으로 물든 괴로운 밤,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뜨니 구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 블로그 활동으로 100불이 입금되었네요. 13년차... 이 소소한 블로그를 아직도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많다... 첫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일하면서 한 번씩 즐겨 듣는 배철수 아저씨의 라디오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소개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두 번째 기적이 전해집니다. 요점은 소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뭐 어떠랴, 시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과업을 만들어라. 그 말이 소명처럼 다가왔습니다. 배철수 아저씨는 나카무레 쓰네코 의사 선생님의 격려를 낭독하셨습니다. 시련 앞에서 어떻게 하면 덜 힘들까를 생각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걸 하자 였습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찮은 일이라도 과업으로 만들어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하마트면 와락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저는 덕후 입니다. 리듬게임 뱅드림과 밀리시타로 시간을 보내고, 애니메이션을 봅니다. 뱅드림 레전더리 라는 곡을 퍼펙트 풀콤보 해냅니다. 아, 물론 쉬움 난이도 입니다. 저는 고수가 아니니까요.

 

 동호회를 아끼시는 이클립스님의 강력추천으로 늦은 밤, 풀메탈 패닉 TSR을 감상하는 도중 또 한 번 삶의 울림을 느낍니다.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극중 히로인 카나메는 발버둥치다 를 선택합니다. 사전적으로 풀어 쓴다면, 기를 써서 있는 힘을 다해 애쓰다 입니다. 이 곳의 메인 테마인 슈퍼로봇대전 식으로 쓴다면, EN(에너지)과 탄약을 듬뿍 써서 봐주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는 의미 입니다. 엄청 피곤하겠죠. 매우 힘도 들겠죠. 그러나 그것이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루, 세 번째의 기적을 마주한 날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 진다고 합니다. 과속을 하지 않게 되고, 양손 놓고 자전거 타기도 쉽지 않아 집니다. 때로는 뒷짐을 지고 현명한 척 하며, 다음 세대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걸로 된 걸까요. 저는 막상 해보니까 욕심 내려놓기가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김형석 선생님의 표현을 빌린다면, 인생의 전성기는 60살부터라도 얼마든지 올 수 있습니다. 고작 마흔에 변화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생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인생의 주인공 답게 살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선택하는 삶입니다. 용기를 내는 삶이며, 인내로 자신만의 위대함을 향해 걸어가는 삶입니다. 평범한 삶에서, 용기를 발휘하는 삶으로 관점을 전환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일 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일들을 연이어 만나면 많은 것을 손에서 놓고 포기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것. 거기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제 버킷 리스트 앞에 정중히 서 봅니다.

 

 일을 마치려는 순간, 이웃 가게의 이모님께서 출출할 때 먹으라며 샌드위치를 전해주십니다. 그런 소박한 날에는 까마귀를 통해 목숨을 이어갔다는 엘리야 이야기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것이 실제로 까마귀인지, 이웃 사람인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목사님께서는 말씀해주셨습니다. 제 처지도 따지고 보면 그러합니다. 지금의 목숨조차도 이웃들이 도와주었기에 살아가고 있는 덤입니다. 어머님의 정신장애 간병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을 포기했던 깊은 절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서 견디기로 했습니다. 견뎠기에 세상에는 이익이 아닌, 선함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악에 물들기 쉽지만, 용기 내어 선을 향해 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제게는 벌써 하루 네 번째 기적입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어서, 집 앞에서 바바 코노미의 수중 캔디를 듣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다짐을 굳히고, 드디어 캔디를 먹을 시간입니다. SAngel님 (http://shunei.egloos.com/5836128) 께서 하단부에 번역해 주셨는데, 언젠가 대답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캔디를 먹고, 삶을 결단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진짜 "삶"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나요.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저의 진짜 삶을 여기서부터 또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99번의 실패로 좌절투성이 였더라도, 개의치 않고 다시 일어나, 단 1번의 성공을 향해, 소명이 이끄는 곳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기독교적으로 쓰면,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또 삶에 도전해 본다는 그것에 신은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현실은 시궁창, 그러나 기적이 연이어 일어난 날, 나는 의사 선생님의 포스팅이 기억났습니다. 어머님이 낫거나 아마 세상을 떠나시고, 그리고 저 역시 노동을 이어가서, 경제적 여유도 찾게 되고, 긴 시간의 힘을 통하여 이 곳에 방문자가 천만 명을 달성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상상했습니다. 김병수 선생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993601/221892396021) 를 통해 또 다시 곱씹어 봅니다. 저는 글을 쓰겠습니다. 저는 나답게 살겠습니다. 매일 집중을 걸며, 사람들에게, 스스로에게, 용기를 전달하는 따뜻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 2020. 04. 22 ~ 2020. 04. 23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