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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프로축구팀을만들자 유럽챔피언십 리뷰

시북(허지수) 2010. 1. 13. 01:49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너무 맛있는 빵이 있습니다. 아껴두고, 아껴두어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시 그 빵을 보니, 이미 썩어버려서 먹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것은 "현재라는 시간"일 수 있으며, "오늘의 간절한 꿈"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노력하지 않으면, 그 소중한 것은 어느 순간 환상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게임이었던 사카츠쿠EU - 풀네임으로는 "프로축구팀을만들자 유럽챔피언십" 에 대하여 리뷰를 씁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네요.

 게임명 : 프로축구팀을만들자 유럽챔피언십
 기종 : PS2
 제작 : 세가
 발매일 : 2006년 3월 29일
 판매량 : 약 25만장

 플레이기간 : 2006년 ~2009년 틈틈히
 플레이타임 : 약 300시간 + @
 개인적평가 : 총평 ★★★ [즐거움 ★5 / 편의성 ★1]

 당시 8만원정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사놓고 보자! 라는 생각에 PS2도 없으면서 일단 샀습니다. 이 정도로 기대가 컸던 작품은 이 게임이 거의 유일했다고 생각합니다. PS2도 결국 몇 달 후, 장만하게 되었지요. 들뜬 마음으로 플레이를 시작하고, 얼마간 즐겁게 하다가 뭔가 지겨워서 잠깐 멈추었고, 또 아쉬운 마음에 새로 시작하고 그러다가 또 멈추었고... 그런 시도를 한 10번 정도는 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담배를 끊는 것이, 이것 끊기보다 더 쉬웠습니다 (...) [혹자는 게임을 두고 마약과도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정말로 마약과도 같은 게임이 몇 개 있습니다. 특히 축구팬들의 경우라면, 경영게임을 조심해야 합니다. FM같은 축구매니지먼트 게임에 빠져있다가, 인생을 망쳐버린 경우가 해외에서도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의 특징과 장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카츠쿠는 기본적으로 축구구단운영 입니다. 직접 경기를 하는 게 아니고, 팀편성하고, 경기를 관람합니다.
 사카츠쿠EU는 사상 처음으로 기본 무대가 일본 제이리그가 아니라, 유럽입니다. 그것도 6개 리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LFP, EPL, 세리에 무엇이든 가능하고, 유명팀들과 시즌 중 맞짱도 가능합니다. 통채로 옮겨놓은 그 느낌을 살려놓았습니다. 시합도 풀화면으로 작동합니다.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는 재미가 있고, 결과를 쉽게 단정짓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는 적어도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껏 상상해왔던 그 축구게임 그 자체입니다. 유럽의 약소팀으로 나만의 드림팀을 꾸려서, 강팀들을 연파하고, 유럽정상에 등극한다! 게다가 등장하는 선수는 25,000명(실명선수9천명) 온갖 축구레전드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로딩이 길어도 너무나 깁니다. 진행상 없어도 되는 쓸데없는 장면 하나하나에 로딩이 길어서, 템포가 너무나도 느립니다. 덕분에 1년을 진행하는데 최소 10시간입니다. 엔딩을 7~8년차에 본다고 해도, 약 100시간은 투자해야, 약간의 결과물 (완성되어가는 팀) 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최소기준입니다. 완전히 성숙된 꿈의 드림팀을 만들려면 수백시간을 공들일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시합 스킵이 되지 않아서, 시간 단축도 되지 않습니다. 편의성이 극악할 정도입니다.
 
 만약 3~400시간을 게임말고 다른 한 곳에 투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분야의 상당한 식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도 1~20권은 독파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저도 이 극악적 플레이 타임에 이 작품을 끝끝내 제대로 즐길 수 없었습니다 (...) 아찔하지요.

 로딩이 긴 것은 PS2 하드의 성능보다 더 많은 것을 한 번에 담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는 평도 종종 듣곤 합니다. 사실 고성능 PS3 시대에 하드인스톨 버전으로, 경기화면을 대폭강화한 EU2가 나온다면 당장 구매할 사람도 많을 겁니다. 게임 자체는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한 것입니다만, 그 생각에 비해서 시스템과 하드웨어가 제대로 뒷받침 해주지 못했고, 결국 어설픈 비운의 작품이 태어나고 만 것이지요. 냉정하게 말해서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뒷따릅니다. 좋은 평가를 붙인다면, 역사적 실험작 정도가 될 수 있겠고요.

 세월이 흘러서 2010년이 되었고, 일본 아마존에서 모처럼 이 게임의 가치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현실은 이제 그저 "100엔"게임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천원짜리 김밥정도의 가격이지요. 지금은 구입할 경우 제품보다는 배송비가 더 드는 게임입니다 (...) 나는 이런 작품을 스스로는 꽤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처음 샀던 게임이라는 특별함도 있었고 (웃음)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게임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은, 과거 유명한 축구선수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덕분에 다양한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하나 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 선수들을 정리한 블로그의 글들이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보면... 결실은 - 게임의 즐거움이 아닌 축구에 대한 이야기들로 나타났네요. 여하튼, 이제 이 게임을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저평가게임, 실패작이라는 혹독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아했었어요. PS2를 사놓고 오래도록 플레이한 것은, 이 녀석과 삼국무쌍4 두 개 뿐이었지요. 혼자 놀 때는 이 녀석으로 놀고, 친구랑 놀 때는 삼국무쌍이었고... 덕분에 많은 다른 작품들들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한 것이 돌아보면 참 아쉽기도 합니다. 대학 신입생 때 서로 너무 좋아하는 CC가 되면, 하도 커플끼리만 다녀서, 다양한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는 것처럼, 여하튼 훌륭한 여러가지 작품들을 뒤로 제쳐두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녀석이었어요. (웃음)

 이 게임에 대한 거의 마지막 아마존 리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 사카츠쿠 시리즈에서는 1, 2위를 다툴 정도의 좋은 작품인지도 모른다. 다만 ··· 아깝다.
 로드가 길고, 스킵 기능도 없고··· 부디 PS3의 다음 작품에 기대하고 싶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돌아보면 아까운 작품이었고, PS3 차기작으로 정말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바람대로 분명 조만간 새로운 작품의 소식이 들려올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잃게 된다.
 하나를 잃게 되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된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어쩌면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네요. 이제 이것을 접어두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되겠지요. 휘슬은 울렸고, 이제 경기를 끝내며 은퇴해야 하는 선수의 눈물. 그와 비슷한 감정으로 이 게임을 봉인합니다. 더 이상은 투자할 시간적 여유도 없으니...


 게이머들은 레벨99를 꿈꾸곤 합니다. 한 우물만 파는 저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이렇게 99를 찍어놓은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한 분야의 그래도 괴수들이지요. 어린 시절에는 몇몇 게임들에서 가능했는데, 요새는 통 끈기가 없네요 (웃음)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레벨99를 꿈꾸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게임 동호회에서, 게임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 생각해 봅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또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마냥 즐거운 삶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하면서, 여유를 또 찾아봐야겠지요. 그럼 사카츠쿠.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