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375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마태복음2:1-12)/홍종일목사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태복음2:1-12) 이제 성탄절이 십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즘은 솔직히 예전에 비해서 성탄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편입니다. 일단 길거리에서 들려오던 캐롤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십년전에도 제가 설교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열기가 식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캐롤이 들려 오지 않는 것은 캐롤의 저작권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캐롤에 대해서 저작권에 걸리지 않으니까 많이 틀어도 된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는걸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새벽송을 도는 교회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집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제는 걸어서 가기가 곤란합니다. 물론 차로 가기도 어렵습니다. 새벽송을 ..

정관누리교회 2017.01.05

히스기야의 실수(이사야39:1-)/홍종일목사

히스기야의 실수 (이사야39:1-) 히스기야는 남 유다의 왕으로 신앙이 투철하고 앗수르의 침입을 물리치며 유다를 부흥시킨 왕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라고 해서 일평생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었으며 또한 실수로 인해 책망도 들었던 그런 평범한 인간 왕 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히스기야가 병이 낫고 난 다음 바벨론 사신단을 만난 부분입니다.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을 극진히 환대했고 그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큰 책망을 받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책망하라고 시키신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특별히 히스기야가 책망받을 일을 한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히스기야를 책망하셨을까요? 우리가 잘 알다시..

정관누리교회 2016.12.20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가복음4:1-20)/홍종일목사

씨뿌리는 자의 비유 (마가복음4:1-20) 오늘 본문에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뿌리는 자를 쉽게 농부라고 합시다. 그런데 씨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모두 네가지의 땅에 씨를 뿌립니다. 우리도 잘 아는바와 같이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가 있는 땅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토입니다. 이 네가지의 땅에 씨가 뿌려집니다. 아마 씨뿌리는 자는 옥토에 씨를 뿌리는 것을 목표로 했을 것인데 그 씨앗 중에 일부가 나머지 이상한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닐까요? 제대로 된 농부라면 자기의 소중한 씨앗을 돌짝밭이나 길가 그리고 가시떨기 사이에 뿌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제대로된 농부가 그런 이상한 곳에 귀중한 씨앗을 뿌렸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고..

정관누리교회 2016.12.09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갈라디아서5:25-6:2)/홍종일목사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갈라디아서5:25-6:2) 요즘 우리나라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의 원인이 대통령 한사람에게만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촛불 민심은 대통령으로 대변되어서 나타나는 거지만 실제로는 우리사회에 이제까지 쌓여왔던 구조적 모순들이 드디어 터져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도 그 사이에 몇 번인가의 혁명이 있기는 했습니다. 멀리는 4.19혁명에서 가까이는 10월 민주항쟁까지 있기는 했는데 이러한 혁명들은 모두 미완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이제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통령 한사람만 바꾸면 사회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각계각층에 쌓인 적폐들을 해소할 후속 조치가..

정관누리교회 2016.12.09

태초에 하나님이(창세기1:1-)/홍종일목사

태초에 하나님이 (창세기1:1-) 요즘은 과학의 시대이며 이성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의 학문수준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올라갔습니다. 옛날처럼 미신과 야만이 판을 치고 맹신과 굴종이 당연시 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는 필요하지 않고 종교는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는 존재하고 종교 역시 건재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든 종교 중에서 세상으로부터 가장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기독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경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학문은 성경과는 다른 사상을 전파합니다. 끊임없이 성경과 충돌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학문 특히 유럽..

정관누리교회 2016.12.09

일곱딸이 있었더니(출애굽기2:16-)/홍종일목사

일곱딸이 있었더니 (출애굽기2:16-) 오늘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 모세의 일대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모세의 일대기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직전의 시기입니다. 본국에서의 혁명 시도가 실패하고 미디안 광야로 피신와서 아무런 희망이 없던 시절을 그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 그것보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그에게 찾아 오시게 된 것일까요? 아무도 찾지 않는 모세를 더구나 말까지 더듬고 애굽의 국사범으로 수배중인 사람을 왜 하나님은 그 오랜 후에 찾아 오신 것일까요? 애굽의 왕자의 신분에 있을 때, 어머니 하셉수트의 권력의 그늘아래 있을 그때 훨씬 쉽게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이룰 수 있을 때는 잠잠하시다가 모든게 끝난시점에 왜 찾아 오셨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외..

정관누리교회 2016.12.09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다(요한복음9:1-)/홍종일목사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다 (요한복음9:1-) 오늘은 우리 주님이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는 기사를 살펴봅니다. 사실상 우리 주님이 병자를 고친 많은 이적들이 있기에 이 기사가 별로 색 다를게 없습니다. 아, 또 한사람 병이 나았구나! 그걸로 끝입니까? 여기에 몇가지 약간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뭡니까? 날 때부터 맹인이되었다? 음, 보통은 그렇지 않나요? 진흙을 발랐다가 그걸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했다? 예, 그건 좀 특이합니다.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낫게 하실 수 있는데 왜 더럽게 진흙을 눈에 발랐다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지 그래요. 제자들이 누구 죄 때문인지 서로 토론했다? 예, 제자들도 보면 참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서러운데 누구의 죄 때문에..

정관누리교회 2016.11.28

신령한 것에 대하여(고린도전서12:1-11)/홍종일목사

신령한 것에 대하여 (고린도전서12:1-11)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이라고 해서 신격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격에 대비되는 신격. 어떤 분은 이 하나님을 가리켜 ‘우주의 기운’이라고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주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무언가 절대자, 초자아, 슈퍼에고가 있기는 한데 그걸 특정하게 하나님으로 칭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종교를 믿어도 저 종교를 믿어도 궁극적으로 어떤 경지를 넘어서면 통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교를 만든 이들은 주로 여러 가지 종교의 교리를 합칩니다. 진리는 서로 통한다나 뭐라나.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요 인생의 길흉화복을 주장하시며 온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모호한 어떤 기운이나..

정관누리교회 2016.11.17

가나안 여자의 믿음(마태복음15:21-28)/홍종일목사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태복음15:21-28) 믿음이란 사실 추상적인 그리고 관념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말에는 절박함 그리고 ‘그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음’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안이 중대하면 할수록 사면초가에 빠지면 빠질수록 믿음은 더 커집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믿음은 가장 커지고 숭고해 집니다. 그래서 믿음은 역설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에게 매달리는 외에는 어떤 의지처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누가 있어 귀신을 쫓아 낼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은 갈릴리를 잠시 떠나 시돈과 두로 지역 지금의 레바논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주님은 평소에는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고 하셨을 정도로..

정관누리교회 2016.11.1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고린도전서12:27-)/홍종일목사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고린도전서12:27-) 우리가 항상 잘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야기, 가끔가다 반대로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입니다. 곧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입니다. 이 몸은 결코 홀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몸 중의 어느것 하나라도 아프면 모든 몸이 아플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유기체인 것이지요. 그러나 몸 중의 어느것 하나가 아프다고 해서 모든게 다 아프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몸의 어느 한 부위가 아프다고 해서 다른 부위가 아프지는 않겠지만 몸 자체가 활력이 떨어져서 힘들고 아픔을 느끼면 몸이 전체적으로 그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관누리교회 2016.11.17